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주일] 날마다 짐을 맡기며 살아보세요!(시편 68:19~21)
날마다 짐을 맡기며 살아보세요!
시편 68편 19~21절
서론
오늘 초대받고 오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우정 나들이를 하셨던지 우는, 읍소(泣訴) 작전에 넘어갔던지, 아내의 협박에 견디지 못해 오셨던지 잘들 오셨습니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살아있는 사람 소원을 들어준 여러분은 오늘 공덕(功德)을 쌓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앞날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초대받아 오신 분들을 대상으로 설교하고 설립감사설교는 다음 주일에 하겠습니다.
조선 선조시대 문인 중에 송강 정철이 있습니다.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훈민가 등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가사와 많은 단가를 남긴 선비입니다. ‘구운몽’을 지은 김만중은 “조선의 참된 문장은 오직 송강이 쓴 세 편,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뿐”이라 평가하면서 한국 시가문학의 대가로 인정합니다. 송강은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한 정치인으로 임진왜란의 중심에 있어 누구는 좋은 사람이다, 누구는 기축옥사(己丑獄事) 당시 많은 동인(東人)들을 죽였다 해서 극과 극의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어떻든, 그분의 시조에 이런 게 있어요!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조차 지실까?”
연세가 많아서 등이 굽힌 노인분들이 손에 짐을 들고 등에도 짐을 지고 가는 것 보면 참 안 됐습니다. 그분들만 안 된다는 것은 아니지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들은 자식 짐을 평생 가슴에 지고 갑니다. 경제적인 짐, 신체장애자들의 짐, 일찍 고아라는 짐도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제주도 고유정이 우리 옆마을 사람인데 그 부모 형제들이 부끄러워 살 수가 없다네요! 본인이야 그렇다해도 부모형제들조차 평생을 지고가야할 짐들은 내려놓을 수 없겠지요.
짐이라는 것이 말입니다. 누구나 자기 짐이 가장 힘들고 자기 인생이 가장 어렵게 산다,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남들 보기에는 별로 무거운 짐이 아니어도 당사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하소연할 때 “그 까짓 거!”하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벗어놓고 가자고 하십니다. 이것은 율법의 짐이요 죄의식의 짐입니다. 인생사의 짐이기도 합니다.
어때요? 살다 보면 문득문득 지치다, 힘들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다… 그리 생각되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거 지쳐서도 그렇지만 사실은 내 짐에 눌려 그런 것입니다. 돌아보면 힘들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나요? 학원과 공부 시작할 때부터 힘들었어요! 그때는 희망이 있고 열정이 짐을 감당할만한 힘이 되어 힘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철이 없었기에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기도 했겠지요. 사실은 매일매일이 저기 만의 짐에 힘들게 살아왔던 날들입니다.
다윗도 그런 고백을 하잖아요?
19절,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날마다, 매일매일 짐이 있다는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요 다윗의 탄식이 내 탄식입니다. 그러기에 교회 안에서는 서로에 대한 따뜻한 격려들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평안한 가운데 예배할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짐을 가볍게 하고 서로의 짐을 가볍게 하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넓게는 예수님이라는 비행기에 탑승했고, 좁게는 늘빛교회라는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비행기에 내가 꾸린 짐들을 맡기셨나요? 아직도 손에 들고 있나요? 비행기에 탔다면 화물칸으로 짐들을 넘겨야 합니다. 내릴 때에 찾으면 될 것을 무거운 짐을 들고 낑낑! 거리며 수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믿음생활이 바로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니 주님의 권고처럼, 오늘 염려는 오늘 것만 하고 다른 염려의 짐은 내려놓는 법들을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 비결을 알려드리고자 여러분을 초대한 것입니다.
탑승 수속에서 짐 챙기기
비행기에 탑승하려면 짐들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짐들을 맡겨야 할까요?
우선, 과거의 짐들입니다. 과거의 짐은 후회입니다. 과거가 우리를 무겁게 하는 경우, 대부분은 나쁜 차선에서 백미러를 보면서 운전합니다. 운전이라는 것은 앞을 보면서 해야 합니다. 그래야 멀리 보고 기분 좋은 운전을 하는 데 백미러만 쳐다봅니다.
과거에 좋은 것들이 너무 많은 데, 좋은 것들이 날개가 될 터인데 안 좋은 것만 기억합니다. “그때 그렇지 않았다면!” 후회하면 아쉽고 속상하고 그게 눌리게 하는 짐이 됩니다.
미래의 짐들도 내려놓으세요. 미래는 내일의 염려. 수년 후에 다가올 걸 미리 염려합니다. “암에 걸린다면?” “직업을 잃는다면?” “아이들이 일류 대학에 못 간다면?” 알고 보니 아이가 유치원생입니다. 유치원생 자식을 두고 대학 걱정까지 하면 짐 보관 창고가 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지만 염려는 바라지 않는 것들에 대한 그릇된 확신입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데, 일어난다는 상상이 나중에는 확신이 되어 스스로를 거미줄에 옭매이게 합니다. 아무리 옆에서 이야기해주어도 안 됩니다. 죽어야 끝납니다.
