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설교도 맛있다] 믿음을 리빌딩(rebuilding)하자!(여호수아 1:1~9)

갈렙처럼 2025. 2. 9.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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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같은 코로나 시간에 했던 설교입니다.]

 

믿음을 리빌딩(rebuilding)하자!

여호수아 1장 1~9절

 

서론

지금 대한민국이 국가적 위기상황입니다. 연초부터 코로나19가 마스크사회, 비대면사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감염위협으로 거리두기를 하자 심리적 공백으로 활력을 잃었고 이로 인해 경제가 돌아가지 않으니 생계위기, 북한 김여정의 위협으로 안보 위기까지 있습니다.

 

교회도 위기상황입니다. 예배가 중단되고 순식간에 주일성수와 예배당예배가 무너졌습니다. 주일가정예배가 나타나 주일성수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주일성수 행세를 하고, 영상예배는 예배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예배인척 흉내를 냅니다. 제 목회 37년에도 위기의 심정입니다.

 

위기(危機)라는 말은 본래는 회복과 죽음의 분기점이 되는 갑작스럽고 결정적인 병세의 변화를 가리키는 의학용어입니다. 위기는 급작스런 상황 변화를 충격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위기는 찾아옵니다. 잘 넘겨야합니다. 그러려면 평소에 위기관리가 필요합니다. 위기관리는 어떤 상태에서 위기를 감지했을 경우 위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그 영향을 최소한으로 막고 재빨리 평상 또는 그것에 가까운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이기에 잘못 대처하면 '위험'하고 잘 응대하면 '기회'가 됩니다. 그래서 위기관리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본문도 위기 상황입니다.

누가 위기를 만났습니까? 여호수아입니다.

그의 위기는 선임자가 너무 탁월했습니다. 리더십을 이양(移讓)받기는 했지만 모세는 너무 큰 지도자였습니다. 자기는 부관출신입니다. 앞에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원주민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가 지휘할 군대는 제대로 훈련되지 않았고 걸핏하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국민들은 조금만 허점을 보이면 돌을 던집니다. 모세에게도 고질병처럼 돌을 던지고 거역했는데 여호수아 자기는 얼마나 우습게 대할 것입니까? 그래서 여호수아는 외롭고 두려웠습니다. 그때 여호와가 말씀하십니다.

 

6절, 강하고 담대하라… 두렵지 않으면 이런 격려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만큼 떨고 있습니다.

7절 오직 상하고 극히 담대하여… 극히, 엄청 떨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9절 두려워하지 말며…. 긴장을 넘어서서 주체할 수 없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 선정된 기쁨과 감격은 며칠뿐입니다. 200만의 생사가 그에게 달려있습니다. 어깨가 무겁지 않겠어요? 재벌아버지가 죽어 하루아침에 재벌기업을 물려받아 회장에 오른 아들이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여호수아도 떨고 있습니다. 인생의 위기입니다.

 

이런 때에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 위기관리가 되는 것입니까?

그런데요, 제 눈에는 여호수아가 아니라 여기에서 자꾸 다른 남자가 보입니다. 여호수아의 두려움은 명분이라도 있지만 이 남자는 어디 가서 두렵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숨겨진 그는 지도자가 되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지도자가 되지 못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갈렙입니다. 남의 본문에서 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지금 여호수아 자리는 갈렙의 자리이고 성경의 여섯 번째 책은 여호수아서가 아니라 갈렙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1절도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라고 되지 않고 “여호와께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이르시되…”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갈렙은 여호수아와의 경합에서 선택 받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가 되는 지위를 얻었지만 갈렙은 2등입니다. 은메달은 10개 100개 있어도 금메달 하나보다 못합니다. 대통령 선거에 2등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세상은 항상 금메달리스트만, 1등의 대통령 당선자 그 한 사람만을 기억합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도 재직동안 수없이 위기에 봉착하지만 실패한 사람들은 그 실패 자체가 인생의 분노요 위기입니다. 그래서 위험한 것입니다.

