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설교

종교는 필요한가?(창세기 11:1~5)

갈렙처럼 2025. 2. 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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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종교는 필요한가?

창세기 11장 1~5절

 

서론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종교인입니다. 종교는 우리에게는 기둥이요 삶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만약 종교가 사라지는 시대가 오면 우리는 종교 없이도 잘 살 수 있을까요? 종교학자 닐 콜은 ‘교회 3.0’이라는 책에서 ‘미래사회는 종교가 사라져버린 시대가 될 것’이라 예견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사회학자 두류케임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자 동시에 종교적 동물”이라 했습니다. 인간은 고립돼서는 살지 못하는 사회적 존재인 것처럼 종교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는 영적 존재라는 것이지요.

 

독일의 철학자 루돌프 오이건은 “우리가 종교를 내어버릴 수는 있다. 그렇게 할 경우에는 정신생활도 인격도 개성도 다 내어버리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의 종교심리학자 헬리켓은 종교가 갖는 불멸의 힘에 대해 “…종교는 결코 없어지지 아니한다. 다만 낡은 종교가 지나가고, 새 종교가 일어나며, 낡은 신앙이 물러가고 새 신앙이 나아오는데 지나지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종교는 학자들이 창안해낸 학문이나 문화, 예술, 문명… 정도가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속에 들어있는 DNA 본능입니다. 성경은, 이 종교심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3:11). 영원자에 대한 사모함, 영원을 동경하는 마음이 짐승에게는 없습니다. 짐승에게 종교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종교심은 인간에게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종교적 존재로 창조된 인간에게 종교가 없는 세상을 가정할 때 “절대적 진리는 인식 불가능”이라는 회의주의자요, 초자연의 반대자인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말합니다.

 

“종교가 전혀 없는 사람을 찾아보아라. 만일 찾는다면 분명히 어느 정도 짐승에서 멀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종교가 없다면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원시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종교의 개념

종교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은 종교에 대해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이다”라고 말합니다. 요약하면,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불안, 공포, 죽음, 심각한 고민 등을 해결하려는 것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그런 고뇌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신학을 학문의 꼭대기에 놓았었습니다. 그래서 한자어 ‘宗敎’는 ‘으뜸 되는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종교를 ‘신들에게(그들의 말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종교라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런 관계는 기록된 말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수단으로 이루어집니다. 종교를 릴리전(religion)이라 하는데 이는 “다시 읽는다” “반복하다” “주의 깊게 관찰하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종교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원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구약에서의 종교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敬畏)는 단순히 공포, 두려움이 아닙니다. 경외는 사람이 하나님에게만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자세로서 두려운 생각으로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감정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졌던 종교적 자세였습니다.

 

신약에서 종교는, ‘신앙’이라는 의미입니다. 신앙은 신뢰와 기대가 있는 의존적 자세입니다. 그래서 조직신학자 벌코프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형식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적인 관계가 종교’라고 했습니다.

종교의 기원

종교가 언제, 어디서, 어떠한 이유로 발생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습니다.

 

㈀ 주물 숭배설-원시적 생활을 하고 있던 미개인들이 신비한 힘을 가졌다고 믿어지는 주물(呪物)을 두려워하면서 종교가 시작되었다는 설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샤머니즘이겠지요.

 

㈁ 정령(精靈) 숭배설-죽은 선조들의 영에 대한 예배로 종교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 자연숭배진화설-자연에 대한 숭배가 서서히 종교의 발생을 일으켰다는 주장입니다.

 

㈃ 대중지배설-대중을 지배하려고 종교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종교를 아편이라 비판합니다.

 

이런 주장은 모두 종교의 기원을 인간에게 둡니다. 원시 인간에게는 종교가 없었는데 점차적으로 종교심이 생성이 되고 진화의 단계를 거쳐 체계적인 종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이에 대해 성경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인간은 창조 때부터 종교심이 입력되었다 합니다. 그렇다면 종교의 기원은 땅이 아니고 하늘이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종교는 하나님에게서 출발했다는 것이 성경의 주장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관계를 맺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상향종교와 하향종교

상향종교(上向宗敎)는 사람이 신을 찾아, 구원을 얻으려 나서는 종교로 인간에게 그 기원을 둡니다. 사람의 머리에서 교리가 나오고, 경전이 나오고, 조직과 체계가 나옵니다. 그 대표적 종교가 불교요, 유교입니다. 유교는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보다는 학문이요,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교훈이라 하겠지만 조상 제사의식이 있기에 종교성을 띠고 종교라 합니다. 불교 역시도 신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에 종교보다는 철학에 가깝지만 영원을 추구하기에 종교입니다.

