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란 무엇인가?
로마서 1장 18~23절
서론
지난주일 설교에서 ‘기독교는 계시종교’라는 내용을 전했습니다. ‘계시’라는 단어는 “살짝 보여주다”, “숨겨진 것을 들추어 보여 준다”, 마치 신부 얼굴을 가린 면사포를 살짝 올려 신부의 찰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신부는 보여준 만큼만 보게 됩니다. 만약 신부가 면사포를 살짝 보여주지 않으면 신랑이나 사람들은 제 마음대로 신부 얼굴을 상상하면서 소설을 쓸 것입니다. 그래요! 계시는 ‘사람의 지혜로써는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가르쳐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만,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만 인간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계시입니다.
기독교가 타종교와의 차별성 중의 하나가 계시사상입니다. 타종교에는 계시사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계시는 기독교의 블루오션입니다. 기독교가 땅의 종교가 아니라 하늘의 종교라는 이유는 ‘계시’라는 이 단어에 있습니다. 하늘 종교와 땅의 종교는 그 기원이 하늘이냐, 땅이냐? 로 구분됩니다. 종교의 시작을 하늘에 기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시작된 종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의 계시가 없는 한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어요. 존재 형태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쯔빙글리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곤충이 모르는 것처럼 신이 어떤 분인가를 우리 스스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우리는 알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계시에 의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게 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 스스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존재, 성품, 계획… 등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비의 비밀을 열어 우리에게 보여 주셔야(계시) 알 수 있고 또한 보여주신 것만 알게 됩니다.
자연계시(일반계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실 때(계시하실 때) 몇 가지 수단을 사용하셨습니다.
자연계시(自然啓示)와 초자연계시(超自然啓示)
일반계시(一般啓示)와 특별계시(特別啓示)
자연계시와 일반계시, 초자연계시와 특별계시는 특수한 부분에서 다른 면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같은 성격으로 보면 됩니다. 일반계시는 인간의 구조와 자연을 통해 나타났다고 하여 자연계시라, 특별계시는 우주의 원리를 좇지 않고 초자연적인 방법과 수단에 의해서 드러낸다, 하여 초자연적 계시라고도 합니다.
[너무 이 부분에 집착하면 설교가 딱딱할 수 있습니다. 청중의 수준을 생각하면서 간단히 설명하던지 충분히 설명하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설교할 때에 1번 자연계시, 2번 특별계시… 이런 식으로 전개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없애고 물이 흐르듯 흘러갑니다. 그러니까 묶음 안에 있는 이 내용을 전하지 않고 바로 아래 내용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 맨 처음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에 사람을 두실 때는 계시라는 방식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죄성이 없는 첫 사람들은 영이 맑았고 눈이 맑았기에 어디서나 하나님을 느낄 수가 있었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신령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에는, 생명과를 따먹으라,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따 먹지 말라(2,3절)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뱀의 소리까지 들었으니 얼마나 영민한 존재입니까. 선악과를 따 먹은 직후에 아담부부는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움직임을 포착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나눕니다.
에덴에서 추방당하기는 했지만 셋과 그의 자손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26)고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창조주 이름을 알고 인간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계시는 분의 속성을 어느 정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배하며 살았습니다. 이들에게는 종교심과 자연을 통한 계시로 충분했습니다.
자연계시는 자연현상에서, 인간 정신의 일반적 구조에서, 역사 속에서, 양심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바울도 종교심, 양심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기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19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였다는 것은 일말의 신적지식이 남아있고 양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에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흔적들이 계시되었습니다.
20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가 만드신 만물’, 자연입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계시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자연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충실히 감당한다고 합니다(시19:1).
종교개혁자 칼빈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의 아름다운 조화를 바라보면서 “하늘의 찬란한 밤은 마치 배움의 교실에 있는 선생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구나”라고 탄복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만물은 하나님의 얼굴이다”, “자연은 제2의 성경이다”라고 했습니다. 우주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협동하여 창조하셨기에 풀 한 포기에서조차 하나님의 창조의 힘과 사랑, 지혜가 계시되고 있어 만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천경자씨 그림을 보면 얼른 천경자구나(특히 뱀), 알아보듯 온 우주와 자연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양심은 거울처럼 맑아 자연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6장에 들어오면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서로 좋아 결혼하면서 영성은 몰락하고 육신만 강화되는 동물근성의 인간으로 변모하며 인간은 ‘육신’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3절) 떠나버립니다. 자연히 인간 세계에는 그때까지 알게 모르게 내려오던 여호와라는 이름이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양심은 어느 정도 있지만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종교적인 양심입니다. 자연이 창조주의 작품이라는 것은 여전히 나타내고 있지만 여호와라는 이름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본성 속에 있는 종교심을 이용해서 사물들을 해석하고 허상들을 자꾸 만들어 냅니다.
21절,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마음은 어둡고 양심은 오염되고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신적기능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자연계시와 양심계시는 얼룩이 되어 22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라 거짓된 허상을 보고 만들어 냅니다. 바울이 이를 잘 지적합니다.
23절,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범신론. 우주밖에 신이 따로 있지 않고 자연 모두에 신의 요소가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이름을 빼버리니 모두가 다 창조주 신으로 보입니다.
-고목이나 바위… 등 특정한 자연을 숭배합니다. 제주도에서는 뱀을 섬기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을 신령한 존재로 압니다.