 

갈렙의 인생 위기는 세 번 고비를 만납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습니다.

1차 위기는, 상황의 위기입니다. 그건 청년시절의 위기입니다. 출애굽 11일만에 당도한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 정탐꾼의 일원이 되어 최선봉에 섰을 때입니다. 유다부족 대표로 뽑혔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러나 기회가 위기가 될 줄 몰랐습니다. 가나안 원주민 거인들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뚜기였습니다.

 

열 명은 팩트에는 근거했지만 부정적 보고를 합니다. 원주민들은 거인들이기에 우리가 그곳에 가면 죽는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도 된다! 는 소수 의견을 내놓습니다. 백성들이 돌로 치려했습니다(민14:10). 고생은 고생대로 해놓고 죽게 된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위기를 느낍니다.

 

2차 위기는, 후계자 경쟁에서 밀렸을 때, 오는 명예의 위기입니다. 중년에 온 위기입니다. 모세의 후계자는 누가 될까? 정탐꾼 12명이 후계자였는데 10명은 탈락했습니다. 자연히 여호수아와 갈렙이 남았는데 여호수아는 관료사회에서 인정 받았고 갈렙은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았습니다. 누가 낙점될까? 결과는 여호수아의 승(勝)입니다.

 

여론에서는 갈렙이 이겼는데 임명권자에게 밀려 승진에서 탈락합니다. 갈렙이 중년이었기에 재기의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충격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평생을 여호수아와 대립하며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어요. 그만큼 중년남자 갈렙은 자기 생애에 위기가 온 것입니다.

 

3차 위기는, 세월의 위기, 노년의 위기입니다. 은퇴할 나이 85세가 되었지만 가나안에서 후손에게 물려줄 땅을 얻지 못했습니다. 젊었으면 기다릴 수 있고 기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족장으로 큰 땅을 차지할 텐데 갈렙에게는 제대로 된 땅이 없습니다.

 

늙음은 위기의 종착역입니다. 노년이 되면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립니다. 이 구멍을 심리학자들은 ‘실존적 진공상태’라 합니다.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쏠리던 에너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쏠리던 에너지들이 목적지에 도달하면서 철수해 버리는 데서 오는 남자들의 공허감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노년에 허탈과 외로움의 위기를 맞습니다.

 

세계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중에서 한국 자살률이 세계 1위입니다. 세계 1위의 오명에는 뜻밖에도 노년 자살률이 결정적입니다.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OECD 평균과 비교해도 3~4배에 달합니다. 대한민국의 노인세대는 그야말로 위기의 세대가 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의 상황은 어떤가요? 상황의 위기, 승진의 위기, 연령의 위기… 뿌듯한 삶을 살기에는 삶이 너무 공격적이지 않습니까? 인생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위기에 처한 적은 없습니까?

이런 위기는 얼마든지 원칙보다는 편의를 좇아 행동하게 합니다.

 

갈렙은 3차 위기에서도 비틀거리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14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4절,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갈렙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달라도 뭔가 달랐습니다. 기도가 달랐고 마음씀씀이가 달랐고 하나님을 이해하는 마음이 남들과 달랐습니다. 뭔가 다르니 뭔가 다르게 행동한 것입니다. 이게 평소에 닦은 위기관리 비법입니다.

 

여러분도 인생의 위기에서 남들과 뭔가 다르기를 바랍니다.

두려운 상황에서, 승진 탈락에서 나이로부터는 외로움에서도 남들과는 뭔가 다른 사람들, 다른 행동들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려면 평소에 위기관리가 필요합니다. 평소에 위기를 대비하고 잘 관리해야 고비를 넘길 수 있습니다. 갈렙이 위기를 잘 넘긴 것은 위기관리를 잘했기 때문입니다.

