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냐 진화냐?
창세기 1장 26-28절
서론
하나님의 존재 안에서 인간의 본질(本質)을 풀지 않으면 인간의 참 존재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뿌리가 없는 나뭇가지가 어디 있으며, 조상이 없는 사람이 어찌 존재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뿌리나 근원을 캐지 못한다면 현 존재에 대한 참된 규명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웰즈(Wells)라는 사람은, “사람이 하나님을 발견하기 전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인생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창조론-신앙, 진화론-역시 신앙
인간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인간의 기원 문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인간의 기원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의 견해로 구별됩니다. 지구에는 약 2백만 종(種)의 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생물의 종류의 기원설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창조론(創造論)과 생물이 점점 진화되어 오늘의 생물이 되었다는 진화론(進化論)으로 대표됩니다. 인간 존재의 기원을 설명할 때 창조론은 하나님의 작품이라 하고, 진화론은 수십억 년이라는 세월을 지나면서 우연히, 그리고 자연히 형성되어 온 생물이나 존재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해 주신 것을 믿는 창조론은 기독교인들이 신봉하고 있고, 그 외의 사람들은 진화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진화론도 창조론도 아닌 제3의 인간 출현설을 말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생명이 없는 무기물에서 간단한 생명체가 나타나고 점점 복잡하고 질서 있는 고등생물로 서서히 진화되어 오늘의 생명체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간 기원을 설명할 때도 ‘아메바’라는 아주 작은 단세포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점점 진화하고 식물․동물 등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거쳐 인간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과학적 상상력이 동원된 추측이요, 가설임에도 우리나라의 교과서에 인간의 기원을 밝히는 유일한 정설(定說)로 소개되어 아무런 저항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되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은 어디까지 추측에 따른 이론에 불과합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진화론의 창시자인 다윈(Charles Darwin) 자신도 “우리는 그런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란 말을 800여 회 이상 사용했다고 합니다.
켄함과 폴 테일러가 공저한 <창조와 진화:신앙 대 신념>이라는 책에는, 과학자들에 대한 부정확한 견해가 4개 나옵니다.
㉠ 과학자는 객관적이다?
그럴까요? 과학자는 언제나 객관적일까요? 그들은 과거의 모든 존재를 직접 볼 수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을 갖고 시험하고 과거를 관측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주관적인 자신의 지식과 신념이 많이 작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객관적이다, 말할 수 없습니다.
㉡ 과학자는 편견이 없다?
과학자는 언제나 증명되고 증거가 나타난 것만을 갖고 말할까요? 그러나 과학자들도 인간이기에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학설, 연구와 증거를 해석하는 방법 등은 그들의 인생과 근원들에 대해 선택하는 믿음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워놓은 가설이나 방법으로 과거를 설명하고 진단합니다.
이럴 때에도 역시 개인의 편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과학자들은 이스라엘 쪽에 유익한 결론을 내리고 중동 과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하겠지요. 법관은 재판으로만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법(法) 위에 있는 것은 아무래도 “나”입니다. 나에게는 소신이 있고 선호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편견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과학자들은 편견이 없다는 사실은 틀린 것입니다.
㉢ 과학자는 틀릴 수 없다?
과학(科學)이라면 언제나 사실적이고 확실한 것이라 오해(誤解)합니다. 그러나 호킹 박사도 자신의 이론(理論)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지 않았습니까? 과학이란 암석이나 화석… 등 물증이나 증거품을 놓고 연구하고 분석합니다. 분석하는 과정에서 100년 전의 화석이 1000년으로 둔갑될 수도 있습니다. 과학자들도 오류가 있으니까 세계의 과학자가 모여 제작하고 쏘아올린 우주선이 지구를 떠난 지 몇 분도 안 되어 폭발하기도 합니다.
㉣ 진짜 과학자는 항상 하얀 실험복을 입는다?
이 견해는 과학자의 100% 진실성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창조와 진화:신앙 대 신념>에서 저자들은 과학(科學)도 믿음이라고 있습니다. 아주 예리한 관찰이자 좋은 명쾌한 해석입니다.
<…진화론은 과거에 대한 신념들로 구성되어 있다. 진화론자들은 이 신념을 이용해서 현재 관측할 수 있는 사실들을 설명하려고 애쓴다. 과학이란 단지 현재에 관측할 수 있는 것들만 다룰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진화론을 ‘과학’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고대의 공룡시대나 원시 인류사회를 직접 목격하거나 관측하기 위하여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는 과학자는 없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둘 다 직접적으로 관측이나 검증을 할 수 없는 과거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줄 뿐이다. 궁극적으로 창조론이나 진화론은 둘 다 믿음이다.
