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설교

왜 목자들인가?누가복음 2:8~14

갈렙처럼 2025. 2. 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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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목자들인가?

누가복음 2:8~14

 

서론

이스라엘 사람들은 특이한 민족입니다.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역사관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정치제도를 갖고 좋은 지도자를 만나고 그들로 인해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까, 궁리하지만 유대인들은 인생의 모든 행복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이 보내주실 메시아라는 존재에게 그들의 기대를 다 겁니다.

 

그들이 이처럼 메시아라는 존재에 국가적인 운명을 기대하게 된 것은 바벨론 포로 시대입니다. 왕들 정도로는 바벨론 제국을 물리칠 수 없고 세계적인 유대제국을 세운다는 게 역부족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메시아를 통해 다윗의 왕국을 꿈꾸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이라면 출생하면서부터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대망했다고 하여 구세주를 맞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목자들은 어째서 아기 예수를 만나보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1. 목자들은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의 원래 업(業)은 목축입니다. 시조(始祖)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목자들이었습니다. 애굽으로의 이주 후에도 그들의 주 업은 목축이었습니다.

예수님 탄생 무렵, 유대인들의 직업은 다양해졌습니다. 어업, 상업, 심지어는 세리라는 직종도 생겼습니다.

 

본문의 목자들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목축업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가장 유대인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족장들의 삶을 본받으며 자기의 일들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양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기에 도덕적으로도 예루살렘 사람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양들은 짐승 중에 가장 양순하고 연약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살펴주려니 그들 역시 양순할 수밖에 없고 희생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에 귀천은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직업은 자칫 사람을 그 직업의 속성으로 만들어갑니다.

목자들은 항상 양들과 함께 있기에 그들은 깨끗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의 정치가들, 종교지도자들, 상인들, 그들은 이미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속에 물든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약한 양들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은 항상 타인 위주이고 자기 희생적이기에 예수 탄생의 증인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미국 하바드대학의 교육 심리학자인 콜벅은 <도덕발달학>이라는 학문을 개척한 사람입니다. 그는 도덕률이 낮고 높음을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의 도덕률이 가장 낮고 자신을 희생하며 남을 위하여 사는 사람의 도덕률이 가장 높다"

 

콜벅은 도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은 인도 캘커다의 수녀 테레사라고 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바티칸의 그 사람들은 어떤가요? 정말 도덕률이 높을까요?

아울러 콜벅은 워싱턴의 정치가들과 시골 농부들의 도덕심을 실험했습니다. 그 결과 시골 농부들의 도덕심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세상 학문이 도덕률을 향상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를 누가 맞을 것입니까? 종교적으로 요란법석을 떠는 사람들, 그야말로 말(言語)로 모든 것을 다 끝내는 사람들에게 재림의 예수는 자신을 나타내 보이실까요?

 

아닙니다.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자기희생적인 사람, 그래서 순수한 사람들이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어울려 살면서도 때 묻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 하는 일은 복잡하면서도 마음은 늘상 깨끗하고도 단순한 사람들, 그들이야 로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목자들은 메시아를 대망했습니다.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그 차원은 다릅니다. 어쩌다 한번씩, 그리고 막연하게 기다리는 사람과 현실적인 기대를 갖고 기다리는 사람들과의 차이점은 매우 큽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의 목자들입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입니다.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의 뿌리에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유대인들은 다윗의 혈통, 즉 유대인으로 오신다고 생각했으나 베들레헴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을 중심으로 메시아는 오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베들레헴 땅에서 오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메시아 대망사상은 다른 이들과 다릅니다. 그들은 목자였으나 "베들레헴 목자들"입니다. 단지 양을 치고 양 몇 마리가 늘어났다고 해서 기분이 좋고… 그런 정도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양을 치면서도 나름대로 분명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양을 치면서도 항상 기도하는 경건한 목자들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제사장 그룹이 있고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제사장: 그들은 종교적 형식으로 머물렀습니다.

