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설교

[삼일절] 다시 삼일절을 맞으며(신명기 26:5~9)

갈렙처럼 2025. 2. 1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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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령 태극기

다시 삼일절을 맞으며

신명기 26장 5~9절

 

서론

엊그제 3월 1일은 삼일절 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919년 정오, 일제의 강제적 합방과 식민정책에 항거하여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한 날이 삼일절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배부해 드린 독립선언문을 탑골공원에서 낭독했고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해 3월~5월까지 전국적으로 1,542회의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군(郡)은 218개였는데 6개의 군을 제외하고 212개의 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전국적으로는 2백 2만 명이 참가했고 그 결과 9,458명이 감옥에 들어갔으며 무수한 사람이 총이나 고문당하다 죽거나 옥살이를 했습니다.

 

지난주일 기념감사주일로 드려야 하는데 3월 첫 주가 의미 있을 것 같아 오늘 드립니다. 삼일절 예배를 드리며 어떤 국민으로 살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1. 삼일절은 기독교인이 앞장서서 일어났습니다.

3․1운동은 기독교인들이 주동이 되어 앞장 선 운동입니다. 33인 대표 중 16인이 기독교인, 천도교 15인, 불교인 2인입니다. 기독교 대표는 길선주 목사, 천도교 대표는 손병희 선생, 불교 대표는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한용운 선생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기독교인수가 겨우 2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3%입니다. 천도교는 약 3백만 명으로 10배가 넘었습니다. 전체국민의 1.3%에 불과한 기독교인들에게서 16인의 대표가 나왔다는 것은 당시 기독교가 숫자에 관계없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고 신임을 받고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물론 기독교가 아니고서는 전국적인 조직망이 없었습니다. 천도교당과 절이 있었지만 교회처럼 일정한 예배시간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정한 집회시간이 있었기에 예배시간을 이용해서 정보를 주고받는데 일본인들의 감시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가 소수이면서도 만세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삼일운동은 기독교가 주도했기에 무저항운동, 비폭력운동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총 들고 함께 싸웠다면 3․1운동의 정신은 많이 퇴색되었을 것입니다. 이 때 독립운동으로 체포된 사람의 22%, 복역수의 77%가 기독교인입니다. 교회당 12개, 장로교학교 8개가 파괴되었습니다. 시위 중 총에 맞아 죽은 기독교인이 41명이고 매맞아 죽은 기독교인이 6명입니다. 체포된 신자가 3,804명, 그 중 목사 장로만도 134명입니다. 목사 장로 총수가 1,029명이었는데 체포된 목사 장로는 13%에 이릅니다. 얼마나 대단한 분들입니까?

 

이런 사정으로 보아 기독교는 서구문명을 들여와 선진화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서양 학문을 배우게 하고 양반 상놈이라는 차별계급을 없앴으며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연세대학교, 배재․경신, 이화 이화여대 등을 세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망국의 백성이 되었을 때는 목숨 걸고 일어나 우리 민족의 희망 종교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안티 기독교는 9%의 공(功)을 일부러 무시하고 1%의 과실(過失)만을 공격하는 상당히 편협적인 흐름입니다. 사람의 공과를 따져야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진실을 외면해버리려는 것은 국가가 뒷걸음질하겠다는 불행입니다.

 

기독교와 국가, 기독교인들과 애국-사실 성경적으로는 호국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불교에는 호국불교가 있습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불교는 국가를 위해 수도승들이 총들고 일어나 싸웠습니다. 사명대사 같은 분들이 그런 분입니다. 이것이 호국불교입니다.

 

기독교는 호국기독교라는 말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세우신 것은 이스라엘국가만의 번영이 아닙니다. 그들을 통해 여호와 종교가 세계로 흘러가야 하고 여호와 종교가 전파되는 곳마다 번영과 평화로운 땅이 되고 그래서 세상이 하나님나라로 하나가 되는 것-이것이 여호와 종교의 사명입니다.

