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설교

하나님의 초자연계시(2)(창세기 23:36, 출애굽기 19:9)

갈렙처럼 2025. 2. 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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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픽사베이

하나님의 초자연계시(2)

창세기 23편 36절, 출애굽기 19편 9절

 

서론

특별계시는 하나님께서 구원받은(받을)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특별한 계시입니다. 자연계시는 누구에게나 나타나고 있지만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백성들 중심으로 나타납니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특별계시, 그 첫 번째 수단-하나님의 직접적인 현현(顯現)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특별계시의 두 번째 수단은 ‘직접적 전달’이라는 수단으로 자신의 존재와 의지(意志)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직접적인 현현(顯現). 지난 주일 설교에 이어)

2. 하나님의 직접적 전달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더불어 교통하실 때에는 자신의 사상(思想)과 의지를 매우 직접적인 방법으로 선명하게 시달하셨습니다. 꼭 들을 수 있는 음성이 아니었다 해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교감(交感)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교감은 언어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언어가 모든 생물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등동물들은 나름대로 의사를 소통합니다. 본능적인 교감으로 서로간의 의사를 소통하는 것입니다.

 

첫 번 째 사람인 아담과 하와도 그렇습니다. 에덴에서 하나님과 직접 말(言語)로 의사소통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이, 하나님은 영(靈)이시고 사람은 육(肉)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입이 없는 대신에 사람은 입으로 언어를 사용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합니다. 그러다보니 양자간의 의사소통은 쉽게 될 수 없습니다. 특별한 수단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에덴에서의 첫 인간은 조금 다릅니다. 그는 육신의 존재이지만 그 육신은 죄성(罪性)이 없습니다. 그 영은 아주 깨끗하고 거룩합니다. 그리고 예민해서 하나님의 의사를 마음으로 포착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존재는 영과 육이라는 차이를 극복하고 교감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에덴이 천국의 모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했습니다. 타락은 하나님과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영적 감각기관을 파괴시켜 버렸고, 하나님의 의사 전달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와 의사를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셨는데 그것은....

 

㉠ 음성 계시

가끔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기에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고 죄가 세상에 관영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창 6:3).

 

그 이후 인간은 하나님과 즐거운 친교를 나누지 못했고 자신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속성이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는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창 23:36, 출 19:9, 신 5:4). 그 음성이 어떤 식으로 들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큰소리로 직접 사람의 언어로 말씀하셨는지, 히브리어로 말씀하셨는지…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것처럼 저 역시도 궁금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음성은 상황에 따라 귀로도 마음으로도 들렸겠지만 어떻든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음성을 들려주셨다는 것은 특별한 계시입니다. 왜 특별한 계시인가,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 외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해도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음성도 아니고 하나님의 음성일 경우에도 극소수에 불과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대상으로 음성으로 당신 자신의 의사를 전달(계시)하셨습니다.

 

㉡ 제비뽑기

제비뽑기를 통해 계시하셨습니다(삼상 10:20). 제비를 뽑으면 누가 범인인가,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편인가? 하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제비는 우연히 뽑히고 운(運)이 좋아서 운(運)이 나빠서 아무나 뽑히는 것 같았지만 제비뽑기의 결과를 보면 그것이 언제나 옳았고 하나님의 판결이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의중(意中)을 읽었습니다.

 

우리 교단(敎團)에서는 몇 년동안 총회장을 뽑을 때 제비뽑기 선거를 했습니다. 너무 금권선거가 난무하니까 제비뽑기를 합니다만 사실은 성경에 나와 있는 제비뽑기를 지금의 시대에 적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제비뽑기가 정녕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정말 신실한 분들이 총회장도 되고 임원이 되어야 합니다. 금권선거, 타락된 선거를 방지하기 위해서 제비뽑기를 한다면 금권선거로 된 분들보다 더 신실해야 하고 정직해야 하는데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총회장으로 되는 사람들이 검증이 되지 않는 채 운(?)이 좋아서 되었다는 말들이 나오기도 합니다.(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도 다 성경을 근거로 하니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비뽑기는 성경이 아직 완성되기 전에 일시적인 계시수단으로 주신 것을 오늘에도 그대로 적용하고자 하는 무리수(無理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비뽑기 원리에 대해서 제가 확실히는 모르기에 이것도 제 개인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성된 성경을 주시기 전까지는 제비뽑기도 특별계시 수단 중의 하나였습니다.

