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좋으나 열매가 나쁘니
열왕기하 2장 19~22절
서론
신년예배 설교제목은 “물댄 동산이 되자!”(이사야 58:9~12)였습니다. 물을 많이 댔나요? 물도 나름입니다. 좋은 물이 대어야지 허접한 물들 많이 대면 허접한 동산이 되고 맙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보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가짜뉴스 진짜뉴스를 떠나 영성에 백해무익하거나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우스개 수준, 일반상식 정보들입니다. 그런 정보들이 마음에 쌓여있기에 교회에 와서 말씀의 물을 받아도, 성경에서 물을 받아도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 거기다 술과 담배를 하는 분들은 오염된 물을 공급하기에 거룩한 영성이 되지 못합니다.
이렇게 오염된 사상의 썩은 물, 흙탕물 같은 더러운 정보들이 들어오면서 우리 삶에 성령의 열매, 인격의 열매, 기쁨의 열매들을 제대로 맺지 못하고 자라다가 뚝! 꽃을 피우다가 뚝! 떨어져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여리고성은 ‘달(月)의 성읍’, ‘종려나무의 성읍’, ‘향기의 성’이란 뜻입니다. 요단 강 동쪽에서 지중해 연안의 블레셋 땅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자, 요단 서쪽의 넓고 비옥한 평원을 지키기 위한 경제·전략적 가치 때문에 기원전 7천 년경에 건립된 고대 성읍입니다.
여리고는 지중해 수면보다 약 250m 낮아 교통의 중심지, 상업이 발달한 도시입니다. 향로가 많이 생산 되었기에 경치가 아름답기도 했습니다. 열대성 기후 지역 내에 있는 일종의 오아시스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여리고성 주민들이 엘리사를 찾아 뭐라고 말합니까?
19절,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성읍이 좋다는 것은 전략상의 위치로나 물이 풍부한 수자원으로나 종려나무가 무성한 자연풍경이 모두 좋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끝났으면 성읍사람들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와 통사정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읍 사람들이 선지자를 찾아와 자기들의 어려운 상황을 토로합니다.
19절,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아하~ 이게 웬말입니까? 모든 것을 다 갖추어 부러움을 살만한 성읍이 물이 좋지 않다는 치명적인 결점을 성 전체가 안고 있었습니다. 물이 나쁘면 모든 것이 나쁩니다. 그래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져버린다면 정성스런 농사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떨어져 버릴 것을~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아름답게 창조되었으나 불순종의 죄로 인해 쓴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의 아름다움 이면에는 불행, 고통, 질병, 죄악이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풍요로움을 누리면서도 뭔가 불행합니다. 남들 보기에는 모두를 가진 것 같은데 정작 본인들은 늘 아쉬워하고 행복지수가 높지 못합니다. 뭔가 한 가지가 막히고 한 가지고 오염되고 한 가지가 부족한 것입니다. 뭔가 되는 것처럼 되다가 딱! 그것 때문에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열매가 보이고 성공이 보이는 것 같은데 딱! 그것 때문에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읍만이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어느 곳이나 인간이 있는 곳이면 문제가 발생하고 고통도 있습니다.
4장 1절 이하에서, 미망인은 선지생도의 아내라는 명예도 있고 아들도 있었지만 남편이 빚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사명자로 부름 받은 그 위치는 좋았지만 빚으로 힘들었습니다.
8절 이하에서 수넴여인은 유력한 남편도 있고 부자로 귀부인으로 살았지만 한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소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위치는 좋으나 마음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5장에서 나아만 장군은 왕 다음의 서열이지만 나병에 걸렸습니다. 99개가 좋아도 그 딱 한 가지로 인해 나아만 장군의 인생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6정에서 선지자의 제자들은 좋은 도끼를 갖고 있었습니다. 기숙사를 짓겠다는 열정도 있습니다. 자원하는 생도들로 넘쳤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5절, 쇠도끼가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 2장의 가나의 혼인잔치, 잔칫집은 풍족함과 즐거움의 대명사이지만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모자란 것이 있었습니다. 신랑은 근심에 빠졌습니다.
인생에서 많이 부족하고 모든 것이 부족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딱 한 가지가 부족해서 불행하고 딱 한 가지가 부족해서 안 되고 딱 한 가지가 부족해서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땅은 좋으나 열매가 나쁘니”라고 했습니다.