 

기독교는 민족주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사실 조만식 이상재 같은 지도자들이 장로였고, 1896년 ‘독립협회’를 조직한 서재필 윤치호… 등 기라성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독립협회 지부도 거의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순수한 기독교인도 있지만 교회 조직을 이용해 독립운동에 활성화를 꾀하자는 생각에서 들어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애국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애국의 일환으로 기독교를 이용하는 것은 신앙인의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세계를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열혈당이라는 유대 독립당이 있었습니다. 시몬이라는 제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의 애국심을 철저히 배격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독립국가의 존재보다는 세계에 하나님의 이상을 펼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애국심을 강조하고 세계 여러 나라를 경시하고 반대하는 것을 삼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나라사랑과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것이 상치되지 않도록 우리들의 흥분을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유대인들은 언제나 조상들의 경험을 자기의 것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본문은 모세가 광야 40년을 마감하고 다음세대에 배턴을 넘겨주기 직전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말하기를, 조상들의 역사를 내 것으로, 조상들의 경험을 내 것으로,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것으로 일치화 시키면서 살아가라고 합니다.

 

5절, “네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사람으로서…” 자손들도 그 정체성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6절,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며”

-조상들이 갑자기 “우리로” 둔갑합니다. 우리가 바로 그 역사적 시대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7절, “…우리가 부르짖었더니 …우리의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다른 사람들이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내가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유대민족들은 이처럼 3인칭(조상들)을 1인칭(자신들)화하고 있습니다. 즉 애굽으로 내려간 것도 자신들이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된 것도 자신들이고 출애굽한 것도 자신들이라는 것입니다. 고대의 역사를 현재의 역사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유대인들의 역사관은 이후에 일어난 수많은 민족의 수난 가운데서도 국가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유대 비화(秘話) 중에 마사다(마짜다)사건이 있습니다. 마사다는 사해바다 남쪽에 위치한 천연적 요새입니다. 정열적인 유대여성들은 아이가 출생하면 마사다 요새에 데리고 가서 조상들의 용기를 설명해주고 훌륭한 조상들을 둔 자손답게 살아가라고 산 교육을 합니다.

 

주후 65년경, 로마의 폭군 황제 칼리굴라는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 자신의 신상을 조각해놓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벌떼같이 일어나 저항합니다. 이 저항운동으로 110만 명이 죽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열혈당원을 비롯한 혁명주의자들 960명이 마사다요새로 피신합니다. 이곳에서 3년을 버팁니다.

 

로마군단은 마사다와 같은 또 하나의 성을 만들어 최후의 공격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번의 공격에는 누구도 막아낼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유대인들은 항복이냐 자결이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도자 엘르아살(유다자손)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택일을 요구합니다.

 

“명예롭게 자결할 거냐, 아내와 아이들은 눈앞에서 겁탈 당하고 평생 노예로 살 것이냐?”

마사다 용사들은 노예보다는 자유인으로 죽기를 선택합니다. 우선 100명을 선택해서 아내와 자녀들을 죽였습니다, 860명은 서로 껴안고 죽었습니다. 다시 100명 중 10명을 선택해서 그들이 90명을 죽였습니다. 마지막 1명이 남아 9명을 죽이고 끝내는 최후의 1인이 마사다 요새에 불을 지르고 자결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사가 글로 남긴 것도 없는데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을까? 이 날 모든 사람들이 다 죽지 않았습니다. 아이 5명, 할머니 3인이 수도관속에 숨어 살아났습니다. 그들이 숨어서 본 모든 사실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지금도 마사다 요새에는 지하 물탱크에 음료수가 넉넉하고 양식과 무기가 남아 있습니다. 결코 굶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장렬하게 자유를 택했다는 조상들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산 교육장이 된 것입니다.

