[뜻을 정하다] 왕따 땅한 사람들(요한복음 4:3~11)
왕따 땅한 사람들
요한복음 4:3~11
여러분들 ‘왕따’ 당해 보았습니까? 여러 해 전에 교육부가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천여 건에 5천 4백 명의 초․중․고생들이 집단 따돌림,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는 초․중․고생 4명 중 1명이 ‘왕따’ 피해를 당했거나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약자가 동정을 받고 공부 잘 하는 학생이 동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정 반대가 되어 동료 학생, 약자를 괴롭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왕따 시대에 우리 기독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고 눈치나 보는 나약한 학생들이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왕따라는 나쁜 질병을 학생들 사회에서 치유하려는 치료사로 나서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수백 만 명의 기독 학생들이 나선다면 우리 시대의 질병인 왕따는 치료될 수 있을 것입니다.
1. 예수님도 왕따 당하신 분입니다.
왕따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천 년 전 예수님 당시에도 왕따는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기는 했지만, 나사렛에서 자라셨습니다. 나사렛은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소외된 지역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요한복음 1:46)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 말은 개천에서 어찌 용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었고, 자신이 목수셨습니다. 외모 역시 미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한 상태에서 출생했기에 천민의 사생아(?)라는 의혹이 평생 따라다녀야 했습니다.예수님은 이런 조건 때문에 왕따가 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집단적으로 괴롭혔고, 허물을 잡기 위해 숨어 지켜보며, 이간질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또 예루살렘 지식인들은 예수님께서 수업을 받지 못하셨다고 왕따 시켰습니다.
그뿐인가요? 예수님은 형제들에게도 왕따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고 메시아로 자처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형제들은 아버지가 다른 형이 귀신의 힘으로 기적을 행하는 줄 알고 잡으러 왔습니다. 그들은 형 예수를 평소에 왕따는 아니더라도 ‘은따’(은근히 따돌림)는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왕따(배척-마태복음 13:53~57, 마가복음 6:3) 당하신 분입니다.
2. 왕따 당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어는 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게 되셨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 사이에 있는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왕따’ 시켰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 혼혈아들입니다. 이방인들의 침략을 당하고 그들의 포로가 되었고, 그들과 결혼하여 혼혈아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정통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조차도 더럽다 하여 지나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따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왕따 당하고 있는 동네에도 왕따 당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수가 성 여자라고 알려져 있는 그 여인은 품행이 좋지 못한 여자입니다. 남편이 다섯이었고, 지금 살고 있는 남자는 여섯 번째 남자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수가 성 여인들에게 왕따를 당해 제6시(우리 시간으로 12시) 대낮에 물 길러 우물로 나온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정오는 무척 덥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동네 여자들과 마주치기 싫어 남들이 삼가는 정오에 물을 길러 온 것입니다. 그녀는 왕따 당하는 동네에서도 왕따 당하는 여자입니다. ‘은따’ 정도가 아니라 전따(전체가 따돌림)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가 성 여인은 왕따를 당하고 있는 자기의 현실이 괴로웠을 것입니다. 자기도 우물에서 다른 여인들과 함께 물을 긷고, 같이 이야기하며 오순도순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왕따 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여자이기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물을 좀 달라”는 말을 건넸을 때 매정하게 거절한 것입니다. 왕따 당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귀찮고, 증오심에 불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여인에게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들을 왕따하는 유대인이었고, 여자를 은따한 남자들과 같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예수님께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보인 것입니다.
왕따는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처신을 잘못해서 왕따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잘난 척, 지나친 공부병, 엄마의 치맛바람 때문에 왕따를 당합니다.
조직적인 왕따가 있습니다.-학교 불량서클에 의해 무고하게 왕따 당합니다. 억울한 경우입니다.
스스로 왕따가 됩니다.-학교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합니다. 자기 자신이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고 폐쇄된 곳으로 스스로를 숨깁니다.
왕따 당한 사람들이 숨는 곳이 가상 공간인 인터넷입니다. 스탠포드대학 계량사회학 연구소는 2,689가구의 성인 4,113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 중 약 3분의 1이 일주일에 5시간 이상을 온 라인에 할애하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13%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줄였고 8%는 사회적인 행사에 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응답했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넷이 사회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26%는 친구들과의 대화나 가족과의 전화를 줄였고 34%는 독서를 덜하고 있으며 59%는 TV시청 시간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TV 시청 시간은 인터넷 이용시간이 늘어난 만큼 줄었으며 특히 초보자는 인터넷을 시작하자마자 TV 시청 시간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터넷은 소외된 사람들의 가상 천국이 되고 있습니다. 그 곳으로 들어가기만 아무에게도 차별 당하지 않고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싫은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고… 그래서 수가성 여인처럼 사회에서 격리되어 갑니다.
현대판 수가성 여인들은 이외로도 곳곳에 많습니다.
3. 예수님은 그 여인을 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민망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유대인 남자가 왜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의 노골적인 적개심을 알면서도 함께 토라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여인의 형편을 아셨습니다. 왕따 당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여인에게 차근차근 대화를 통해 마음을 열게 했고, 결국 여인으로 하여금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29절)는 고백과 함께 사람들을 향하여 왕따 없는 세상을 전하기 위해 달려가도록 만듭니다(28절).
여인이 만나러 가는 그 사람은 바로 그녀를 왕따했던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왕따했던 사람들에 대한 용서와 관용과 사랑을 봅니다. 그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왕따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을 은따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려고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美國) 시사 주간지 <타임>은 ‘20세기의 인물’ 중 하나로 오프라 윈프리를 선정했습니다. 윈프라는 흑인이면서 여성이지만 토크쇼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미국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입니다.
그러나 윈프리의 유년 시절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미국 남부 미시시피 출신으로 어머니는 미혼모였습니다. 그는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시골 할머니 댁에서 자랐습니다. 아저씨뻘 되는 친척으로부터 성적 학대에 시달리다 아기를 사산하기도 했습니다.
윈프리는 사회에서 낙오된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윈프리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회의 질시와 모멸을 견디며 사람들에게 다가섰습니다. 그에게 힘을 주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워낙 독서를 좋아했던 윈프리에게 성경에서 수가성 여인에 관한 기사를 읽는 것은 큰 즐거움과 힘이 되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 노밸문학상 작가 토니 모리슨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평한 적이 있습니다.
“작가들을 제외하고 그녀는 내가 본 사람들 중 각장 많은 책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책이 많은 집은 본 적이 없어요. 모든 책에 손때가 묻어있고 정성 들여 읽은 흔적이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은 집을 꾸미기 위해 책을 이용하는 데 그녀는 책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정말 좋은 독자였어요.”
윈프리는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윈프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좋아했습니다. 윈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도피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찾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미국 최고의 토크쇼 여왕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수가성 여인이 미국 대중의 우상이 된 것입니다.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그분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왕따 당하셨던 분이시기에 지금 왕따 당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잘 압니다. 집단적으로 괴롭힘 당하고 집단적으로 따돌림당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 4명 중 1명이 왕따 당하고 있음에도 대부분, “우리 학급에는 왕따가 따로 없다”(80,5%)는 반응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선생님들이 왕따 당하는 학생들에게 무관심하거나 학생들이 철저히 선생님을 왕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왕따 당하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현실을 아뢰십시오. 예수님은 왕따 당해 보셨던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헤아릴 것이며, 우리를 왕따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품을 수 있는 기독 학생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왕따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