바리새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경건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늘상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존경을 받기 위해 종교적 형식을 요란스럽게 떨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는 것을 그들은 원치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현실이 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찾아왔을 때 제사장들은 시큰둥했습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펼쳐놓고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다는 구절은 찾아냈지만 그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아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배부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현실이 너무 괴롭습니다. 국가적으로는 로마에 종살이. 목축을 하나 이방인들이 빼앗아갑니다. 동족들에게 수탈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밤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안 사람들은 좋은 음식과 방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들에서 양을 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하며 이런 일들이 자식 대에까지 계속 이어져 간다는 것이 그들에게 더욱 추운 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메시아를 더욱 대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다윗의 영광을 바라보며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리고 준비되는 마음을 더 좋아하십니다.

사람들이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지금까지 성탄절은 어린아이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숙하지 못했기에 선물을 주고 여러 프로그램으로 좋아라 했습니다. 그리고 성탄은 있는 자들의 축제였습니다. 없는 이들은 더 쓸쓸하고 또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탄을 즐기는 그 사람들, 그들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사람들입니까?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그들은 성탄을 가장 싫어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힘듭니까? 변두리로 밀려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꿈이 좌절되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은 성탄을 맞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더욱 그리스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성탄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목자들은 양들의 죽음에서 메시아를 보았습니다.

목자들은 밥벌이만으로 양들을 키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희생 제물로 바쳐지는 양들이기에 온갖 정성과 희생을 다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빈손으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양이나 비둘기나 소를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차등을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세심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짐승들이 희생 제물로 죽어가는데 1년에 도대체 몇 마리가 되겠습니까?

 

미국은 추수감사절이 최고의 명절입니다. 이때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고기를 먹습니다. 금년에 4천 5백만 마리가 희생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무 짐승이나 희생 제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흠이 없는 깨끗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전문적인 사육자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바로 이 목자들이 희생제물을 공급하는 사람들이었다고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목축을 하면서 말 못하는 양들이라고 함부로 하거나 발길로 걷어차는 것이 아니라 먹이 하나를 주면서, 양들의 잠자리를 돌보아주면서 그들은 온갖 정성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 양들은 물건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질 거룩한 양들이었습니다. 모든 것들을 대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성물(聖物)을 대하는 제사장의 심정처럼 양들을 대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제사장보다 훨씬 거룩한 사람들이었고 기뻐하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누구보다 양들의 희생을 마음 아파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그것이 끝날 때 마음이 아픕니다. 꽃 한 포기조차 그것이 죽으면 그렇게 가슴이 아픕니다. 내가 강아지를 싫어하는 데 어릴 때 좋아하던 개가 쥐약을 먹고 죽은 후 싫어졌습니다.

 

짐승들은 더 더욱 그렇습니다. 목자들은 하나님께 바쳐지는 희생제물이다 생각했기에 더욱 정성을 다했습니다. 어느 만큼 되었을 때 그것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너무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럴 때마다 메시아의 탄생을 목마르게 기다렸습니다. 그래야 저 불쌍한 것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양들이 많이 죽어야 수입이 늘어납니다. 성전이 더욱 화려해 가고 그들의 신분은 더욱 높아집니다.

백성들의 입장에도 비슷합니다. 그들은 짐승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1년 동안 죄를 짓고 양심의 가책이 있는 데 양들이 대신 죽어주고 그 가책을 없앨 수 있으니 양들의 죽음을 얼마나 반기겠습니까? 그러나 목자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양들의 희생 앞에 가슴이 아픕니다.

 

누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매사에 정성을 다하고 그분을 대하듯 모든 사람들을 대하는 이들이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온갖 종교적인 냄새는 다 피웠으면서도 정작 메시아가 오실 때 맞이하지 못했던 예루살렘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다시 오실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돌아보는 사람들, 다른 이들의 희생을 가슴아파하는 사람들, 그래서 죽을 것들에게 더욱 잘해주려고 마음을 썼던 목자의 마음을 갖고 있는 이들만이 재림의 예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이제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2천 년 전의 예수 탄생을 축하해도 아기 예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에게 오실 분은 아기 예수가 아니라 심판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누가 그분을 맞이할 수 있습니까?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재림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남의 희생을 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며 금 년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우리 생애도 항상 이런 수준에서 준비하며 기다릴 때 재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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