 

이런 자랑스런 역사관을 갖고 있었기에 6백만 명이 학살당하는 2차대전에서도 결코 조국을 배반하지 않았고 비굴하게 목숨을 구해달라고 애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자손들에게 계속 이어져 나가리라는 확신과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삼일절을 00년 전에 일어난 과거적 사건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자유를 향한 갈망, 비폭력저항, 조선사람들의 기개와 정신을 바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독립운동에 대한 정신적 저항, 영적 저항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반미운동이나 하고 일본이야기만 나오면 거품을 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조상들이 왜 독립운동이 일으켰는가, 그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적대적인 관계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함께 살고자 한 운동이었습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경제적 예속에 놓여있고, 문화적 예속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우리 스스로에게 계속 독립을 선언하고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 관습, 뿌리깊은 편견에 대해 저항하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신앙보다 열심이어서는 안 됩니다.

3. 한국교회는 사회개혁운동에 앞장서야 합니다.

기독교가 소수면서도 삼일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사회개혁성향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구한말의 유교문화를 변혁시켜 나가려는 역동성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했습니다. 유교적 신분제도를 철폐했으며 술과 담배를 끊고 노름과 축첩을 죄악시했습니다.

 

김제 금산교회는 ㄱ자 교회로 유명합니다. 머슴인 이자익이 주인 조덕삼보다 장로가 먼저 되었습니다. 후에 장로가 된 조덕삼은 머슴이었던 이자익 목사를 금산교회 당회장으로 모셔왔습니다. 이자익 목사는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했습니다. 조세형 씨가 이곳 출신 장로입니다. 조덕삼 장로와 어떤 관계인지…. 굉장한 힘이 아닙니까? 그러나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승동교회가 백정이 장로로 뽑혔습니다. 그러자 양반계급출신들이 교회를 빠져나가 동승교회를 세웠습니다. 글자만 바꿔서! 왜, 대한예수교 양반교회라고 간판을 거시지!

 

둘째, 원수 사랑을 실천하여 선교의 길을 넓혔습니다. 소래교회 서경조 장로는 기독교를 반대하고 선교사들을 국외로 추방하려 했던 동학의 주모자 이기선의 구명운동을 벌여 사형장에서 참형 직전에 있던 이기선을 극적으로 구출했습니다. 이 용서의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입교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서경조 장로가 서경석 목사의 000입니다.

 

셋째, 민족독립운동의 중심지로서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찬송가도 전투적인 한국적 찬송가를 만들어 불렀고 출애굽기와 에스더 같은 성경을 많이 설교했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목숨 걸고 앞장섰습니다. 이것이 국민들에게 감동이 되었습니다.

 

넷째, 자기 희생이라는 기독교의 기본 정신대로 살아가려는 각오가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사에는 그리스도인이 너무 깨끗하게 살았기에 탐관오리들이 교회가 있는 마을에 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뇌물도 없고 못된 짓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교인들이 성결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자기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은 교회가 세상처럼 심각한 이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삼일절을 맞아 자신들을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개혁운동, 사랑을 실천하는 일, 세계평화와 함께 민족애, 이기주의를 극복하려는 자기 희생적 삶-이런 것들에서 우리가 앞장서야 합니다.

 

결론

지난 세월의 기독교는 전투하는 기독교, 저항하는 기독교, 너! 하는 기독교였습니다. 무엇에 대해 전투했고 저항했고 노! 했을까요? “뻔한 것”과 전투한 것입니다. 뻔한 것은 나쁜 것에 합세하고 동화되어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신분제도, … 이런 뻔한 것에 기독교는 저항하고 나선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이 왜 욕을 먹습니까? 세상 사람들보다 나빠서? 아닙니다! 뻔해서! 사는 것이 뻔해서! 행동하는 것이 뻔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최고의 욕은 “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일어서야 하고 저항해야 합니다. 그래서 “뭔가 다르다”는 말을 듣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어두워진 세상에 희망의 대안세력이 될 수 있습니다.

삼일운동에 나섰던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도 스스로를 먼저 바르게 세워가면서 국가가 바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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