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도 맛있다] 포도주가 떨어지니 진짜 포도주가 나왔다!(요한복음 2:1~11)
포도주가 떨어지니 진짜 포도주가 나왔다!
요한복음 2장 1~11절
서론
미국의 사회학자 필 주커먼은 <종교 없는 삶>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은, 종교 없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 방식을 탐구하여 종교 없이 살아도 괜찮을지, 자녀를 종교 없이 키워도 될지, 고난이나 큰 병을 종교 없이 어떻게 대처할지⋯ 막연한 불안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종교가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내립니다.
“오히려 신이 없는 사회가 점잖고 쾌적한 곳이 될 수 있다”
"천국은 필요치 않다. 지금의 생을 꽉 붙잡아 만끽하고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말 그럴까요? 종교가 없이, 더 정확히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까요? 죽음 이후에 모든 것이 엔딩, 끝! 이라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죽음 앞에서 태연할 수 있을까요? 코로나19의 장기사태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까, 공동체 예배가 없이도 살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때 처음에는 예배에 가지 않으니 이상하고 뭔가 미안한 감정도 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편한가요? 주일이 휴일처럼 느껴져 마음이 교회 있을 때보다 훨씬 여유롭다는 느낌을 받는가요?
그러면서 생각하지요! 종교는 꼭 필요한 것인가. 종교가 없으면 못 살까,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허전할까? 그러면서 문득 종교가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죽음 앞에서 남들 다 죽는 거, 담담히 받아들이면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으로 종교의 필요성, 교회의 필요성을 새삼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런 사람들의 의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1절,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을 논할 때 결혼식만한 게 어디 있겠어요? 결혼식에는 남녀 간의 사랑이 있고 가난해도 먹거리는 풍성합니다. 축하와 축복이 있습니다. 신랑신부는 최고의 주인공입니다. (결혼식장에 신랑보다 더 멋있게 차리고 가지 마세요! 신랑이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신부보다 더 예쁘게 화장하고 가지 마세요! 신부가 여러분의 화려함에 묻힙니다. 그렇잖아도 연애의 무덤이 결혼이라는데 내일부터 싸움전선이 형성되는데 하루조차 주인공이 못되면 얼마나 가련합니까?)
결혼식은 이처럼 행복의 대명사입니다. 신랑신부는 인생도 그리 꽃길만 있을 줄 알았습니다. 종교가 없어도, 하나님 없이도 우리끼리 사랑과 실력만 있으면 겁날 것 없다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은 종교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던집니다. 종교가 그들의 삶에 끼어들면 이것도 마라 저것도 마라, 제약을 가하고 교회 구성원이 되면 불필요한 관심과 간섭으로 구속당한다, 그래서 종교는 나약한 사람들이나 무엇인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만들어진 심리학 내지는 종교철학으로 생각합니다. 믿음이 깊지 못하면, 나는 모자란 것도 없고 지금으로도 만족하니 종교가 굳이 필요 없다, 며 코로나사태를 기회로 교회를 떠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스탠포드대학 출신 샘 해리스는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여 21세기 과학시대에 종교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고 그의 책 ‘종교의 종말’에서 말합니다. 종교의 이름을 내건 폭력에 진절머리가 났기에 종교가 사라져야 오히려 인류에게 평화와 공존이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담은 책입니다. 이참에, 캘리포니아대학교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 교수는 ‘교회의 종말’이라는 책을 씁니다. ‘종교’로서의 교회는 죽어가고 있으며, 기독교는 이제 ‘종교’를 넘어서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기존의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이런 생각들이 많을 거예요!
본문의 신랑도 그리 생각했겠지요. 두 사람만 있으면 행복하고 포도주만 넘치면 즐겁게 살 수 있다, 종교는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인생이 꽃길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 말입니까? 3절, 잔칫집에 가장 기본적인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양(羊)고기가 주식입니다. 양고기는 포도주와 계속 먹어야 질리지 않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져 버리면 양질의 양고기가 있어도 잔치는 엉망입니다. 잔치가 잘못되면 혼주는 쩨쩨한 사람들로 평생 웃음거리가 되고 신랑은 처가식구들에게 시달림을 당합니다.
