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설교

일반 계시란 무엇인가?(시편 19:1, 로마서 1:20)

갈렙처럼 2025. 2. 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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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픽사베이

일반 계시란 무엇인가?

시편 19편 1절, 로마서 1장 20절

 

서론

지난주일 설교에서 ‘기독교는 계시종교’라는 내용을 전했습니다. ‘계시’라는 단어는 타종교와의 차별성입니다. 기독교가 땅의 종교가 아니라 하늘의 종교라는 까닭이 ‘계시’라는 이 단어에 있습니다. 하늘 종교와 땅의 종교는 그 기원이 하늘이냐, 땅이냐? 로 구분됩니다. 종교의 시작을 하늘에 기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시작된 종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늘에서 시작된 종교

하늘 종교와 땅의 종교는 그 기원이 하늘이냐, 땅이냐? 로 구분됩니다. 종교의 시작을 하늘에 그 기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의해서 시작된 종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떤 계시를 해 주고 계신가요?

 

먼저 우리 인생이 궁금한 몇 가지를 살펴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비록 철학자는 아니어도 인생에 대해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우주의 기원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떤 방법으로 구원하시는가?”

 

이런 사실들은, 인간의 지혜로써 규명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은 인간의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려고, 종교가가 생기고, 철학가가 생기고,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종교를 만들고, 학설을 만들어내었지만 그것들은 수천 년이 지나는 지금까지도 종교적․철학적․과학적 가정이나 추측이나 학설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람의 모양은 육안으로 볼 수 있고 알 수 있지만 두뇌는 특별한 기계가 아니고서는 드려도 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는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이성을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위해서 과학이 있는 것이고 철학이 있고 종교가 있습니다. 특히 종교는 철학이나 과학이 미치지 못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 영적인 부분을 다룹니다.

 

그렇다고 종교가 그 모든 일들을 다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인간 이상의 세계를 논하고 영생을 말할 수 있는 종교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여러 부분들(존재성품, 계획 등)을 보여 주셔야(계시)합니다. 하나님 편에서의 자기 계시가 없는 한 인간은 결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존재하는 형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의하여 인간은 신적 지혜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 말은 결국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인간의 이성적 연구와 추리를 한다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 영역 밖에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시고 그 사람에게 자신에 관한 것(성경의 내용)을 계시해 주는 사람들만이 성경을 믿을 수 있고 점차 이해해 나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영적으로 눈이 뜨이기 시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실감이 가지 않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계시의 종류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인간 세상에 드러내실 때(계시하실 때) 몇 가지 방법을 동원하셨습니다.

 

자연계시(自然啓示)와 초자연계시(超自然啓示),

일반계시(一般啓示)와 특별계시(特別啓示)

 

자연계시와 일반계시, 초자연계시와 특별계시는 어떤 특수성에 있어서 다른 면이 있다고 신학교에서는 가르치지만 일반인들의 수준에서는 같은 성격으로 봅니다.

 

일반계시는 인간의 구조와 자연을 통해 나타났다고 하여 자연계시라고도 부르고, 특별계시는 우주의 원리를 좇지 않고 초자연적인 방법과 수단에 의해서 드러낸다하여 초자연적 계시라고도 합니다.

 

우선 자연계시(일반계시)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자연계시(일반계시)는 하나님께서 일반적인 방법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와 사역을 드러나게 하시는 계시입니다. 즉 자연현상에서, 인간 정신의 일반적 구조에서, 역사의 사실 속에서, 인간 양심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시편 기자는자연(自然)은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을 충실히 감당한다고 합니다(시 19ㅣ1)

바울도, 자연 속에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계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롬 1:20).

 

종교개혁자 칼빈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의 아름다운 조화를 바라보면서 “하늘의 찬란한 밤은 마치 배움의 교실에 있는 선생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구나”라고 감탄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만물이 하나님의 얼굴이다”, “자연은 제2의 성경이다”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날 자연만물을 바라보다가, 아니면 산과 바다에서 아침을 맞을 때 그 장엄한 모습을 보면서 창조주의 존재가 문득 느껴졌다면 자연 속에 아직도 하나님의 자연 계시(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심)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신적 지식이 파괴된 인간