여리고성읍 사람들은 처음에는 소산이 떨어지는 것이 수질문제인 줄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원인은 파악했지만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엘리사 선지자가 등장하면서 그들은 여기서 해결책, 대안을 찾아낸 것입니다.
19절,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니, 물이 안 좋은 것은 환경문제요 수질문제요 자연문제인데 왜 선지자를 찾습니까? 선지자는 환경론자도 아니고 수질검사원도 아닌데 말입니다. 주민들이 선지자를 찾았다는 것은 결국 수질문제를 단순히 환경문제 자연문제로 보지 않고 신학적인 문제로 본 것입니다. 물의 오염은 아직도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뒤늦게 안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진격할 때 희한한 방법으로 여리고성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은 가나안에서 ‘바쳐진 성’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수6:17)
바치되… 여리고성은 하나님께 바쳐진 성읍입니다. 이런 경우를 ‘헤렘’이라 합니다. 헤렘의 사전적 의미는, ‘완전히 멸하다, 저주 아래에 두다’이며 물건을 말할 때는 흔히 ‘멸하기로 작정된 물건, 금지된 물건’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니까 ‘헤렘’은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물건이기에 또 봉헌된 것이기에 일상적인 사용이나 접촉으로부터 구별된 지위를 뜻합니다. 헤렘으로서의 여리고성읍은 저주 아래 있는 금지된 성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죄를 여리고성읍에 가두고 묶어놓은 것입니다.
오래 전에, 여리고 성읍은 요단강을 건너고 입성한 여호수아 군대에 의해 저주를 받았습니다.
“…누구든지…여리고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수6:26)
여리고 성읍은 저주를 받아 폐허가 되었다가 아합 시대에 어렵게 재건됩니다. 재건과정에서 건축책임자 두 아들이 희생당하는 인명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저주의 영향 아래 있는지 수질이 나빠 사람도 땅도 고생입니다. 열매를 맺을만하면 떨어져 버립니다. 특히 그런 분들 있지 않습니까, 초장에는 잘 나가다가 막바지에서 일이 틀어져 버리는 그런 분들 말입니다. 잘 판단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운이 나빠서… 실력이 부족해서… 그리만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건 신학적 문제입니다.
여리고성읍 주민들도 물의 문제를 신학적 문제,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풀어야 할 문제로 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은총으로만 물이 소생될 수 있음을 믿어 해결해 달라, 간청합니다.
“저희 성읍은 터가 매우 좋습니다. 하지만 물이 나쁩니다. 그래서 농작물이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어떻게 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언자요 때로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들은 환경의 문제,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여리고성이 파괴되고 세월이 지나 원상복구는 되었지만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앙금이 있습니다. 그들로 성읍이 파괴되고 물이 저주를 받아 이 모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해결하려고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들의 신들, 우상신들에게 빌기도 했지만 헛고생이었습니다. 하다하다 일이 안 되니 그제야 선지자를 찾아온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 환경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사울은 그 전쟁을 그냥 대결구도로만 보았습니다. 무기의 힘, 전략의 힘, 강한 용사… 여러 요인들을 보니 골리앗의 상대가 되지 못하여 막사에서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려 할 때도 자기의 갑옷을 입혀주고 무기를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다윗은 단순히 이 전쟁을 용사와 용사, 무기와 무기의 전투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 전쟁을 신학적인 문제로 봅니다. 전쟁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전쟁을 실력의 문제, 무기나 전략의 문제로 보았던 사울 왕은 패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신학적인 문제로 접근한 다윗은 승리했습니다.
여리고성 주민들이 수질문제를 신학적인 문제로 보고 해결을 청원했을 때 엘리사는 주민들을 대동하고 물 근원으로 올라갑니다.
21절,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근원적인 치료가 아니면 성읍의 물은 깨끗할 수 없습니다. 물을 그냥 놔두고 파이프나 청소하고 그 위에 무슨 약들을 뿌려서 정화시킨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원인을 무시한 해결책은 또 하나의 문제만 가져올 뿐입니다. 그러기에 인생이 힘들고 하는 일이 안 되거든 자꾸 이런 노력 저런 노력으로 힘을 소모하지 말고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믿음생활에서도 일이 안 되고 도무지 믿음이 성장하지 않고 기쁨을 잃어버렸거든 원인을 찾으세요! 무엇 때문에? 언제? 어떻게 하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기도만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엘리사는 수질이 나쁜 수원지에 소금을 칩니다.
