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내 차례이다
마태복음 27장 55, 56절
서론
오늘 세례 받으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하합니다! 세례는 물속에 들어가서 죽었고 물에서 나와 새생명을 얻었음을 상징합니다. 내가 죽었다고 할 때 무엇에 대해 죽었고, 다시 살았다고 할 때 무엇에 대해 살았다는 것입니까? 세례 받기 전이나 받은 후나 내 상태는 동일한데…. 물속에 들어가 죽었다는 것은 죄에 대해 죽고 과거의 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 새생명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짜 세례는 물이 아니라 진실된 고백에 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마음
대로 살아왔던 죄인입니다, 내 죄를 대속하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이런 고백이 있을 때 거듭나고 성령세례를 받습니다. 성령세례를 받고 물세례를 받아야 진짜이고 효력도 있습니다.
1. 주님이 내 십자가 지시다.
유대인은 진짜 죄가 무엇이고 그 죄를 없애는 방법을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유대인은 죄와 죄에서의 해결방법을 전수받고 세계에 유통시킬 여호와 종교민족으로 선택된 백성들입니다. 죄라면 도둑질, 시기 질투, 살인, 폭력… 이며 이를 고행으로 선행으로 없애면 좋은 세상으로 간다는 것이 인류의 보편적인 종교심인데 유대인들은 죄는 잘못된 행동 이전에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체가 죄이며, 원죄 때문이며 이걸 없애는 방법은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죽음으로 대가를 치를 때에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여기에 계시가 등장합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알려주시는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기 전에는 인간 스스로는 알 재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담겨진 유일한 책이 성경이고 성경을 토대로 세워진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계시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의 유대인들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짐승을 대신해서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유대인의 속죄제사 중에 아사셀 제도가 있습니다. 염소 두 마리를 뽑아 한 마리는 속죄제로 드리고 한 마리는 광야로 보냅니다. 무인지경 광야에 끌고 나가 절벽 위 나무에 목을 걸고 밀어냅니다. 혹시라도 희생제물이 살아 돌아오면 죄가 속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숨이 끊어지는 것을 보고 달려오면서 죄가 사함 받았다고 소리를 지르면 성읍에서 기다리던 백성들이 환호합니다. 이것은 장차 오신 예수님에 대한 그림자이며 예표입니다.
메시아 전문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아 사역이 아사셀 염소와 같다는 예언을 합니다(53장). 메시야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4,5절)
“…그는…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12절).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사고가 성령의 사고가 되었고 인류의 죄를 없애기 위해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구원의 방법에 동의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동의가 안 되면 물세례는 받았지만 성령세례는 받지 못한 것입니다. 성령세례가 곧 거듭남 중생입니다. 그럼에도 왜 확신이 없음에도 세례를 주는가? 참 군인이 되어 계급장을 주는 것이 아니고 계급장을 달아주면 서서히 군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세례를 위해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2. 내 십자가, 이젠 내 차례다
본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여인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사야 53장의 예언을 생각했을 거예요! 나를 위해 달리셨구나, 나를 위해 죄인이 되셨구나… 나를 위해 죽으시는구나, 나를 위해 피를 흘리셨구나…
(찬송)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서 있는 여인들을 보세요!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다… 어머니 마리아도 있습니다. 모성애의 애통함… 세배대의 아들 어머니 살로메… 자리에 연연하고 욕심을 냈던 여인입니다. 나를 위해 죽는구나… 모두 내 손으로 염소를 무인광야로 보내는 심정으로 멀리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와 성찬예식을 통해 나를 위해 달리시고 죽으시고 버림을 받은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오직 십자가의 예수님을! 그게 전부인가요? 우리는 2천년 전의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울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정녕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것일까요?
십자가 형틀은 죄수가 십자가를 메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메고 동네를 돌아 골고다로 향했습니다. 그게 너무 불쌍하고 가엾어서 여인들이 따라가며 울었습니다. 자기들이 불쌍해서 더 울었을 거예요. 예수님이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까? 무슨 힘으로 살까… 그런 생각이 겹쳐 더 서럽게 울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눅 23:28).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누구를 위해 울어야 한다고요? 나와 내 자녀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예수님만을 위해 웁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주님의 생각은 달라요~! 내가 왜 달리는 줄 아느냐? 네 죄 때문이다! 그러니 네 죄를 통회하며 울라….
이제는 내가 십자가에 올라가야 합니다. 구경만 하지 말고 십자가에 달려야 합니다. 여인들은 십자가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린 당신을 보여주는 일보다 십자가에 달린 나를 보고 싶어하십니다.
시카고의 템플교회는 고딕양식의 예배당입니다. 역사가 오래되어 빈자리가 많고 고령들만 출석하는 교회입니다. 하루는 교회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높이 세워진 첨탑의 십자가를 청소하는 날입니다. 까마득한 높은 첨탑에 매달려 청소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려고 교회 앞에 모여든 것입니다. 십자가 청소를 마치고 내려온 청소부가 "목사님,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건가요?" 물었습니다.
목사님이 "빈 십자가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지만, 사람이 달린 십자가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합니다!"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빈 십자가는 아무도 주목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왜 나를 주목하지 않을까요? 내 십자가에 내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걸이 십자가는 해도 내가 십자가에 달리는 자기희생, 자기부인의 길을 걷지 않고 빈 십자가만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가 세상의 주목에서 멀어지고 있을까요? 한국교회의 무수한 십자가! 대단한 규모의 교회들! 그 십자가에 아무도 달려 있지 않기에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공부는 많고 프로그램은 많은데 매일의 삶에서 내가 희생하고 궂은일을 몸으로 하려는 일들에는 구경만 하고 있기에 빈 십자가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없으니 빈자리만 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약해집니까? 교회 다니면서도 십자가 지기를 싫어하기에 교회가 약해지는 것입니다. 말로만의 십자가가 있을 뿐이지 어떤 지체도 달려있지 않는 비어있고 공허한 십자가입니다.
이제까지는 주님이 달렸으니 주님이 내려오시도록 하고 오늘부터 그 십자가에 내가 달립시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다시 주목을 받고 강한 교회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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