개역성경에는 “포도주가 모자랐다”, 결혼식 날 신랑에게 모자람이 있다니! 말이 됩니까?
그래요! 목회를 하다보면 누구에게나 부족한 것, 모자라는 것, 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돈은 많은데 가정이 원만하지 못합니다. 명예는 가졌는데 늘 우환이 있습니다. 건강한데 돈이 모자랍니다. 모든 것을 갖춘 사람들이 오히려 우울병에 걸립니다. 젊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목숨이 떨어지고 잘 나가던 사람이 끈이 떨어집니다. 남들에게 갖추어진 것이 내게는 3절, “없다” 하니… 이것이 인생입니다.
풍성한 잔칫집에서서 모자람! 아이러니입니다.
웃으면서 속으로는 울고 풍성한 데 신랑은 모자란 포도주로 걱정합니다. 남들은 그런 심정을 모릅니다. 웃으니까 잘 사는 줄 알고 주인공이니 다 행복한 줄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가 이중 얼굴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모자란 상황을 채워 넣기 위해 신랑은 도움을 청할 사람을 찾게 됩니다.
2절,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예수님은 어떤 자격으로 초대 받았을까요? 친척? 친구? 뭔가 조건이 맞으니 초청을 받았고 그만큼 신랑에게 예수는 남다른 인물입니다. 예수님의 출생 신비와 성장하면서 비범함을 알고 있었기에 혹시 방법이 있지 않겠나? 예수 주변에 제자들이 많아 비밀을 유지하려고 마리아를 통해 부탁합니다. 일종의 청탁이지요! 신랑의 부탁을 받은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전합니다.
3절, …예수의 어머니가…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이게 믿음의 첫 출발입니다. 살다보면 내 힘으로는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한계상황’(限界狀況),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는 이를 ‘극한상황’(極限狀況)으로 대체합니다. 한계상황에서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삶을 포기하고 자살합니다.
우리나라는 자살 세계 1위, 2018년 경우 하루 37.5명씩 자살합니다. 충남 제주 충북 순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연간 80만 명이 자살합니다. 40초마다 1명씩 자살하는 꼴입니다. 왜 죽습니까? 모자란 부분을 애쓰고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으로도 명예로도 성공으로도 채워지지 않으니 의미를 찾을 수가 죽는 것입니다. 사회복지가 앞서가는 스웨덴 핀란드 같은 북유럽국가에서 자살률이 높습니다. 무의미해서 죽습니다.
그래요! 사람들에게 개인마다 집집마다 나름대로 모자람,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질이든 개인적 상처, 자녀들로 오던 누구에게나 2% 부족, 모자람이 있습니다. 100% 만족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2%의 부족을 주십니다.
현대 정주영씨는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고 삼성 이건희씨 막내딸은 결혼을 반대하자 자살했어요! 부모에게는 평생 한이요, 남아있는 어떤 자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2% 부족의 공간입니다!
바로 이 2%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인간의 한계점, 이것이 2%부족입니다. 삶은 계란은 비어있는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도 이런 작은 공간, 2%의 공간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이 비어있는 공간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2% 비어있는 허전한 공간은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거지요.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세상이 좋아져도 과학이 종교를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이 모자람은 과학으로 채워주거나 돈이 채워주거나 어떤 대상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삭개오는 돈으로 외모적 모자람을 채우려 했고, 수가성 여인은 다섯 남자들로 마음의 허함을 채우려 했고, 니고데모는 영적인 갈증을 학문으로 채우려 했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권력으로 채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날 때까지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이건 하나님으로만 채워져야 하는 모자람인데 다른 것으로 채워보려 메꿔보려 번지수를 잘 못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3:11) 칩을 심어놓으셨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부분! 그게 2%의 작은 공간이라 해도 과학이나 돈, 명예…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넓은 공간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종교의 입지가 좁아진다 해도 최종 승자는 종교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어정쩡하게 지내다 이걸 놓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부탁을 받은 예수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4절,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대번에 거절해 버렸습니다. 그건 어머니가 아니라 신랑의 청탁에 대한 거절입니다. 신랑의 심정이 어떻겠어요? 사람들에게 거절은 분노하지만 하나님으로 거절이 왔을 때는 참 섭섭해요!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매달렸는데 기도를 이루어주지 않으면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습니다.