 

-상황으로 올 위기관리:평소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명예로부터 오는 위기관리: 사람마다 역할이, 그릇이 다르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노년의 위기관리:연령에서의 은퇴는 있지만 사역에서 은퇴란 없다 믿었습니다.

 

그래서 위기가 왔을 때도 비틀거리지 않았습니다. 잘 나간다고 교만하지 않았고, 안 되었다고 비굴하거나 자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는 온전히 따랐습니다. 쳐지거나 불만을 늘어놓거나 공동체를 떠나거나 여호수아의 발목을 붙들고 딴지를 걸지 않았습니다. 비틀거리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반듯하게 일편단심의 정도(正道)를 걸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히 따랐다는 것은 ‘충성된 개’를 말합니다. 개는 충성의 아이콘입니다.

 

성악가가 개를 키웠습니다. 성악가는 개를 사랑했고 개는 성악가의 노래를 사랑했습니다. 성악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개가 죽음의 의미를 압니까? 주인이 문밖으로 나오지 않고 노래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개는 주인이 어디로 떠난 줄로 알고 주인을 찾아 거리를 헤맵니다.

 

레코드가게 앞을 지나는데 주인 성악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개는 주인이 집안에서 노래하는 줄 알았습니다.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하루, 이틀… 주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게 주인이 쫓아냈지만 개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자리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1884년에 설립된 콜롬비아레코드사의 앰블럼은 바로 그 개의 모습입니다. 주인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주인을 기다리다 죽어간 개의 충성심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갈렙이 온전했다는 것은 충성스런 개의 모습,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따라갔고 사랑했고 죽은, 바로 그 변함없는 충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편단심의 충성심에 충분한 보상을 해주셨습니다.

갈렙이 연령의 위기를 잘 극복했을 때 헤브론 땅을 얻습니다. 그 땅에서 자손 다윗은 7년을 왕 노릇합니다. 헤브론이 없었다면 다윗은 사울의 추격에서 견디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훗날 여호수아 자손들은 북(北)이스라엘의 중심 지파가 됩니다. 땅도 많이 받고 자손들도 많아 대민족을 이루었습니다. 남유다는 갈렙의 유다지파가 잡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남유다가 항상 정통권이 있었고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후계자 구도경쟁에서는 여호수아에게 밀렸지만 후대의 역사는 갈렙이 이겼습니다. 예수님은 갈렙의 유다지파로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경쟁에서는 갈렙이 이스라엘의 정통-성골(聖骨)이 되고 승자가 된 것입니다. 일편단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신 것입니다. 세상은 일편단심이 성골(聖骨)임을 보여줍니다.

결론

스포츠 경기에 리빌딩(rebuilding)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약해진 팀의 전력 보강을 위해 기존 선수를 방출하거나 새 선수를 기용하는 일입니다. 리빌딩은 원래 건축용어입니다. 아파트 같은 건물의 골조가 세월이 지나 조금씩 녹아내리면 재건축을 합니다. 그런 것처럼 야구팀 주전선수들의 기량도 조금씩 내려가고, 10년에 한두 번쯤은 ‘마음먹고 칼을 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당장 우승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팀의 체질을 강화함으로 3~4년 안에 다시 정상권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틀을 다지겠다는 뜻이 리빌딩이라는 말에 담겨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대한민국도, 한국교회도, 우리 신앙심도 바닥입니다. 확진자 동선에 있나 없나 거기에도 명심해야지만 지금은 믿음을 리빌딩해야 할 때입니다. 리빌딩은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 정도로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장선수들과 코치진을 정리하고 신진세력들로 그 자리를 채우는 야구팀의 리빌딩처럼 우리 믿음의 본질에 대한 리모델링, 리빌딩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라는 믿음의 위기를 믿음을 리빌딩하는 기간으로 삼읍시다. 갈렙처럼 일편단심 믿음으로 리빌딩 한다면 우리도 ‘남들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갈렙처럼 온전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을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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