20절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21절, …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엘리사 선지자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물의 근원지로 갑니다. 소금을 샘물에다 전부 쏟아 부으며 선포합니다. 21절, 물을 고쳐놓았으니 앞으로는 물을 마시고 사람이 죽거나, 물로 인해 농작물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과연 그랬습니다. 선지자의 선언으로 고약한 샘물은 좋은 물로 바뀌었습니다. 마음껏 마셔도 탈이 나지 않고, 농작물이 주렁주렁 열매를 맺었습니다. 소금의 주술적인 효과로 맑은 샘물이 된 것은 아닙니다. 새 그릇에 담긴 소금은 새로움과 정결함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치료의 능력입니다. 그러기에 샘가의 독소 물을 맑은 물로 고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쓴 물을 단 물로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엘림에서 보여준 이적입니다. 충만한 영감을 받은 엘리사는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기적은 성읍의 오래된 성읍을 고쳐놓았습니다 .
여기서 소금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 즉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받고 새로워진 우리가 소금이요 소금 백성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십니다.
유대 나라 농사에는 땅이 투박해서 소금을 먼저 뿌린 후 씨앗을 뿌립니다. 그러면 땅이 부드럽게 되어 씨앗이 잘 스며들고 비가 오면 땅이 촉촉이 습기를 머금어 씨앗을 내고 열매까지 잘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주역을 맛나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복음이 능력 있게 나타나기 위해 우리가 존재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세상에 선포하기 위해 내가 존재합니다. 그러려면 한 가지! 거기에 붙어 녹아내려야 합니다. 그건 자기희생입니다, 십자가의 정신이 희생입니다. 물이 안 좋은 곳에 우리가 희생이 되어야 하고 싸움으로 불화가 일어나는 곳에 우리가 희생이 되어야 하고… 갈등이 있는 곳에 한국교회가 희생하려는 행동으로 나선다면 복음이 맛나게 되고 십자가의 능력이 맛나게 되고 예수님이 맛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19절, “좋으나… 나쁘므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론
1987년 1월 15일 새벽 1시에 북한주민 김만철씨가 청진항에서 50t급 청진호를 탈취한 뒤 일가족 11명을 태우고 남한으로 왔습니다. 그의 처음 목적지는 한국도 일본도 아니고 그냥 ‘따듯한 남쪽나라’였습니다. 살아보니 남한이 바로 그런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보기에 대한민국은 따뜻한 남쪽나라일까요?
지금 대한민국은 중환자 수준입니다. 동족들끼리 싸워도 이리도 싸웁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좋은 위치에 있습니까?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육지가 있고 바다가 있고… 봄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있고… 산도 있고 평야도 있고… 대륙으로 나갈 수 있는 북쪽이 있고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 동서남이 있고… 이렇게 좋은 위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 낸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치안이 잘 되고 먹거리가 풍성하고 24시간 아무 데서나 음식을 사고… 찜질방이 있어 쉽게 잠을 청할 수도 있고 피로를 풀기도 하고, 빠른 인터넷이 있어 효율적이고… 이렇게 좋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종교간의 분쟁도 없고 흑백의 갈등도 없습니다.
위치는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물이 나쁘므로…
대한민국에서 나쁜 물이 무엇입니까?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사상의 문제요, 선과 악이 없이 내 편만을 두둔하는 진영의 문제요,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인본주의 신앙과 신학이 나쁜 물입니다. 이런 물 때문에 대한민국의 성장의 언덕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걸려 대륙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한일문제에 걸려, 반미(反美)에 걸려 대양으로 뻗어나가지 못합니다. 지금은 진영논리에 빠져 선과 악의 개념, 진리와 비진리의 개념이 뭉개져 버렸습니다. 배운 사람들까지, 예수 믿는 사람들까지 그러고 있어 질려버릴 정도입니다.
대한민국에 소금을 뿌려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수질이 고침 받는 것은 십자가의 용서의 복음뿐입니다. 십자가의 용서는 자기희생에서 나옵니다. 소금처럼 녹아지는 소금의 영성만이 내 심령과 가정과 교회와 대한민국을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대한민국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고쳐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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