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예배 설교

[중년 여성] 엘리사벳의 공감신앙(누가복음 1:57~66)

갈렙처럼 2025. 2. 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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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벳의 공감신앙

누가복음 1:57~66

 

서론

헌신예배 주제는 공감(共感)입니다. 공감은, “남의 감정, 의견, 주장에 대해 나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을 말합니다. “함께 느낀다”(feeling with)는 뜻이지요

영화나 TV 프로를 시청하면서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은 ‘아~ 슬프겠다, 너무 힘들겠다…’와 같은 공감능력은 ‘나는 당신의 상황을 알고, 당신의 기분을 이해한다’는 감정입니다.

 

동감은 상대와 똑같이 느끼는 것인 반면, 공감은 상대를 이해하는 것. 다른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공감이 많을수록 감성이 풍부하고 이게 작을수록 인정이 없습니다. 지금은 지능지수 IQ도 중요하지만 감성지수, EQ도 높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공감대가 높은 사람이 엘리사벳입니다.

1.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공감대

엘리사벳은 오랜 결혼에도 무자식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식을 하나님의 축복과 기업으로 알았기에 무자식을 대단한 수치와, 하나님께 대한 죄의 형벌로 알았습니다(시 127:3).

 

유대 랍비들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파문당할 수 있는 7가지 유형을 기록한 목록 서두에서 “유대인이면서 아내가 없고, 또 아내가 있으면서도 자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기에 무자(無子)한 것은 합법적인 이혼 사유가 되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제사장의 부인입니다. 제사장은 세습입니다. 아이, 특히 남자를 낳아주는 것은 세 대상에게 의무입니다.

 

-하나님에게 의무: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교류

-남편에게 의무:제사장의 대(代)가 계속 이어집니다.

-사회에 대한 의무:제사장이 있어야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엘리사벳은 여러 대상에 대한 본인의 의무를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는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더구나 이미 나이가 많아 수태(受胎)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했습니다. 그러니 불임(不姙)으로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러다 임신하게 되었고 불안과 죄책감, 수치감에서 벗어났는데 마리아의 방문을 받습니다. 사정과 형편은 달랐지만 ‘자식’ ‘아들’이라는 명제에서는 같은 입장입니다. 서로 반대입니다.

 

엘리사벳은 낳아야 될 시기를 놓쳤고 마리아는 아직 시기가 아닙니다.

엘리사벳은 너무 늙었고 마리아는 너무 일렀습니다.

엘리사벳은 낳으면 기쁨이요 마리아는 낳으면 처단됩니다.

그러나 자식이라는 동병상련은 같았습니다. 동병상련은 같은 병자(病者)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處地)끼리 서로 불쌍히 여겨 동정(同情)하고 서로 도움을 말합니다.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 금방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습니다.

 

“동정녀의 임신이다!”

남들은 이해 못할 것이지만 엘리사벳도 역시 나이를 초월한 임신 중이기에 얼른 이해를 했고 동정을 하고 위로를 합니다. 내가 그런 형편에 처해있기에 공감이 된 것입니다.

 

<저녁에 당신에게>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두 딸이 있었습니다. 같은 엄마의 딸이지만 큰딸은 길거리 캐스팅 제안이 들어올 정도로 예뻤고 둘째는 예쁘지 않아서 항상 언니 앞에서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사귀던 남자에게서 지독한 말을 듣고 상처도 크게 받았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용모 때문에 상처를 받은 이후 둘째는 알바를 시작하고 돈을 모았습니다.

 

어느 날, 둘째가 식탁 위에 봉투를 올려놓았습니다.

“엄마, 내일 나랑 성형외과에 같이 가요!”

엄마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자기 얼굴에 속상했으면 성형하려고 알바를 했을까, 하기야 지금까지도 잘 참아냈지⋯. 언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지만 엄마는 엄마입니다. 엄마는 둘째 때문에 가슴이 쨘~했습니다. 그런데 둘째가 이런 말을 합니다.

 

“엄마! 내일은 화장하지 마~ 그래야 성형이 잘 되니까!”

엄마는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의 얼굴에는 흉터가 있었습니다. 처녀 때 성형하려 했지만 무서워서 못했고 돈이 없어 못했습니다. 그래도 얼굴의 흉터를 보지 않고 결혼해 준 착한 남자가 있어 결혼했고 두 딸 낳고 살다보니 얼굴의 흉터가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둘째는 그것을 항상 자기 상처처럼 안타까이 여겼고 남자친구가 얼굴을 탓할 때 문득 엄마가 생각났던 것입니다. 엄마가 얼굴의 상처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둘째 딸은 엄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얼굴이 예쁘지 않아서 좋은 것도 있네? 다른 사람의 상처를 유심히 보게 되니까!”

 

나의 약함은 쓸모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약함을 갖고 있는 분들에 대해 동병상련보다는 동신상련-같은 믿음이라는 공감대, 그들이 얼마나 힘들까, 어려울까? 그걸 보면 교회는 내 도움이 필요한 마리아가 많음을 알게되고 남을 돕는 성숙된 여성이 되는 것입니다.

