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설교도 맛있다] 야곱의 사닥다리(창세기 28:10~14)

갈렙처럼 2025. 2. 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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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사닥다리

창세기 28장 10~14절

 

서론

어떤 성도가 목사를 찾아와 하소연했습니다.

"목사님, 요즘 죽을 맛입니다. 사업은 기울어졌고 아내는 신경쇠약으로 입원했고 자식들은 돈이 없어 휴학했고 빚쟁이들은 매일같이 찾아오고... 제 인생의 문은 모두 닫혔습니다. 하나님은 도무지 제 사정을 모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제 사정을 아신다면 어떻게 모든 문을 닫히게 하십니까?"

 

그 하소연에 목사는 이런 말로 용기를 주었습니다.

"집사님, 이탈리아의 속담에 `하나님은 문을 닫으시되 창문은 열어두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닫힌 문만 바라보지 말고 창문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그 말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다시 기도하며 시작해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집사님은 하나님께 맡기고 일어서 보리라 결심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안 하던 새벽기도를 시작하면 성도들이 예사롭게 보지 않습니다. 잘 나갈 때 새벽 기도하면 남들이 믿음 좋다고 우러러볼 텐데 어려움 당해 새벽기도 나가니까 어느 집사 망해서 나왔다고 연민의 눈으로 보는 것 같아 마음도 편치 않았지만 꾹 참고 새벽기도 다니면서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바라며 기도했습니다.

 

그래요! 모든 사람들에게도 사방이 막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경우 참 곤란스럽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성경은 인생의 나침반이요 지혜서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좋은 실례들이 있습니다.

1. 야곱은 사방이 막혔습니다.

야곱은 평탄한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부자였고 어머니 리브가는 미인입니다. 성공한 아버지, 미인인 어머니. 이것도 자식들에게는 인생의 자본입니다. 야곱은 어머니의 편애를 받았기에 종용한 사람이었고 그의 삶 자체가 조용했습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70세가 될 때까지 평탄하게 지냈습니다. 이삭과 야곱의 다툼을 유년시절의 일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야곱의 나이가 70세쯤 됩니다. 성경을 자꾸 우리 수준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성경에서 70세는 노총각 정도입니다. 70세가 노총각이라면 우리 문화로는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중동지방은 다릅니다.

 

며칠 전 신문 보셨지요? 80세의 이집트 노인이 114된 아버지가 젊은 여자와 재혼하는 것을 막아달라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고 나선 것. 술탄이라는 아들이 아버지의 재혼을 반대하고 나선 것은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유산이 줄어들까 우려하기 때문. 이슬람의 법은 아버지가 재혼, 자녀를 낳으면 새 어머니와 이복동생이 유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돼 있습니다. 114된 노인이 아들을 낳을까봐 걱정할 정도이니 70세 정도가 노총각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곱은 70이 될 때까지 별 어려움 없이 조용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조용한 사람의 내면 속에는 용암과 같은 욕심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누구의 마음속에도 욕심이라는 본능, 본성이라는 게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그 욕심이 재물로 흐르면 물욕이 되고 육체로 흐르면 육욕이 되고 명예로 흐르면 명예욕이 됩니다.

 

야곱의 욕심은 상속권의 욕심으로 나타납니다. 쌍둥이형인 에서를 젖히고 장자가 되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아브라함 집안의 장자는 단순히 재산의 상속권, 장자를 신분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잇는 축복권, 정통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그 자손을 별처럼 많게 하시며 그 자손들 중에서 메시아를 출생시킬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이 가만히 보니까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이 에서에게 넘어가게 되었어요. 안되겠다 싶어 야곱은 욕심 없는 형 에서를 속여서 장자의 욕심을 채웁니다. 그는 장자권을 얻게되지요. 그러나 억지와 욕심의 끝에는 항상 불화와 고통이 따라옵니다. 야반도주로 시작되는 그의 불행은 욕심 때문에 평생 사람들과 불화하고 하나님과 다투며 험악한 세월을 살아갑니다.