20일을 금식하며 기도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을 때 주님이 많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기도가 상처가 되고 기도가 싫어졌습니다. 내 기도 거절에 대한 섭섭함입니다.
왜 기쁨이 없습니까? 마리아처럼 거절을 당해서? 모욕을 당했다 생각해서? 교회 안에서 내 뜻이 거절당했다 생각하면 기쁨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5절,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내 아들이 무슨 말을 하던 그대로 하라는 그 말을 들으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7절,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동문서답과 같은 주문입니다. 포도주가 없어 안달인데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지라! 뱃사람의 입장에서는 ‘무데뽀’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도 순종했고 하인들도 순종했습니다. 성경은 고집을 부리거나 따지는 사람들보다는 7절, “아귀까지 채우니” 순종하는 사람들이 이적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수학자 파스칼은 기독교 신앙은 이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라고 합니다.
예수: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8절)
연회장:집집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9.10절)
유대사회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포도주를 담습니다. 20년산 19년산… 결혼식에서는 가장 오래 담은 포도주부터 대접합니다. 모두 취해 맛을 알아볼 수 없을 때는 근래에 담은 맛없는 것을 내놓습니다. 이미 취했기에 그 맛이 그 맛이고… 모릅니다. 그러니 연회장은 놀랍니다.
집집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나중에는 안 좋은 것을 내는데…. 이게 세상입니다. 세상은 눈을 속이고 맛을 속입니다. 세상은 용두사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좋다가 나중에는 나빠지고 싫어집니다. 이게 세상이었기에 연회장의 눈에는 이 집은 상식을 넘어섰습니다. 이 집은 도대체 어떤 집이기에 갈수록 더 좋은 포도주를 내는가…. 오늘 제목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니 진짜 포도주가 나왔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불행이요 망신이라 생각하고 근심했는데 오히려 부족했기에 하나님께 더 매달릴 수 있었고 더 좋은 포도주를 하객들에게 내놓고 두고두고 동네에서 회자(膾炙)되고 성경에도 버젓이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화가 변하여 복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일 처리 방법입니다.
내 삶에 무엇이 모자랍니까? 그래서 두렵고 창피하고 외롭습니다. 누구에게 대놓고 심정을 토로할 수 없습니다. 혼자 울고 그래서 속상하고 그래서 아파합니다.
그러나 주님에게 나오면 그게 끝이 아닙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니 진짜 포도주가 나옵니다! 주님에게 순종하면 맹물의 상황도 맛내는 포도주로 변합니다. 근심이 즐거움으로 변합니다. 구원의 주님 예수님으로 채워지면 다시 웃고 다시 잔치를 시작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과학시대에도 코로나와 같은 재앙들이 교회를 공격해도 여호와 종교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론
미국의 청교도들은 숱한 고난 중에서도 하나의 소망을 붙들고 견디어 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영국 빅토리아여왕 시대에 살았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노래합니다.
“인생의 첫 부분은 인생의 마지막을 위해 지어진 것/ 가장 좋은 그 부분은 아직 오지 않았네/ 우리의 때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네.”
20세기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시에서 노래합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직 않았다! 내 부족함을 주님은 무엇으로 채워주실까?
“포도주가 떨어지니 진짜 포도주가 나왔다!”
한 번 더 기대해 봅시다! 내 앞날에 아직 오지 않는 것! 그래서 하나님으로 채우는 인생은 늘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