우주만물의 존재는 하나님의 존재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우주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협동하여 창조하신 것이기에 풀 한 포기에서조차 하나님의 창조의 힘과 사랑이 계시되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만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존재를 바로 인식할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그림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안목을 갖고 있는 이들이 천경자 씨 그림을 보면 얼른 천경자씨 작품이구나 하고 알아보듯(우리 시대에는 천경자씨의 그림이 유명했습니다. 특히 뱀 그림), 온 우주야말로 하나님의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이 우주를 보며, 하나님을 섬기고 선하게 살면 인간은 계속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자연만으로도 창조주의 존재와 솜씨와 마음과 계획을 알 수 있을 만큼 자연은 완벽하게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냈고(계시) 사람의 양심은 거울처럼 맑아 자연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이것이 천국의 상태입니다. 에덴은 그야말로 천국을 방불했습니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 죄가 들어오면서(다음에 다시 배우게 됩니다. 이상(異狀)이 생겼습니다. 죄는 인간의 여타의 기능을 마비시킨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어도 육신에는 별 지장이 없습니다. 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요즘말로 “얼짱”이 되기가 더 쉽습니다. 오히려 죄는 정신적인 면에서 영향을 끼칩니다. 정신병 우울병… 등이 죄가 인간에게 미치는 또 다른 영향입니다. 그렇다고 정신병이나 우울증 등이 죄 자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간에게 들어온 죄는 어디를 건드렸는가? 하나님을 지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인식(認識) 기관의 기능을 마비시켜 버렸습니다. 차라리 육신의 어떤 기능을 마비시켰다면 인간은 육신의 외모는 다른 짐승들보다 못해도 영적으로는 아름다운 영성의 존재로 살아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죄의 결과, 마음이 어두워져 버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바르게 알 수 있는 기능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인간은 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바른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짓된 하나님의 허상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하나님의 허상(虛像)-그것은 아래의 몇 가지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범신론-신은 곧 만유, 만유는 곧 신이어서 우주밖에 신이 따로 있지 않는다는 철학적인 주장이며, 범신론을 신봉하는 종교를 범신교(汎神敎)라고 합니다.

 

∙자연숭배-고목이나 바위… 등 특정한 물체를 신으로 섬기는 일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제주도에서는 뱀을 섬기는 집이 많았습니다. 뱀에게 때마다 음식을 갖다 주곤 했습니다.

 

∙인간의 머리에서 각 종 신(神)을 만들어 냄-옥황상제, 천지신명, 산신령, 용왕… 등, 한자등은 한자문명이 만들어 낸 신의 개념입니다.

 

이상의 신적개념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계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린 인간에게서 나온 것들입니다. 인간은 문학을 창조해 내듯, 과학을 통해 눈앞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발명해 내고 만들어 내듯, 예술적인 감각으로 조각상과 멋진 그림을 그려내듯 만물을 창조한 대상으로서 신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이 소위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각종의 신입니다. 신화로서의 신들을 창조해냈고 종교로서의 신들을 상상해 냈습니다. 살아있던 존재가 신이 되기도 했습니다. 원래는 그 가르침이 종교의 내용이었는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가르침을 준 대상이 교주가 되고 그 교주가 신격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숭배의 대상(神)이 되었습니다. 특히 불교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로마 가톨릭도 점차 마리아 숭배종교로 전락해 가는 과정인데 만약 그렇다면 그들 역시 불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자연계시로는 부족해

이해를 돕기 위해 같은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할까요? 아담은 자연물을 볼 때 하나님의 참 모습을 완벽하게 인식했으나, 범죄 한 이후 그 자손들은 자기들의 종교심으로 신에 대해 생각하고 연구하고 창조해 나갔습니다. 미개사회에서는 눈에 보이는 형상을 신으로 숭배하는 범신론적 신앙이 판을 치고, 문명사회에서는 자아 속에서 신을 발견하려는 종교가 사상이니 철학이니 신(新)종교니 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종교철학과 종교심에 의해 인간은 수도 없이 많은 신과 종교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석가모니의 불교, 마호메트의 이슬람종교, 인도의 힌두교… 등의 큰 종교와 부족 단위의 종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종교의 신들은 우주를 창조했고, 인간의 내세를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 어느 신을 믿어도 도달점은 하나라고 합니다. 신을 믿고 착하게 살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종교학적 입장에서 볼 때는 옳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전혀 옳지 않습니다. 앞의 주장은 자연계시에 바탕을 둔 종교관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자연계시는 인간의 타락과 함께 그 가치가 거의 없어져 버렸습니다. 인간이 죄가 없을 때에 자연계시는 빛을 더해가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알려줄 수 있었는데, 사람이 죄를 지은 까닭에 자연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전(全) 존재를 충분히 인식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자연계시는 하나님이 존재하고 계시다는 막연한 생각은 갖게 해도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 구원의 계획과 방법 등을 알게 하는 데는 크게 부족합니다. 이를 가리켜서 신학적 용어로는 “계시의 불충분성”이라고 합니다.

 

일반(자연)계시의 불충분성-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특별(초자연)계시를 다시 주신 것입니다. 다음 주에 특별계시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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