 

㉢ 꿈(夢)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당신 자신의 의사를 특별히 계시하셨습니다(민 12:6). 성경에 보면 꿈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꿈들은 하나님의 의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와 함께 남방(헤브론 지방의 광활한 방복 지대)으로 이사하여 그랄(지중해 연안) 지방에 우거하고 있을 때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사모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남매로 행세했기에 아비멜렉은 사라를 취하였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그 여인을 건드리지 말라고 알려주셨습니다(창 20:1-3).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하여 자신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의 꿈에 나타나셔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꿈은 강력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모든 꿈이 하나님의 계시인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꿈(夢事)만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렘 23:27-28). 결국 꿈은 성경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특별한 수단임을 보여줍니다. 특별한 수단-“특별”이라는 말은 어떤 특수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그것이 시대와 사람들을 초월하고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보편적인 것은 아님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꿈을 추종하다가는 잘못된 길로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꿈을 통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주 희소합니다. 불확실한 거기에다 우리의 신앙이나 인생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 환상(幻像)

환상은 선지자들에게 있어서는 통상적이었습니다(사 6장, 겔 1~3장). 선지자들은 늘 환상을 보았습니다. 환상은 꿈도 현실도 아닌, 그야말로 우리의 표현법이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할 때의 그 상황입니다. 정신은 말짱한데 두뇌는 멈추고… 바로 그런 상태에서 보게 되는 어떤 현상을 환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앞일을 예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미리 보여주시는 것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는 것(환상)을 말하지 않으면 그는 거짓 선지자이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지도 않았음에도 본 것(환상)처럼 말하는 사람 또한 거짓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들은 선견자(先見者)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의 특별계시의 수단입니다.

 

이 (두 번째) 특별계시가 점진적으로 발전이 되고 선명화 되면서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오셔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예언을 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전달에 있어서 최고의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특별계시-직접적 전달이 계속되고 있다 합니다. 음성으로 나타나시고, 꿈으로, 환상으로 보이신다고 합니다. 어느 기도원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하고, 꿈을 통하여 어떤 계시를 받았다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개인마다 역사 하시는 주님의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개인적인 내적 체험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하나님의 직접적 전달의 계시는 끝났다고 보는 것이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공통된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구속의 비밀을 다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영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기록된 성경으로도 충분하기에 굳이 개인적으로 전달하시고, 자신을 계시하시는 일은 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만약 그런 은혜가 사람들에게 계속 나타나면 예수 그리스도나 그분에 관한 성경말씀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하기보다는 직접적 계시에 매달리려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계시의 역사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직접적인 예언의 음성이나 전달의 수단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는 교인이 되어야 사탄의 유혹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3. 이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심

하나님의 특별계시 그 세 번째의 수단은 이적(異蹟)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자연의 원리를 초월한 초자연적 이적을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 출애굽시의 이적들이 나타났습니다. 열 가지 재앙이 나타나고(출 7장-12장) 홍해가 갈라졌습니다(출 15장).

 

㉡ 만나와 메추라기가 40년 동안 내렸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훌륭한 양식이 되었습니다(출 16장).

 

㉢ 여호수아가 기도할 때 태양과 달이 정지되는 이적이 나타났습니다(수 10장).

 

성경에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이적과 기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입니다. 수많은 이적들은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고 결국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케 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모든 이적은 하나님의 실재(實在)를 보여주는 특별계시의 수단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구속사업을 돕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적 자체에 정신이 팔려버리고 이적을 행한 사람을 신격화(神格化)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읽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이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적(기도)으로 병을 고치기도 하고 기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이적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적은 교회 밖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이교에서 교주들이 이적을 보이기도 했고 고승들이 장래를 예언하기도 했고 병을 고치기도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적이 기독교의 독점인 것처럼 주장한다가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잃게되고 상대적인 ‘사람의 종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 66권의 완성은 더 이상 기독교가 이적 중심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적 중심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바른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독교교리를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바로 말씀 중심의 바른 믿음-바른 신앙인이 되기 위함입니다.

 

결론

바벨탑 사건 이후, 한 혈통이었던 인류는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이루게 되었고, 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국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족속들 대부분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받지 못하고, 다만 모든 인류에게 공통으로 허락하신 자연을 통한 자연 계시만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존재하지도 않는)신들이 생기게 되었고, 수백 수천 개의 종교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연계시에 바탕을 둔 모든 종교는 사람의 지혜의 소산물입니다. 하나님이 배제된 인간-그 상태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 6:3)고 선언하심을 따라 육체에 불과할 뿐입니다. 육체의 재료는 무엇인가? 흙입니다(창 2:7). 흙은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셨던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창 1:2)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에 의해 세워진 그리스도교는 하늘에서 시작되고, 하늘까지 오를 수 있는 하늘의 종교이나, 인간의 지혜로 시작된 모든 종교는 땅의 종교일 뿐입니다. 그 종교의 끝은 하늘이 아니라 땅속(음부)일 뿐입니다(계 21:8).

 

우리는 땅의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수혜자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하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기독교 믿음의 우수성과 감격이 있습니다. 이런 수혜자가 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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