현재의 짐, 압박감은 스트레스입니다. 가정, 돈, 부부, 건강, 직장, 대인관계… 이런 것들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하중(荷重)이 초과가 되고 과부하가 걸립니다. 그러면 우울증에 걸립니다.
여러분은 어떤 짐에 눌려 있고 지쳐 있습니까? 그걸 먼저 파악하고 탑승수속을 합시다!
탑승에서 짐을 맡기기
과중한 짐부터 맡기세요. 과중한 짐은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없는 병입니다. 중병에 걸린 사람, 어느 날부터 얼굴이 밝았습니다. 누가 의사에게서 좋은 소식이 있냐고 물으니까…,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빼앗아간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억울하고 분했지만 이제는 생명을 빼앗기기 전에 주님께 제 생명을 먼저 드렸습니다. 그러니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서 드리는 것이니까요!”
환자의 마음에 짐이 사라졌습니다. 과중한 짐을 맡기니 등판이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하루 분량의 짐만 지고 가세요.
여행 때는 한 번에 필요한 양만 가지고 가야 합니다. 다음 여행에 필요한 짐까지 미리 들고 다니는 사람은 어리석은 여행객입니다.
내일에 일어날 일은 내일 염려해야 합니다. 오늘 염려한다고 해서 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은 지고 갈 물량의 한계가 있습니다. 너무 많이 넣으면 빨리 망가지고 속도도 줄어듭니다.
시계가 얼마나 많이 똑딱거려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1초에 똑! 딱! 두 번, 1분에는 120번, 한 시간에는 7,200번, 하루에 172,800번, 일주일에 1209600번, 1년이면 6천 3백만 번을 똑딱거려야 한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를 찾아갔더니 의사가 “한 번에 한번 똑! 하고 그다음에 딱! 그것만 생각하세요.” 시계는 그 충고를 받아들여 1년 치 똑딱을 생각하지 않고 딱 한 번 지금 똑! 소리만 내는 데만 신경 썼더니 염려는 사라졌습니다.
오늘에 적합한 짐만 지세요. 과거의 것은 끝내세요. 깨어진 달걀을 보면서 “나는 삶은 계란을 좋아했어!” 걱정하고 있으면 과부하가 걸립니다. 깨어진 것으로는 오믈렛을 만들어 먹으세요.
미래의 것까지 미리 가불해서 걱정하지 마세요. 자꾸 맡기는 훈련을 하세요.
-나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을 보세요.
내가 작은 짐에도 무거워하는 것은 나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을 살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갓집 다녀오면 “살아있는 것만도 참 다행이다!”라고 자족하는 힘이 생깁니다. 병원에 문병다녀오면,장애인 기관에 다녀오면 아이들이 건강하다는 것만으로 감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내 짐이 가벼워집니다.
비교를 잘하세요. 나보다 모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전승, 한 그리스도인이 힘들게 십자가를 지고 가다 <십자가를 교환해 드립니다> 간판을 보았습니다. 평소 자기 짐이 너무 불공평하고 무겁다고 생각해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웬 십자가가 그렇게 많은지, 누군가가 지고 가던 십자가들입니다.
“가벼운 것을 택해보세요!”
주인의 말에 넓은 가게 안을 돌아다니면서 이 십자가 저 십자가를 등에 져 보는데 모두 무거웠습니다. 그러다 다른 것보다 가벼운 십자가를 찾아냈습니다. “이것으로 교환해 주세요!”라고 했더니 주인은 “그 십자가는 당신이 들어올 때 가져 온 것입니다!”라고 했답니다.
나의 십자가는 가장 가벼운 것입니다. 지금의 염려는 사치스러운 염려가 아닙니까?
-날마다 힘을 공급 받으세요.
십자가의 짐이 무거워도 내성이 강하면 훨씬 지기가 쉽습니다. 단단한 등판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내면의 힘을 공급받도록 노력하세요. 말씀으로 내면의 힘을 키우세요. 기도는 내성을 더욱 강하게 합니다. 찬송은 내면의 힘을 온 몸으로 퍼지게 하는 힘이 됩니다. 이런 단단한 힘이 있으면 짐들을 지고 가는데 큰 힘이 됩니다.
베드로전서는 핍박이라는 고난 중에 있는 신자들에게 ‘성숙된 인격’을 촉구하는 편지입니다.