2. 부부간의 공감대

당시 제사장은 2만명 정도가 되었답니다. 제사장은 굳이 제사장 집안의 딸이 아니라 처녀와 결혼하면 됩니다. 부부는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제사장 가문끼리 결혼을 한다는 것은 이중적인 영예로 여깁니다. 특히 엘리사벳은 이스라엘 최초의 대제사장 아론의 직계 자손이요

 

아론의 아내 이름과 같습니다(엘리사바. 출 6:23)

좋은 인연으로 맺어졌기에 두 부부는 오랜 세월을 함께 했습니다.

7절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두 사람 사이에는 헤어져야 할 명분도 있습니다. 제사장 대(代)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부부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컸습니다.

 

두 부부는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렸지만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랬는데 사가랴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 나온 후에 아이가 생겼습니다.

 

24절, 엘리사벳이⋯ 숨어 있으며, 왜 숨었을까?

-나이 들어 임신한 것이 부끄러워?

-부정한 생활에서 구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하기 위해서?(삿 13:13, 14)

 

22절, 문제는 남편이 농아가 되고 만 것입니다.

남편에 대한 의구심, 혹시 잘못하지 않았나? 그러나 남편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20절, “네가 말을 못하리니⋯”

그러면 서로간의 공감능력이 떨어집니다. 언어는 대화이고 대화는 공감수단입니다.

그러다 부부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아이를 낳았을 때 생후 팔 일만에 할례를 행하며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59절;2:21). 아이에게 이름을 붙이는 일에 이웃이 참여하는 것은 유대 풍습이었고(릇 4:17)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도 유대의 한 풍습이었습니다.

 

친족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59절, 사가랴 정하자!

어머니:요한(60절)

아버지:요한(63절)

 

요한.

-노년기까지 무자하였던 사가랴 부부에게서 요한이 태어났으므로 하나님의 은혜

-사가랴에게 내려졌던 하나님의 징계가 철회된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였다(64절).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많은이들 하나님께 돌아오게 됨은 큰 은혜다(3:10-14;마 3:5-6).

이런 것을 바라보며 부부는 한 마음으로 한 이름에 동의했습니다.

 

부부간의 공감대가 뛰어납니다.

-아이가 있건 없건

 

-말을 하지 못하건 했건

-자신들의 처지가 이해되든 안 되든

서로에 대해 공감하며 동의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부부 로맨스의 유효기간은 3년 이내입니다. 권태기가 옵니다. 연애 때는 그렇게 사랑스럽던 연인이었는데…. 부부사이는 무미건조해 집니다. 씁쓸함에 옛 사진을 보며 추억앓이를 하면서, 변했네⋯ 안 맞네⋯ 하면서 남편, 아내 서로에게 상처를 줍니다. 너무 편해서 너무 익숙해서. 문제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권태기극복법을 말해줍니다.

 

-가벼운 애정 표현! 상냥하게 자상하게 따뜻하게, 나만의 방식으로 애정표현!

-칭찬은 무뚝뚝가이도 곰와이프도 춤추게

-가끔은 집이 아닌 곳에서~~!!

-그래도 1등은 대화! 일상을 공유하세요!

-시간을 주세요! 서로의 독립적인 시간을 보내면 뭔가 에너지가 더 충전된다는 것!

 

요약하면, 관심, 표현, 존중, 배려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오랜 세월 바라지 않는 사진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6절,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흠이 없이 행하더라”

의인⋯. 바른 자들⋯. '하나님이 보실 때에 바른 자들',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지키는 자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자들' 등의 의미입니다.

‘의인’은 선민 이스라엘에서 가장 탁월한 칭찬의 말(창 6:9;7:1;18:23-28;겔 18:5-9)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한 경건한 인물에게만 붙여졌습니다. 유대인의 이상형입니다.

 

부부는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참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적인 공감대가 오랜 시련을 견디게 했던 것입니다.

3. 은혜의 공감대

요한과 예수는 아직 태중에 있습니다. 얼굴을 본 적도 대화를 나눈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41절, 서로 문안하자마자 요한이 태에서 뛰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머니끼리의 성령의 공감대가 이루어졌습니다.

 

마리아:성령으로 잉태되어

엘리사벳:41절,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그들은 친척지간의 공감대라면?

동병상련의 공감대라면?

진정한 공감대를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공감했습니다.

 

우리는 전도회는 연령별 커뮤니티입니다. 이걸로 한계가 있습니다.

부부들끼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엘리사벳과 마르다처럼 아이들끼리 성령으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친의 성령의 공감대는 태중의 아이들끼리도 서로 알아보고 날뛰는 성령충만을 가져왔습니다. 엄청난 성령충만입니다.

 

결론

엘리사벳.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인물~ 그러나 공감능력이 뛰어난 여인입니다.

-남들에게

-남편에게

-아이들끼리도

여러분들도 이런 공감대로 새로운 전도회 커뮤니티를 만들어 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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