-옥황상제, 천지신명, 산신령, 용왕… 등의 허상(虛像)을 만들어 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단절되었기에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들의 이름을 상황과 장소에 맞게 창작해 내는 것입니다.
이런 신의 개념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린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조각과 그림을 그려내듯 만물을 창조한 대상으로 신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의 욕망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직접 천국에 입성하는 자력종교를 만들고자 합니다.
창세기 11장, 바벨탑을 쌓아서 인간 스스로 천국에 올라가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건 엄청난 프로젝트입니다. 우주선을 만들어 달과 행성들을 정복하고자 하는 야망보다 더 굉장한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탑을 무너 뜨려버리십니다. 영생을 스스로 만들어 내려는 인간의 자력종교의 욕망을 헐어버린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 과학, 연합운동은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할리파 빌딩으로 163층에 828m입니다. 123층의 롯데월드타워는 7위이며 높이는 554m입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르는 건물들은 바벨탑을 통해 이루지 못한 인간의 욕망을 보여줍니다. 과학이 끝이 없다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자리에 앉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마디로 꿈 깨시라! 입니다. 바벨탑이 무너지듯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인간의 꿈은 좌절될 뿐입니다. 인류는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적나라하게 목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탑을 헐어버리신 후에 아주 의미 있는 행동을 하십니다.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 서로의 소통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이게 상당히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되는데 여호와라는 이름은 머리에 전혀 없습니다. 한국인들이 오래전만해도 천지신명이나 옥황상제… 등의 개념은 있어도, 하늘님이라는 신적 개념은 있어도 여호와는 없었습니다. 문맹(文盲)이 있고 컴맹(盲)이 있는 것처럼 인류는 신맹(神盲)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제로상태로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귀뚜라미에 더듬이가 끊어진 것처럼 사람들의 종교성은 길을 잃어버리고 자연에서 종교성을 만족시킬 대상들을 찾게 됩니다. 그 숭배대상이 피조물이요 인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제 자연계시는 인간의 타락과 함께 그 가치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죄가 없을 때에 자연계시는 빛을 더해가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알려주었는데, 죄로 말미암아 자연이나 양심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자연계시는 하나님이 존재하고 계시다는 막연한 생각은 갖게 할뿐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 구원 계획과 방법 등을 알게 하는 데는 크게 부족합니다. 이를 가리켜 ‘계시의 불충분성’이라 합니다.
그러면 인류는 어찌됩니까. 한 사람도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창조계획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보존하고 이걸 인류에 유통시킬 한 사람을 선택했고 그 한 사람이 한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한 사람은 아브라함이고 한 민족은 그의 자손인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선민인 것입니다. 이들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시기 시작합니다. 일반계시(혹은 자연계시)의 불충분성을 아시고 특별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초자연계시(특별계시)
특별계시, 초자연계시는 이방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보여주시는 계시입니다.
특별계시의 첫 번째 방식은 ‘하나님의 현현(顯現)’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속성을 어떤 이미지로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의 움직임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성(聖性)이 훼손되지 않는 수준에서 사람에게 가까이 오사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막의 그룹 사이에 좌정하셨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습니다(시80:1, 99:1). 성막 안과 위에 서려있는 성스러운 영적기운을 보면서 하나님의 임재와 나타나심을 느꼈습니다.
-불과 연기, 폭풍, 폭풍우 등을 통해서 나타나셨습니다(창 15:17, 욥 38:1, 왕상 19:12).
-때때로 사람의 모양으로도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로 표현하나 하나님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창16:13, 31:11). 이런 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특별계시의 두 번째 수단은 음성, 제비뽑기(삼상10:20), 꿈, 환상을 통한 ‘직접적 전달’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개입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와 주시는 말씀과 뽑기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속성을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계시의 세 번째 수단은 이적(異蹟)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 아니면 직접적인 전달로 계시하시지만 어떤 경우에는 초자연적 이적을 통해서 계시하십니다. 열 가지 재앙, 만나와 메추라기, 여호수아가 기도할 때 태양과 달이 정지되는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런 계시들은 사실은 초보적인 계시입니다. 가장 소중한 계시가 남아있는데 성경계시와 독생자 계시입니다. 하나님 계시의 최고봉인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과 성경 66권의 완성으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런 계시방법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성경 66권이 하나님의 본질을 절반도 보여주지 못하지만 구원을 위해서는 99.9% 충분합니다. 그러기에 더 이상 다른 것들이 필요 없습니다. 이건 다음 시간에 하겠습니다.
기독교의 이단이나 여타 종교들이 나타나는 까닭은 대부분이 특별계시를 받지 못하고, 인류에게 공통으로 허락하신 자연 계시만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려다 보니 인간 머리에서 나온 (존재하지도 않는) 신들이 생기고, 수백 수천의 종교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것들은 결국 땅에서 출발하기에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결론
자연계시에 바탕을 둔 모든 종교는 인간 지혜의 소산물입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에 의해 세워진 기독교는 하늘에서 시작되고, 하늘까지 오를 수 있는 하늘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되고 복음이 됩니다. 자연계시의 일환인 인간의 지혜로 시작된 모든 종교는 땅의 종교일 뿐입니다. 그 종교의 끝은 하늘이 아니라 땅속(음부)일 뿐입니다(계 21:8).
우리는 땅의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수혜자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하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기독교 믿음의 우수성과 감격이 있습니다. 이런 수혜자가 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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