“염려하지 말라!” 여려는 체포와 투옥과 고문과 죽음을 앞에 둔 성도들에게 있던 두려움입니다. 이런 신자들을 향해서 그것을 주님에게 맡기라고 합니다. 한번 맡겨보세요~
예수님 칸에 짐을 맡기기
비행기에 탑승했으면 내 짐은 탑승한 비행기에 맡겨야 합니다.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탑승하고 짐은 부산행 비행기에 맡긴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여행길이 엉망이 됩니다. 짐을 제대로 맡기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도 아무 곳에나 맡겨서는 안 됩니다. 제대로 맡겨야 합니다.
우리의 짐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 확실하게 가야 합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다시 옵니다. 혼자서 테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을 벽에 던지면 다시 옵니다. 세게 치면 세게 오고 약하게 오면 약하게 옵니다.
사람들에게 짐을 맡깁니다. 그 사람들도 감당하지 못해 힘들어합니다. 자식의 짐을 받아들고 부모가 힘들어합니다. 상담하고 고백했던 이야기가 다시 내게로 옵니다. 그러니 받아줄 사람, 받아주고서도 그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을 사람들에게 내 짐을 맡겨야 합니다.
그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오라고 하셨습니다. 날마다 오라고 합니다. 날마디 짐이 있고 그건 감당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이여…” 메시지성경은 “주께서 날마다 우리를 이끄시니…”라고 합니다. 지치고 쓰러진 우리들의 짐을 당신에게 얹어넣으시고 일으켜 세워 이끌어 주시는 그 하나님…, 그 분이 날마다 우리를 도우시며 일으켜 세우시며 이끌어 주십니다!
베드로그 그 원리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염려를 맡기라” 맡기면? 권고하신다! 권고는 돌아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400년 동안을 하나님께서 권고하셨습니다. 방주 속에 있는 노아 가족을 하나님께 권고하셨습니다. 이 ‘권고’가 쉬운 성경에는 ‘돌보심’이라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돌본다’를 ‘Care’라고 했습니다. Care가 ‘주의’와 ‘근심’으로도 같이 쓰입니다. 하나님의 Care(돌봄)에 Care(조심,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Care(근심)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에게 짐들을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짐들을 맡기지 않으면 그 짐들이 우리를 누를 것이고 믿음의 성장을 훼방할 것이며 신앙인격의 성숙을 더디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짐들을 자꾸 맡기는 훈련들을 쌓아야 합니다.
결론
유대인 혈통으로 독일 계몽주의 철학가로 이름을 날렸던 모세 멘델스존은 키가 난장이 수준이고 곱사등입니다. 함부르크 상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프룸체라는 아름다운 딸을 보는 순간 모세는 절망적인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 모세는 용기를 내어 프룸체의 방문을 두드렸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집에 가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한번으로 포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외모보다 더 못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모세는 프룸체를 찾아갔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방문을 열어준 프룸체는 모세를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머뭇거리던 모세는 부끄러움을 참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프룸체, 당신은 결혼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맺어주는 것임을 믿나요?”
“그래요, 그러는 당신도 그것을 믿나요?”
“그렇습니다. 한 남자가 태어나는 순간 신은 그에게 신부가 될 여자를 말해주지요, 내가 태어날 때 미래의 신부가 정해졌습니다. 그런데 신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그대의 아내는 곱사등이일 것이다.’ 그때 나는 소리쳤습니다. ‘안됩니다. 신이여! 여인이 곱사등이가 되는 것은 비극입니다. 차라리 나를 곱사등이로 만드시고 나의 신부에게는 아름다움을 주십시요,’ 그렇게 해서 나는 곱사등이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곱사등이로 만든 것은 특별한 것들을 올려놓기 위함입니다. 당신이 허락한다면 평생 그대의 한숨과 눈물, 걱정과 고독, 그대의 아픔과 가시를 내가 다 짊어지겠습니다.”
가만히 바라보던 프롬체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곱사등이 사내의 손을 잡았고 모세 멘델스존은 천상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인 프롬체의 헌신적인 내조에 힘입어 독일철학사에 족적(足跡)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손자 중에 유명한 음악가 펠릭스 멘델스존이 태어나게 됩니다.
사막의 교부 중에 안토니우스가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찾아가서 하소연하면 딱 한 가지만 하고 침묵합니다.
"십자가에 그 고통을 걸어놓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의 짐은 가벼워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신 분이십니다. 우리 대신 짊어진 무거운 죄의 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어떤 무거운 짐들도 짊어주실 각오가 충분히 되어있는 분입니다. 살아생전에도 주님의 등판과 어깨에 짐을 얹어 놓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벼움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임상실험이 끝냈기에 내 등판에 짐을 얹어놓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오라 초청합니다. 베드로 사도도 그런 사실을 알았기에 “너의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라”(벧전 5:7)고 권면합니다.
오늘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살다가 지치거든 다시 교회로 오십시오! 예수님에게 속사정을 말씀드리고 짐들을 그분에게 얹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늘빛식구처럼 가벼운 짐으로 날마다 변경시키며 생기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도 찬송 같이 부르기 / 당신은 지금 누굴 만났나요…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