 

아버지와의 상속의 관계, 어머니와의 사랑 받는 관계, 형 에서와의 아름다운 형제애가 모두 단절되고 야곱은 홀로 벧엘 들판에 남아있습니다. 정처 없는 인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야곱은 일이 이렇게까지 번질 줄 몰랐습니다. 단순히 자기가 상속권을 얻게되고 함께 조용히 잘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집안에 파탄이 일어났습니다. 형 에서가 살인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용히 평탄하게 살아왔던 사람 야곱, 사방으로 우겨 쌓임을 당했고 사방의 문이 막혀버렸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어느 날 이런 일들이 끼어듭니다. 멀쩡히 직장생활 잘 하던 사람들이 사업을 한답시고 뛰어들었다가 어려움을 겪습니다. 졸지에 퇴출당하고 명퇴 당하여 황황한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낍니다.

지금 야곱이 그런 심정입니다. 사방이 다 막혀버렸어요.

2.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사면이 막혀버린 야곱, 이 세상에는 아무도 그를 받아줄 사람도, 그를 환영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는 뒤척이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고 꿈에 사닥다리가 보였습니다. 땅에서 하늘까지 이어진 굉장한 사닥다리였습니다. 천사들이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13절, "나는 여호와니…"

하나님의 음성은 그에게 굉장한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1) 하나님은 지역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머물고 계시는 신, 그리고 자기 부족의 신인 줄 알았어요. 가나안에 머물고 있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많은 자손을 얻을 수 있을텐데 아버지 땅에서 도주했습니다. 부모님의 슬하에서 나왔다는 허전함보다는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이 없는 들판에, 그리고 가나안에서 멀리 떨어진 땅으로 달아나는 게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닥다리를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다!"

15절,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하나님은 야곱이 가는 어느 곳이나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즘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세계화"라고 할까요? 집과 부모를 버리고 떠나는 야곱, 하나님마저 고향 땅에 남겨두고 가는 야곱의 두려움.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느 곳이나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사상은 사방이 꽉 막혀버린 야곱에게 큰 격려와 용기를 주고도 남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홀로 있다는 외로움, 문이 닫혀버렸다는 두려움들로 쌓여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방의 막힌 벽을 보지 마시고 창문을 보십시오. 위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 아닙니다.

 

안요한 목사는 시각장애인입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책과 영화로 유명한 분입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실명이 되었고 실명 중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영화는 이장호 감독이 찍었고 그 동생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이 감독의 동생도 거의 실명 단계입니다. 동생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이장호 감독이 영화화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의 주제가는 이런 것입니다.

 

"그의 사랑 있으면 나 외롭지 않아 그의 사랑 안에서 나 두렵지 않네 그는 나를 버리지 아니하며 그는 나를 떠나지 아니하리…"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만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풍파가 없는 고요한 삶 속에서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때만 계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황량한 들판에도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섭게 몰아닥치는 비바람 속에서 풍랑 이는 저 갈릴리 바다에서도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그분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비웃음이 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실패한 너를 버리지 아니하마, 나는 너와 함께 하마! 그런 하나님이셨습니다. 믿습니까?

 

2) 자신이 바로 조상들의 정통 상속자로 인정받았음을 알았습니다.

야곱은 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조용한 사람을 팽개치고 형을 속이는 모험의 길로 나선 것은 순전히 상속권 때문입니다. 그는 재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의 재산이 탐나서가 아니라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 속에 흐르고 있는 그 위대한 정신의 계승자, 하나님의 축복의 상속자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속자는커녕 야반도주하고 홀로 이 벧엘 들판에 누워있습니다. 너무 처량하게 된 것입니다.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어버렸나?'

"내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그에게는 아무런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니 잠이 올리가 없지요.

 

그때 그의 눈앞에 사닥다리가 보이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13절,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족보상으로는, 아브라함, 이삭, 에서... 이렇게 나와야 하는 데 하나님은 에서의 자리에 야곱으로 대체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정통적인 상속자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아버지의 인정, 형의 인정은 받지 못하고 도망 나온 처량한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야곱에게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회사의 인정을 믿지 못하고 심지어는 아내까지 나를 인정해주지 않지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당당한 사람들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십시오.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해 패배자가 된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고 인생이 자신 없게 느껴질 때에도 실패자 베드로를 인정하시고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셨던 그 임마누엘의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찾아오시고 다시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 하나님은 자신의 진심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야곱은 죽일 놈입니다. 형의 상속권을 빼앗으려 고 했던 비열한 사람, 형에게 내려오는 축복을 도둑질하려고 했던 나쁜 놈! 그래서 그는 도망치고 있습니다.