 

상향종교는 바벨탑 사건에서 구체화됩니다. 2절, 그들이… 3절 서로 말하되… 4절, 또 말하되 …,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영원히 사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연구하고 탐색합니다. 그래서 영원의 길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그 방법은 4절,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탑을 쌓는 목적은 다시 있을지 모르는 대홍수에 대한 대비책과 인간 스스로 죽음을 통과하는 계단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우주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천국은 구름 속에 소재하는 어느 장소, 공간으로 보고 산꼭대기 어느 쯤인가로 여겼습니다. 산신령은 높은 산, 영산에 산다는 개념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탑을 쌓고 계단을 만들어 계속 올라가다 보면 천국으로 들어갈 입구를 만나고 영생할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고층건물을 쌓느라 경쟁입니다. 주거환경에 알맞은 건물은 30층 이하이지만 우리의 이름을 내려고 올리고 또 올립니다. 결국 과학문명을 통해 영생을 꿈꾸는 것입니다. 이런 인본주의가 자력종교, 상향종교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자력종교의 끝은 9절,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구원체계가 파괴된 것입니다.

 

이에 비해 하향종교(下向宗敎)는 신이 내려와 자신의 존재와 구원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종교로서 신에게서 기원합니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가 이에 속합니다.

 

5절, “여호와께서…”

6절, “여호와께서…”

8절, “여호와께서…”

 

기독교는 사람에게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연구하고 사색하고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면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5절, 여호와께서… 내려오셨더라“

7절 “자, 우리가 내려가서…”

 

하나님께서 내려와서, 자력종교, 인본주의 구원방법은 무너지게 하시고 구원받으려면 이렇게 믿으라고 ‘계시’해 주신 것이 기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방법을 알려주셨다고 해서 그리스도교, 한문으로 ‘예수’를 ‘기독(基督)’이라 해서 기독교(基督敎)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

이와 같이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세워졌고 하나님으로 시작되어 오늘까지 이어져 옵니다. 모든 종교들이 사람의 머리에서 시작된 ‘땅의 종교’라 한다면, 기독교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하늘의 종교’입니다. 땅의 존재인 사람을 하늘에 오르게 하고 영생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종교는 오직 하늘의 종교뿐입니다. 땅에서 시작된 종교가 어찌 사람을 하늘까지 오르게 할 수 있을까요. 땅의 종교는 세상에 살 동안에만 유효합니다. 위안도 평안도 줄 수 있으나 천국에 오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땅의 종교들의 한계점입니다.

 

인간이 하늘에 오르고 영생을 얻어야 한다면 당연히 그 종교는 기원을 하늘에 두어야 합니다. 하늘에 오르는 길이나 영생의 길이 인간의 두뇌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우주 어느 곳, 하나의 지역이나 영토로 존재하는 것이라면(물론 천국이라는 개념 속에는 그런 의미도 있다) 인류는 얼마든지 그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인간 문명이라면 앞으로 우주의 모든 곳을 정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눈에 보이는 세계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천국의 세계는 인간의 지혜나 문명으로 다 이해할 수도 없고 그 길을 알 수도 없습니다. 종교나 철학을 만들어 천국 영생의 길을 찾는다한들 죽음 너머에 있는 세계를 어찌 알 수 있겠어요?

 

천국에서 내려주는 줄을 잡아야 천국으로 갈 수 있지 종교심이 특별하거나 영성이 남다른 사람들이 줄을 잡고 하늘 어딘가에 걸어놓고 그 줄을 잡고 올라간다면 과연 그 줄이 진짜 천국에 걸린 것인지, 또 어떻게 걸기나 하겠습니까? 천국에 가는 길은 그 세계에서 살다왔거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 세계를 다녀온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참 종교의 기원은 하늘에서 시작되고, 하나님에게서 온 구원의 줄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초월자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도무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인식의 한계 밖에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초월한 영역 밖에 계시기에 하나님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그러한 시도 자체가 무모합니다. 그것은 벌레나 곤충 짐승이 인간을 이해해 보겠다고 덤벼드는 일과 흡사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쯔빙글리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곤충이 모르는 것처럼 신이 어떤 분인가를 우리 스스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수준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억(億) 숫자 속에 있는데, ‘십’이라는 숫자밖에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이 어찌 자기 지혜와 노력으로 수행과 종교적 열심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을까요? 이 땅위에서 일어난 수많은 미스터리 사건들, 10초 후 장래도 알지 못하는 인간이 어찌 전지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세를 알려달라는 제자의 질문에 “땅의 일도 다 모르거늘 어찌 하늘의 일을 알려 달라하느냐”라 했던 공자의 대답은 모든 인간의 솔직한 고백이어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알만한 감지기관이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무지한 인생들의 수준으로 자신을 내리셨고(down. 일종의 눈높이),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셨습니다.

 

이 ‘알려주심’이 바로 계시(啓示)입니다. 이 계시에 입각하여 세워진 것이 그리스도교이기에,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교를 가리켜, ‘계시종교’, 혹은 ‘계시 의존 사색 종교’라고 합니다.

계시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베일을 벗으시고 자신을 드러내셨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존재와 구원의 방법을 자청해서 ‘알려주셨다’는 계시(啓示)라는 단어는 기독교 신학의 중심 단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바를 따라 하나님과 구원을 알아갈 뿐입니다.

