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야 노올자] 은혜 언약 안의 인간(로마서 5:12-21)
은혜 언약 안의 인간
로마서 5장 12-21절
서론
지난주일 설교 말미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종교’라 쓰고 ‘복음’이라고 읽는다.”
함께 따라해 봅시다! 학생시절에 진화론적으로 답은 쓰지만 마음과 머리에는 창조론적인 답을 갖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두가 기독교를 세계4대종교라고 말할 때 그렇다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종교가 아니라 복음이라 믿고 있습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입니다!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은 선물입니다. 선물은 공짜입니다. 만약 선물이라 하면서 반값을 달라하면 기쁜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쁜 소식, 선물은 완전 100% 공짜입니다. 복음의 중심되는 영혼 구원, 육체의 영생은 공짜, 하나님께서 어떤 요구사항도 없이 공짜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말합니다. 어마어마한 인생 문제를 이런 단순한 공식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어떻게 보면 너무 싱거워요. 세상 사람들도 이런 면에서 기독교를 공격합니다.
“아니, 괜찮게 사는 우리는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고 저들은 예수를 믿었다는 항목 때문에 공짜 구원을 받아? 그것도 영생하는 내세의 삶을?”
일반인들의 생각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철학자 칸트는 “하늘에는 별이 있고 인간의 마음에는 양심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 양심이 도덕과 윤리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권선징악, 상선벌악 프레임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구원을 얻으려면 뭔가 해야 하고 천국에 합당한 선행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입으로는 그리 말하면서 머리와 마음은, 아직은 내 믿음이 구원에 이르지 못해… 오늘이라도 죽으면 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어… 그리 생각합니다. 이것은 행위구원을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도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신학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행위계약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닮은 특이한 존재로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주재권만 아니라 더 풍성한 생명을 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더불어 ‘행위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행위언약(行爲言約)은,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과 영광이지만 불순종하면 에덴의 삶을 박탈하겠다, 박탈 내용은 자연은 저주, 인간에게는 죽음과 수고와 추방이라는 형벌을 받는다는 조항입니다. 그러니까 행위계약은 내 행위에 내가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호의로 인간은 신의 성품(절대적 성품)을 어느 정도 공유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계약사항에 순종하고, 의로운 행동을 계속한다면 영생 신분입니다. 아담은 온 인류를 대표하는 입장입니다. 그의 성공은 인류의 성공이요 그의 실패는 후손들의 실패입니다. 이 얼마나 특별한 은총입니까? 그러나 결과는, 불순종의 길을 선택했고, 그 대가로 죄인 신분, 죄는 후손들에게 전가되어 모두 철저히 타락해 버렸고,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상황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12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으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대표 원리입니다.
이제 인간은 제 노력이나 수행으로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 속에 선(善)이 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에 대한 약간의 선(善)의 의지는 남아있습니다.
행위계약을 어겼을 때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계약조항에 근거해서 사망이 왔습니다. 육적 사망, 영적 사망, 영원한 사망입니다. 육적 사망은 육신의 죽음이고 영적 사망은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는 것이요 영원한 사망은 지옥에서 당하는 영원한 형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 인간의 죄악을 형벌로만 다스리지 않으셨습니다. 심판 중에서도 살길을 마련해 주시고 다시 한 번 인간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재계약을 하신 셈입니다.
다시 맺은 계약은 행위계약 내용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패한 성품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습니다. 죄 없던 성품으로도 계약을 파기해 버린 인간들이기에, 타락 상태에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함은 뻔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죄인들이 행위에 따라 영생을 얻음은 기대도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재계약을 맺으셨으니 이것이 은혜언약(恩惠言約)입니다.
은혜언약에서는 행위가 삭제되고 하나님의 은혜만이 전제조건입니다. 내 은혜로 너희에게 은혜를 주고 그 은혜로 구원해주마! 은혜조차도 나의 선물이다! 이것이 은혜언약입니다.
성경의 구원관은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어떤 행위도, 종교심도 구원을 이루는 데는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다!
“예수 믿고 구원” 구원 공식이 너무 싱겁지요? 기독교 구원관은 싱거우리만큼 쉽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해드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 죄인 신분으로서의 그 어떤 행위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를 기대조차 하지 않으시고 무조건적인 자비와 긍휼로 그냥 구원해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인간과 관계없이 일방적인 계약을 선포하신 것이기에 은혜언약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언약을 통한 구원을 보이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계속적으로 예표를 보여주셨습니다.
-노아와 맺은 언약:대홍수 이후, 다시는 홍수로 인류를 멸망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창9장). 언약의 표적으로 무지개를 주셨습니다(벧후 2:5).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땅을 주리라, 대민족을 만들어준다, 복의 근원이 된다(창 12:1-3).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죄를 많이 지었지만 그들을 징계는 했어도 약속은 이루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횃불언약(창15장):이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맺어주신 회복의 언약입니다.
-모세와의 시내산 언약(신11장):이게 언약에서 유일하게 율법 순종의 유무에 영향을 받습니다.