 

이제 들판에서 짐승에게 잡혀 죽어도 야곱은 두고두고 나쁜 놈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내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나?"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14절, "네 자손이...." 이라고 하십니다.

 

야곱의 손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나쁜 방법을 정당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방법이 나빴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그 진심을 알았습니다. 단순히 물욕에 눈이 어두워 형을 속인 게 아니라 메시아의 조상이 되고 싶어했던 그 거룩한 소망, 그 신앙적인 열심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점잖으면서도 영적인 것에 소홀했던 에서보다는 비록 성질은 나쁘고 방법도 나빴지만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의 주역이 되고자 했던 야곱의 그 소원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알아주셨구나!'

이런 앎, 앎으로 오는 확신은 사방이 막혀버린 야곱에게 굉장한 용기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제단을 쌓으며 새로운 용기를 얻게됩니다.

 

아무도 우리의 심정을 몰라줘도 여러분 나를 알아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나의 진심, 나의 눈물, 나의 아픔을 알아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계시면 세상은 다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나의 진심을 몰라주어도 하나님은 나를 이해하시며 알아주십니다.

 

여러분, 용기를 가지십시오. 비록 거룩한 신앙생활에 실패하고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이지만 하나님은 나의 진심을 아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신하시고 일어서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사닥다리의 꿈을 꾸십시오.

야곱의 현실은 황량합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족도, 재산도, 누구의 도움도 얻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이제 혈혈단신입니다. 현실은 종용했던 사람, 야곱의 꿈을 앗아갔습니다. 꿈을 꿀만한 건덕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꿈을 꿉니다. 꿈에 사닥다리가 하늘에까지 오르고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함께 시작합니다. 야곱과 함께 어느 곳에든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은 아주 가느다란 줄기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야곱은 그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서원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나를 무사히 아비 집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면, 이전이 주의 전이 될 것이고, 평생 주님만 따를 것이고 십일조를 바치겠습니다"는 서원을 합니다.

그때부터 사닥다리 끝에 서 계신 하나님은 그의 생애에 무한한 능력과 원천과 자원을 공급해주셨습니다.

 

야곱, 혈혈단신으로 타향살이를 합니다. 그리고 147년 동안 그의 고백처럼 `험악한 세월'을 보냅니다. 그 어둠 속에서도 결코 그가 굴하지 않고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조상이 된 것은 바로 하나님, 그분의 힘이었고 보호였고 능력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하나님이라는 이름처럼 강한 능력은 없습니다.

 

결론

1950년 대 후반, 미국 뉴욕에서 유명한 브라더스 서커스단이 공연할 때의 실화입니다. 한 조련사가 채찍으로 호랑이를 다룰 때 갑자기 정전됐습니다. 철책 안이라 관중들에게는 위험이 없었지만 문제는 조련사였습니다. 그가 조금이라도 허둥대고 조련할 때의 규칙을 잃어버린다면 호랑이는 마치 컴퓨터에 고장이 생긴 로봇처럼 달려들고 물어뜯을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조련사는 어둠 속에서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노련하게 호랑이를 다뤘습니다.

 

다시 불이 켜진 후 관중이 기립박수를 보내자 조련사는 말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당황하면 호랑이들의 먹이가 됩니다. 조련사는 어둠 속에서도 밝은 곳에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어둠을 만났습니까? 이 어둠 속에서도 밝은 것처럼 처신하십시오. 더 명랑하고 밝고 긍정적으로 행동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든든한 빽이 됩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니라"

 

하나님의 사닥다리의 꿈을 꾸십시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닥다리, 기도의 사닥다리를 통해 창문을 여시고 여러분들의 앞날에 날개를 달아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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