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도 좋은 생각을 했었다!
사무엘상 9장 3~8절
서론
인간부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많아도 쓸만한 사람이 없고 일꾼이 없고 인재가 없다, 지도자가 없다, 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인물이 없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우리 중에 인물이 없다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이 왜 그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입니까?"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세상은 인물을 원하고 있습니다. 교회 역시도 공동체적 집단이기에 인물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물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을 세우실 때 어떤 사람을 택하셨나를 통해 참된 인물, 지도자 상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을 세우실 때에 사울이라는 왕을 선택하셨습니다. 물론 그것은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사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왕이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를 말해주면서 아울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구하지 않고 억지로 구했을 때 구하는 자들에게 어떤 손실이 오는 것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해 차선으로 선택되어진 사람이 바로 사울입니다.
오늘은 사울의 좋은 점만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사울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2절에 사울을 가리켜 "준수한 소년"이라고 했습니다. 준수하다는 것은 단순히 잘 생겼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나옵니다. 보시기에 좋았다, 이것이 바로 준수함입니다.
하나님은 육신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보시는 것도 육신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은 곧 인격입니다. 사울의 인격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것입니다.
참된 지도자의 상(像)은 먼저 인격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그 인격은 순종을 통하여 나올 수 있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순종보다는 매사에 걸고넘어지고 반항하면 좋은 인격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울은 아버지가 암나귀를 찾아오라는 말에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만한 나이면 여러 핑계를 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즉시 순종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공경하며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울이 아버지의 말씀에 즉시 순종한 것을 볼 때 그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임을 볼 수가 있습니다.
효가 없는 인격은 파산된 인격입니다. 작은 덕인 효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나라의 큰일을 맡기시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건대 훌륭한 재상들은 모두 효자였습니다. 효자 아닌 사람은 등용한 일도 없고 효자 아닌 사람이 훌륭한 역사를 이룩한 적도 없습니다. 사람을 등용할 때 먼저 효를 보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중요한 사람을 쓸 때 효를 보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사람이면 무조건 쓴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사람은 배신하는 법이 없습니다. 효를 기본으로 하여 사람을 발탁해 본 경험상으로 거의 정확하다고 합니다.
사울의 인격은 성실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흘을 찾아 나섰습니다. 온 나라를 두루 찾아다녔습니다. "두루 다니되"-세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으로서 보통의 성실이 아닙니다.
그의 인격은 순종과 성실과 인내와 적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인격이 이처럼 준수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쓰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실로 음식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을 막 개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사람이 찾아오니까 수화기를 들고 잔뜩 떠들어 대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기를 내랴놓으면서 무슨 일로 오셨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전화기 달러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잘 나가는 변호사로 보여주려다 들통이 난 것입니다
성실하지 않고 머리를 굴리면 들통이 난다는 교훈입니다.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은 머리를 굴리는 약은 사람들이 아니라 성실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요즈음 내 친구 목회자들을 보면 성실한 사람들이 고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이 성실한 사람들을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큰 목회를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꾼이라는 등식은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성실함으로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늘빛교회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은 모두 성실함입니다. 이 성실함에 사울의 부지런함이 가미된다면 큰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사울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흘을 찾아다녔으나 암 나귀를 찾지 못했습니다.
사환에게 돌아가자고 했을 때 사환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자고 했습니다.
1) 사환의 말은 사울에게 그리 좋은 제안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비이성적입니다. 종교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고리타분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지자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2) 사무엘이 왕으로 세우려고 했을 때 사울은 겸손한 마음으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21절).
3) 그리고 사무엘이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려했을 때 사울은 행구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아주 낮은 사람으로 안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겸손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부리시기에 쉽기 때문입니다.
사울을 가리켜 준수한 자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처럼 그의 겸손이 하나님의 눈에 띄일만큼 마음이 고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과 지혜를 보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어차피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대신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나를 높이 보고 나를 크게 여기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은 결코 쓰시지 않습니다. 외모를 보고도 쓰시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겸손한가를 보십니다. 그는 끝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옛날 송나라 범문공이라는 사람이 관상장이에게 찾아가 자기가 재상이 될 관상인지 좀 보아달라고 했습니다. 재상이 될 관상이 아니라고 하자 범문상은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와서 말했습니다.
"의원은 될 수 있겠느냐?"
당시 의원의 신분은 매우 낮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관상쟁이가 왜 의원이 되려고 하느냐고 했더니,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함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관상쟁이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재상이 되겠소"
"얼마 전에는 안 된다고 하더니?"
"관상이란 색상이 먼저이고 둘째는 골상이며 세 째는 심상이다. 당신의 골상은 시원치 않아 재상감이 될 수 없는데 심상을 보니 재상감이다!"
우리들은 심상이 좋아야 합니다. 심상은 겸손함으로 나옵니다.
사람은 높은데 올라가 보아야 알고, 돈이 있어보아야 알고, 지위를 주어보아야 압니다.
이것을 모르기에 교회는 사람으로 인해 고통을 받으며 어려움을 겪습니다.
우리는 겸손함을 지녀야 합니다. 겸손이 없으면 좋은 그리스도인도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지도를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중의 하나가 지도를 받으려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들에게는 발전이 없습니다. 그러니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조만식 장로는 그는 제자인 주기철 목사에게 평생을 목사님으로 알고 존경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는 존경을 받았습니다. 겸손한 사람이었기에 남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사울은 남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암 나귀를 찾아 사흘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숨기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좋은 교훈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을 때 쉽게 찾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만약 사울이 며칠 동안 헤메이지도 않고 쉽게 암 나귀를 찾았다면 그는 사무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라는 명예는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암 나귀를 잃어버렸고 여러 날 찾지 못했기에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무엇을 잃어버렸습니까? 아무리 찾아도 헤매어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이 하나님 안에서 참고 기다리며 성실함을 지니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들을 예비해 놓고 기다린다는 것을 의심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 날을 찾아다니다 기진맥진해지면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불평이 나올만도 한데 사울은 오히려 아버지 걱정을 합니다.
5절 "내 부친이 암 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남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남을 먼저 생각해야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찾지 못하고 이루지 못하였다고 하여 화를 내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더 마음 아파할 여러 사람들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씨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그 사람이 싫어라 하는 말 같으면 하지 말아야 하고 입을 다물어주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남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니까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서 수천 억 원을 먹은 게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이 나라가 앞으로 50년은 고생할 것입니다.
결론
사람은 어느 기간 동안만 잘 하고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길인 경우가 있습니다. 사울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내리막 전의 생애만 있었으면 훨씬 더 존경받고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만큼만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준수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 인격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을 먼저 생각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인격을 갖추었기에 사울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꾼들이 우리 늘빛교회에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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