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훈 저서 모음/[신수성가]

[神手成家] 요셉에게 길을 묻다(1)

갈렙처럼 2025. 3. 1.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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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手成家 1장]

요셉에게 길을 묻다(1)

대한민국이 위태롭다

 

[본서는 2012년 집필작품입니다.]

 

대한민국은 일제 36년과 6.25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솟아오르고 있다. 경제개발 도상국가들이 벤치마킹하고 싶은 1순위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세계사에 화려하게 등장한 한국은 정의로운 공정(公正)사회를 국정과제로 삼아야 할 만큼 내부가 곪고 있다. "우리 사회는 공정한가"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73%가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승자가 독식해 버리는 사회가 불공정의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공정하지 못한 시스템은 공무원과 기업은 물론 사회전반에 부패덩어리를 만들어 간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도 너무 한다… 탄식할 정도로 한국사회는 특정대상을 지목할 것 없이 부패지수가 높은 국가이다.

 

한국인의 부패지수는 국제투명성기구(TI)의 조사 대상 178개국 가운데 39위를 차지했다.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고, 지능지수(IQ)는 세계 선두권이지만 아쉽게도 부패지수에서도 상위권이다. 물론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이혼율 2위, 청소년 흡연 세계 2위(여고생은 1위), 교통사고율 1위, 유흥업소 종사자 200만 명, 양주소비량 1위, 인터넷 음란다운 비율 1위, 유네스코청소년문제 1위, 저출산율 1위, 형사소송 비율 일본에 10배, 일할 의지조차 없는 청년 무직자 니트족 80만, 무당 70만, 어린이 유괴 1년에 8천 건, 세계제일의 강성노조… 등으로 한국사회는 수렁에 빠져있다.

 

한국이 내부적으로 이처럼 불량품이 되는 것은 눈부신 경제발전과 함께 서구의 불량문화들이 수입되고 텔레비전이 시청률 무한경쟁 체제로 나가면서 부도덕하고 반인륜적인 내용을 가감 없이 내보냄으로 성적(性的) 압축파일이 풀리면서 도덕적 해이에 빠진 결과물이다.

 

여기에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책임도 크다. 홍대주변의 클럽사장 70%가 한 때는 크리스천이었고 지금도 크리스천이다. 홍대클럽 문화는 좋은 말로 청년문화요, 거북한 말로는 소비문화이다. 홍대주변에서 술을 팔고 유흥문화를 이끌어가는 클럽사장 70%가 기독교인이었고 지금도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가히 충격이다. 오전에는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클럽에서 술을 판다. 이게 한국교회의 현주소일까?

 

한국교회는 왜 달라지지 못하나?

한국교회가 기도의 열정도 있고 경배와 찬양으로 뜨겁고 성경공부는 신학생 수준이지만 생활신앙으로 외연(外緣)을 넓히지 못하고 있다. 성경을 왜 배우냐, 왜 열정적으로 기도하냐, 왜 뜨겁게 찬양하냐? 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복음신앙이 단순히 개인의 종교 성향(性向) 정도가 된 것이다.

 

한국교회가 개인 신앙은 우수하지만 행동에는 믿음이 있든 없든 별 차이가 없는 관념적 신앙, 이론에만 빠삭한 교리신앙, 부모에게서 답습해온 예배당신앙 등이다. 이런 신앙은 유진 피터슨의 말을 빌린다면, 현실생활에 바탕을 둔 다윗의 영성이 아니라 관념적인 하나님에게 몰두하고 행동은 없는 거짓영성들을 만들어 낸다. 이런 액세서리 신앙생활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호박에 검은 줄을 그었다고 수박이라고 우기는 억지와 뭐가 다를까?

 

세상이 크리스천들에게 바라는 바는 높은 수준도 아니다. 예수처럼 희생하라, 예수의 사랑을 보여라, 세상을 변화시켜다오, 이런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보다 다른 게 뭐냐, 그걸 내놓으라는 것이다. 신앙심으로 무장된 당신들이 우리보다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내세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면서 삶의 스타일이 우리처럼 세속적이 되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비신자들은 우리에게 다른 삶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들과는 다른, 그들을 부끄럽게 하고, 우리 앞에만 서면 괜히 왜소하게 느껴지는 어떤 감동을 크리스천에게 기대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일전에 홍정길 목사가 한국교회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두고 이런 인터뷰를 했다.

 

“…복음 안에 온전한 사람을 만들면 온전한 행동도 할 것으로 착각했다. 좋은 생각을 했으면 좋은 행동까지 나와야 좋은 사람인데, 좋은 생각을 하면서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지금까지 한국복음주의 운동의 한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은퇴 1년을 앞두고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는 게 가슴 아프다."

 

동감이다. 예전에 기독교에는 <신앙생활>, 로마가톨릭에는 <생활신앙>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어느 게 옳은 제목일까? 다 좋은 제목이다. <신앙생활>, <생활신앙>. 두 바퀴로 같이 가야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신앙은 좋은데 부끄럽게도 좋은 생활은 없다. 즉 동기는 좋은데 행동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교회는 제3의 종교, 제4교단으로 내려앉을 수도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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