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게
고린도후서 5:8~10
서론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분들을 보니 하나 같이 교회의 기쁨이요 제 기쁨입니다.
사람의 기쁨은 두 가지입니다. 내가 남에게 기쁨이 되는 것! 남이 내게 기쁨이 되는 것!
어떤 경우가 더 기쁠까요? 어렵다면, 선물을 줄 때가 기쁜가, 선물을 받을 때가 기쁜가? 어려서는 선물을 받을 때가 기쁘고 철이 들면 선물을 줄 때가 기쁩니다.
기쁨에는 육체적인 기쁨(전 9:7, 9), 일시적인 기쁨(마 13:20), 어리석은 기쁨(잠 15:21)⋯ 등이 있습니다. 모두 유한한 기쁨으로 세상 사람들이 맛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발생되는 기쁨은⋯ 마음이 평화, 만족, 희망으로 차 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해서 최후에 누릴 기쁨(행 20:24), 장래에 얻을 기쁨(마 25:21, 23), 하늘나라에서 얻을 기쁨들이 있습니다. 하늘의 기쁨은 영적이며 영원한 기쁨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은 기쁜 일입니다.
애가 3:33에는, 인생으로 하여금 근심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라고 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뻐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살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풍성한 삶이 기쁨입니다. 엔돌핀이 나오는 것!
오늘의 제목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으로 내가 기뻐하려고 하니 오히려 하나님으로 기쁨이 아니라 섭섭병이 들고, 긴장감이 생기고⋯ 믿는 것이 억지가 됩니다. 그래서 즐거운 믿음생활을 참 어렵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목적은 나의 즐거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사는 삶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까요?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는가, 을 알아야 합니다. 틀니 부모님에게 오징어, 깽 엿을 사드리면 부모님이 기뻐하십니까?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면 하나님의 기쁨을 알아야 합니다.
기쁨(joy). 한글사전에는,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함이 기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는 어떤 욕구가 채워졌을 때 우리를 보고 기뻐하실까요? 물론 하나님의 기쁨은 조건이 없고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볼 때 항상 기쁨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가 늘 기쁨입니다.
그래도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자녀들이 있는 법입니다. 그런 자녀들로 인해 부모는 더욱 큰 기쁨을 누립니다.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같은 마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충족시켜 드리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요? 오늘은 세 가지만 생각합니다. 세 가지 항목을 잘 지켜도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3여 5남전도회 회원들의 삶은 성공적입니다.
1. 믿음
히브리서 기자는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믿음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기쁨을 충족시켜 드리는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면전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그 분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 하나님께 대한 서비스입니다. 서비스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찬양과 기도와 헌금과 정성⋯ 잘 준비되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예배는 그가 하나님의 백성인가, 아닌가, 를 보여줍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예배를 통해 기쁨을 드렸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기쁨을 더 생각했기에 예배에 정성이 결여되었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늘 전도회원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믿음이 되려면 예배에 정성을 쌓아야 합니다. 시간을 지키고 마음을 들이고 미리 준비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가는 그 과정과 마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드리는 욕구 충족의 조건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래요, 그가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실존은 교리적인 실존보다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입니다. 불확실할 때도 믿고, 어둔 상황에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내시는 하나님의 선을 믿습니다. 남들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져가는 시대적 상황에서도 노아처럼 끝까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내가 믿어드리고,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내가 하나님을 상황과 관계없이 믿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쁘시겠어요? 기특하잖아요? 하나님의 욕구가 충족되니 기쁜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어떤 믿음이 필요할까요?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상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래요, 하나님의 상을 기대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세상의 상을 좇아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좇아가면 하나님의 기쁨의 욕구가 채워집니다.
성경인물들은 모두 하나님의 상을 기대했던 생애입니다. 세상의 명예와 권세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이 주는 상보다 훨씬 큰 하나님의 상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 모세⋯ 등입니다.
우리 전도회원들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싶나요? 하나님의 상을 기대하고 세상의 상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내려놓은 손이 클수록 우리 손에 쥐어주시는 하나님의 상은 크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은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면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은혜가 떠나면 그 날로 어떤 사람도 끝장입니다. 성자라 일컬을 만큼 거룩한 삶을 살아왔던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는 순간에 마귀의 종이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기쁨의 아니라 성령의 탄식이 됩니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성경도 은혜의 책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보관되어 있는 은혜의 집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성소라면 내 안에 은혜가 쌓여있게 되고 은혜의 생활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마리아가 잉태하게 되었을 때 천사가 와서 말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이 말은 “하나님의 깊은 총애를 받고 있는 한 여인” “하나님께서 주목하고 계시는 한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어떤 자세가 됩니까? 마리아처럼 스스로를 “주의 계집종이오니”라고 말합니다. 계집종은 비천한 여인-여자 노예를 뜻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배춧잎에 소금으로 절이듯이 은혜를 받으면 자신을 낮춥니다. 눈이 은혜를 받으면 눈이 낮아지고 코가 은혜를 받으면 콧대가 낮아집니다. 입이 은혜를 받으면 은혜로운 말이 나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말씀 앞에 자신을 맡깁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다”-은혜를 받으니까 신앙생활이 가능하고 자원하는 심령, 즐거워하는 심령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좋고 기쁩니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은혜에서 떠나면 마음이 강퍅해집니다.