-다윗과 맺은 언약(삼하 7:8-16):다윗의 혈통이 영원히 지속되고, 그의 나라가 영원히 보전될 것이며 그 혈통에서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언약이고 약속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 언약들의 특징은, 인간이 어떤 일을 해도 하나님께서는 인류 중의 얼마를 긍휼히 여기어 무조건 구원하신다!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이 얼마나 불순종과 우상숭배로 타락했습니까? 다윗도 범죄했고 그 혈통에서 나온 왕들도 우상숭배와 배도의 역사를 거듭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언약을 지키셨습니다. 행위언약 하에 있었다면 벌써 버림을 받았을 텐데 이스라엘은 버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회개하고 용서를 받고 회복되고… 은혜언약의 힘입니다!
그런데 은혜계약만이 전부일 때 여기에 모순이 발생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변개치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불순종의 대가로 죽으리라, 사망을 선포하셨으면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도 그 선언을 철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모순이 전혀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에게는 은혜로 영생 구원을 주고 싶어 하시고, 그러자니 죄인에게 사망이 있다는 선언이 걸리고… 하나님의 딜레마입니다.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한 수’가 성부와 성자 사이에 맺어진 ‘구속의 언약’입니다. 성자는 구원을 위한 임무를 수행하고, 성부는 속죄 사역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성자에게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하신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요구]
-여인에게서 탄생할 것, 인생을 취하되 죄는 없어도 인간처럼 허약한 본성이 될 것(갈4:4,5)
-죄에 대한 형벌 지불을 위해 자신을 율법 하에 둘 것, 죽음(시40:8, 마5:17,18, 요8:29).
-성령의 역사로 죄인이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요16:13~15, 17:19, 22).
[성부 하나님의 보장]
-죄 없는 육체로 세상에 가게 한다. 성령의 능력을 허락하신다(히 10:5, 사 42:1).
-성부는 사탄의 역사를 박멸시키며 성자를 지원하신다(시 42:6, 7).
-예수님의 부활, 승천… 등을 보장하신다(시 16:8~11, 행 2:25~28, 빌 2:9~11).
-성자의 요청으로 성령을 파송하셔서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 나가게 하신다(요 14:26, 15:26).
성부와 성자 사이에 맺어진 구속의 언약을 전제로 ‘예수 믿어 구원’이라는 등식은 성립된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 사이에 이런 계약이 없었다면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는 어떤 계약도 맺어질 수 없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사이에 맺어진 이런 약속이 있었기에 예수를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은혜로운 약속, 은혜언약이 체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죄언약(구속언약)은 은혜언약의 영원한 기초가 되며, 은혜언약을 가능케 했던 것입니다.
에덴에서 행위계약 체결에는 중보자, 중개자가 필요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당사자입니다. 그러나 은혜언약은 하나님과 인간이 도무지 그 계약을 체결할 수 없는 신분입니다. 죄인들에게는 마땅히 벌을 내리신다는 공의로운 속성을 지니신 하나님은 그 속성 때문에 은혜를 내릴 수 없었고, 인간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을 자격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계약에는 중보자가 필요했으며, 보증인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보증인은, 장차 그들을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하겠다는 보증을 했고, 하나님은 이 보증에 근거하여 은혜로 사람을 구원해 준다는 은혜계약을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15절,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 계약이 체결됨과 동시에 하나님은 선물을 약속하셨습니다(창 17:7).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 영적인 것을 실감시키려 현세적 축복을 허락하고, 칭의와 성화를 약속하십니다. 성령을 보내줄 것도 보증하시며, 천국에 입성케 하는 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 된다!” 죄인신분이 하나님의 양자됨은 대단한 복입니다.
이런 복된 계약에 하나님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행위언약에서는 행위가 요구되었지만 은혜언약에서는 행위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기준에 도달할 어떤 선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어떤 행위도 인간들에게는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언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천국 입성만이 제시된 것이요, 이제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맺어진 구속의 언약에 근거하여 무조건적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렇지만 이 은혜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만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은혜언약은 무조건적이면서도 조건적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구속의 역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조건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엡 2:8) 믿음이라는 전제조건 역시 하나님의 은혜아래 포함되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로 오며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이스라엘이 은혜의 언약에서 멀어졌습니다. 십계명 율법이 문제입니다. 선민들은 율법을 못 지켜서가 아니라 율법을 너무 잘 지켜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청년이 율법조항에 대해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마19:16~20). 그들은 자기 행위를 너무 의지한 나머지 자기 의에 빠졌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행위계약으로 자기들의 구원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선민 이스라엘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저들의 구원관을 바로잡아주십니다. 13세 이하의 어린이들을 내세우며 어린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마18:3) 천국은 어린이들의 것이라(19:14) 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마음이 순결하기에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에 “아이고 좋아라!” 하고 마음에 받은 것입니다.
어떤 율법도 그들에게는 공로가 될 수 없었고 율법이 자기 의를 갖다 주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13세가 되어야 성인 취급을 받았고 율법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칭의는 기대할 수도 없는 어린이들이었기에 은혜언약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그 동심이 율법으로 무장된 어른들과 대비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은혜언약은 어린이주일에 알맞은 설교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
비숍(G. S. Bishop)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단지 두 개의 언약이 있을 수 있고 두 언약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명백히 언급하고 있다.
한 언약은 구원을 위해 인간이 무엇을 할 것인가?(what man shall do?)를 근거로 했고
한 언약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하실 것인가?(what God shall do for him?)를 근거로 했다.
다시 말하면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이 그것이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해 무슨 일을 해주셨는가? 그것을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어떤 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먼저 주님께서 나를 위해 해 주신 일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구원 받은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구원의 도리를 받아들이고 천국 시민됨을 자축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