 

결론

전도자 아이언 사이드와 그의 동료들이 기독교를 증거 할 때에 이런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고 그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무엇이 진짜 진리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에 아이언 사이드와 그의 동료들은 이렇게 대답하곤 했답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다고 하셨습니까? 이상하군요. 내가 알기로는 단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행함으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이미 이루어 놓은 어떤 일에 의해서 구원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이언 사이드의 주장대로, 세계에 널려져 있는 수많은 종교는 땅에서 시작되는 종교와 하늘에서 내려온 종교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종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라는 말보다는 ‘복음’이라는 말을 씁니다. 복음적인 크리스천이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늘에서 시작된 기독교를 믿을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구원의 복음 기독교신자가 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참고자료]

Q: ‘하나님이 존재한다’에 모든 걸 걸어보라고요? [더미션 카운슬러 17]

국민일보 2023.09.14. 03:05

파스칼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내기 논증을 통해 확률상으로도 믿음을 갖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사진은 파스칼의 초상화. 국민일보DB

 

A: 신을 믿어야 할지 망설이는 이들에게 ‘팡세’의 저자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은 내기(betting·베팅)로 결정하라고 권유한다. 파스칼은 이미 16세 나이에 원추곡선 기하학 공식을 발표한 천재였으며 산술삼각형, 압력의 원리, 적분법, 확률 이론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베팅

그가 살던 시대는 근대철학과 근대과학의 태동기로 기독교 신앙을 비이성적이라고 무시하는 경향이 짙어지던 때였다. 파스칼은 도박을 좋아하던 그의 친구들에게 믿음을 갖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임을 설명할 수 있는 논증을 구상한다. 일반인들에게는 형이상학적으로 신의 존재를 논증하는 일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었다. 손익을 따지려는 인간의 본성을 감안할때 거부감 없는 내기 방식이 적절해보였다.

 

이병철(1910~1987) 삼성그룹 회장이 암투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불과 한달 전 24가지 질문을 남겼다. 그는 ‘정말 신은 존재하는가’ ‘사후에 인간의 영혼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무신론자들은 “죽으면 끝”이라고 말하지만 인생의 종착지에 선 사람은 신과 영혼, 천국의 존재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파스칼은 확률 이론의 거장답게 신의 존재 유무와 이에 대한 인간의 믿음 유무가 만들어내는 4가지 경우의 수를 비교했다(표 참조). 그리고 인간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무엇인지 설명한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죽음 이후의 영생과 영벌의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전에 “신의 존재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이 둘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경우의 수’로 본 하나님의 존재

 

<표>에서 ①은 ‘내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사후에 하나님이 존재하는 경우’다. 이 선택은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믿음을 통해 영생과 무한한 행복을 얻기 때문이다. ②는 ‘내가 믿었지만, 사후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인데, 이 선택은 약간의 이익을 가져온다. 신자는 경건의 유익, 도덕적인 삶을 통해 마음의 평안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③의 경우는 ‘내가 믿지 않았는데, 사후에 신이 존재하는 경우’다. 이 선택은 가장 큰 손실을 가져온다. 불신을 선택한 대가는 영원한 지옥형벌이다. ④는 ‘나도 믿지 않고, 사후에 신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로 아무런 이익도 손실도 없다.

 

인간의 선택과 행동은 이익과 손실을 동반한다. 하나님을 믿기로 한 선택은 가장 큰 이익(영생)을, 불신앙을 선택한 경우에는 ‘무한대 손실’이라는 가장 큰 손해(영벌)를 얻게 된다. 그래서 샤르트르와 같은 무신론 철학자도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한 믿음이 사람에게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내기 논증의 교훈, 믿음의 습관

프랑스 사회학자인 루시앙 골드만(Lucien Goldman, 1913~1970)은 저서 ‘숨은 신’에서 ‘파스칼의 내기’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유한자인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으로 평가했다. 영국의 인류학자인 메리 더글라스(Mary Douglas)는 파스칼의 내기 논증이 신의 존재를 논증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있다는 것을 믿고 살겠다는 습관의 결정에 대한 것으로 이해했다.

 

파스칼이 내기 논증을 통해 강조한 것은 습관의 중요성이다. 신의 존재를 믿기로 결정했다면 믿음을 실천하고 사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은총을 선물로 주실 것이다.

 

파스칼의 내기 논증은 인간의 합리적 선택이론과 수지타산의 원칙을 신앙의 영역으로 확장한 것으로 단순하지만 사람을 설득하는 힘이 있다. 내기 논증은 도박사처럼 수지타산을 따지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의 전도전략이다. 인생의 유한성을 자각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과 영벌을 고려하게 하는 확률 논증이기도 하다.

 

믿음, 수지타산이 맞는 선택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한 이유가 고상하지 않아도 괜찮다. 파스칼은 하나님을 믿을지 말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손익 계산을 따지는 본성에만 충실하더라도,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선택이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주기에 주저없이 하나님을 믿으라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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