안디옥에 기독교회가 세워지던 때⋯
사도행전 11: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은혜를 받은 모습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전도회 여러분! 지금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는 것도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에스겔 47장에는 은혜의 수준, 은혜의 분량에 대해 나옵니다.
-발목의 은혜(3절)
-무릎의 은혜(4절)
-허리의 은혜(4절)
-헤엄칠 만한 은혜(5절)
운전대를 내가 쥐고 있습니까? 내 생애를 내가 주관하고 있습니까? 물론 은혜를 받기는 했지만 은혜를 누리거나 은혜에 사로잡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은혜가 마른 사람들이 일을 하고 지도자가 되면 교회가 은혜가 빠져나갑니다. 그런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교회다운 교회를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열심을 내야 하는 것! 그것은 은혜를 채우는 일입니다. 은혜가 나를 주장하게 하는 일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로잡혀 주님을 예배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십니다.
3. 사역
무리와 제자와의 차이점은, 일에서도 구별됩니다. 무리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떡을 먹을 때도 앉아서 얻어먹지 일하지 않습니다. 안드레는 부지런히 찾아 나섰고 제자들은 나눠주었습니다.
제자들은 곧 누구인가? 일꾼입니다. 구신약성경에 일꾼은 31회가 나옵니다.
그런데 구약에는 7회가 나옵니다. 나머지 24회는 신약입니다.
구약의 7회도 성전 중심입니다. 그만큼 그들의 사역에는 한계가 있고 형식적이었습니다.
장소:성전에서만 일을 했고 밖에서는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봉사:제사장들과 레위만 일을 했고 나머지는 구경꾼이 되었습니다.
사역:종교는 종교인들에게 맡기고 평신도들은 일하지 않았습니다. 종교사역자 외에는 제물이나 바치고 나머지는 자기 일만 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에 비해 신약은 일꾼들의 이야기입니다. 일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일반적으로 일꾼은, 품팔이하는 사람, 전문성을 가지고 일을 솜씨 있게 처리하는 사람, 중요한 일을 담당하는 사람(고후 6:4). ‘하인’(요 2:5), ‘섬기는 자’(마 20:26) 등으로도 번역됩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디아코노스’는 ‘집사’, ‘사역자’ 등 사명을 띠고 일하는 봉사자입니다.
성경에는 일꾼들에 대해 다양한 명칭으로 소개됩니다.
‘교회의 일꾼’(롬 16:1; 골 1:25), 겐그리아교회 일꾼
‘그리스도의 일꾼’(고전 4:1; 고후 11:23),
‘새 언약의 일꾼’(고후 3:6),
‘하나님의 일꾼’(고후 6:4),
‘신실한 일꾼’(엡 6:21; 골 4:7)
‘복음의 일꾼’(골 1:23)이 있다.
바울은 이름을 거명하면서 특별한 일꾼들을 말합니다.
골 1:7, 에바브라-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골 4:7,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
살전 3:2,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
바울자신도 자신을 일꾼이라 소개합니다.
로마서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모두 훌륭한 일꾼들입니다. 초대교회가 이들로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으며 감사했겠습니까? 그들은 초대교회의 기쁨이자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러나 좋지 않는 일꾼들도 있었습니다.
고후 11:13, 속이는 일꾼, 그리스도로 가장하는 일꾼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고후 11:15, 사탄의 일꾼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딤후 2:15, 부끄러운 일꾼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이런 이들은 교회의 염려이고 수치이고 암적인 존재입니다. 교회의 기쁨이 되지 못하고 근심의 대상이 됩니다. 얼마나 안 되는 일입니까?
우리에게는 참된 일꾼이 필요합니다. 우리교회! 우리 전도회에 참된 일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눅 10:2,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바울도 말합니다.
딤전 4: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예레미야도 말합니다.
렘 48:10,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로다”
우리가 일꾼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꾼들을 하나하나 세우면 하나님께서 응답하는 것이며 이럴 때 하나님은 매우 기뻐하십니다.
결론
본문을 보면 바울은, 어떻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쓴다고 했습니다.
9절,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살아있든 죽음의 위경에 처해있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면 주님은 더 큰 기쁨으로 우리에게 계산해 주십니다.
10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시편 37:4도 같은 말씀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전도회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빅딜 형식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로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까, 그것만 생각하는 전도회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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