진화론을 반증하는 과학적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열정과 신념으로 진화론을 믿고 있다. 정열과 신념으로 유지되는 믿음은 ‘종교’(宗敎)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창조론과 진화론은 둘 다 인생에 관한 종교적 견해이다. 그러므로 이 대결은 두 가지의 종교적 믿음 사이의 싸움인 것이다.>
저자들은, 행정부가 진화론은 과학이기에 가르칠 수 있지만 창조론은 종교이기 때문에 교과과정에서 다룰 수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은 이런 식으로 말해야 정직한 해명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공립학교에서 기독교교리(창조론)를 가르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다른 종교, 즉 세속적 인본주의(진화론)로 대치하였다.”
정말 명쾌한 지적입니다. 창조론은 종교이고 진화론은 과학이다? 어차피 증명이 되지 않는 것을 둘 다 오십 보 백보인데. 감사하게도 독실한 자연과학자들이 진화론의 허구성과 창조론의 진실성을 밝히는 작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창조신학회 연구원장인 오대식 목사는 성경에서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구절을 들어 진화론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 목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멘델(Mendel. 1822~1884)의 유전법칙과 다윈(1809~1882)의 진화론은 생물학내에서 서로 충돌되는 이론이다. 진화론에서는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진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유전법칙은 다른 종으로의 진화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동일한 종(種) 내에서 어떤 법칙으로 유전되느냐를 설명한다.
진화론은 어떤 방법으로도 증명될 수 없는 가설인데 비하여 유전법칙은 과학적으로 실증이 된 과학적 법칙이다. 실제로 오늘날 모든 생물은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자연히 옮겨지지 않으며 유전 질서가 엄격히 지켜진다는 과학적 사실이 증명되고 있다….>
오 목사에 따르면, 모든 생물의 세포핵(核)속에는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른 유전자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이 유전자의 본체는 DNA(deoxirbo nucleic acid. 디옥시리보 핵산)라는 핵산(核酸)인데 여기에 각 종류에 따라 독특한 유전 정보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이 DNA는 대단히 안정된 형태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생물에 유전자의 변이(變異)가 생겨서 한 종의 생물이 다른 종의 생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절대로 기대할 수 없다고 합니다. 물론 유전 법칙 내에서의 변이와 다양성은 관찰이 되어도 다른 종의 변이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돌연변이’라는 말로 가설을 만들어 내지만 그 경우에도 다른 종으로, 다음 세대로는 유전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DNA-세포 속에 유전정보(유전자)가 들어있다는 현대과학의 증언은 하나님께서 생물을 종류별로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개인도 십수 억 명이 각기 다른 DNA를 갖고 태어난다는 사실이 진화가 아닌, 어떤 분명한 법칙에 의해 기원되었다는 사실 증명이 될 것입니다.
하기야 이런 과학적 논쟁이 진화론자들이 보면 웃기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마치 김용옥씨가 대중들이 보면 굉장한 지식을 축척한 것처럼 보이나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인 그의 해석에 “웃긴다!”는 식으로 진화론에 대한 저의 주장도 저들 보기에는 기초적인 사실을 들고 혼자 다 안다는 식으로 보일까봐 그만 두겠습니다.
창조론자들이 던지는 질문
진화론자들은,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믿는 창조론자들이 던지는 극히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되는 중간과정이 오늘날에도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진화되어 여기까지 왔다면 지금도 계속적인 변형상태의 인간들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과거에는 인간에게 일어났던 진화가 과학이 증명하는 바로도 수 천 년 동안 진화가 조금도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앞으로 또 어떻게 진화되어 갈 것인가? 앞으로의 진화를 예측할 수 있는 진화론자들이 있을까?”
진화론자들의 이론으로는 이런 기초적인 의문점들을 해소시켜줄 수 없습니다. 인간의 기원을 진화론으로 설명하려 한다면 해답이 나오기는커녕 계속 수수께끼로 몰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진화론에 바탕을 둔 무신론 철학자나 사상가들은 지금도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갈 것인가?” 라는 기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도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수 있는 인간 존재에 대해 고등지식을 가진 그 사람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원을 바로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창조론 밖에 없습니다. 창조론이야말로 가장 과학적이며, 잡다한 결론, 시대의 추세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는 학설이 아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는 결론 중의 결론이자 과학 중의 과학입니다.
오늘의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인간 기원설-진화론의 과학도 성경의 창조과학도 속 시원히, 분명한 증명으로 우리에게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결국은 우리 믿음이 결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성경의 나를 믿을 것인가? 미생물에서 진화되어온 과학교(科學敎)의 나를 믿을 것인가? 두 주장은 믿음 대 과학의 대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종교의 과학과 다른 종교의 과학 사이의 싸움입니다. 이런 싸움에서 누구나 한 편에 서야 합니다. 불가지론자(뭐가 뭔지 모르겠다)의 입장은 너무 무책임합니다. 둘 중의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무신론적 진화론종교의 과학이 아니라 성경의 과학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창조론을 선택하는 합당한 이유에 대해 <창조와 진화:신앙 대 신념>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 창조론은 사실들과 더 잘 부합된다.
2. 그것은 태초부터 창조의 현장에 계셨던 전지전능한 창조부로부터 받은 기록들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진화론보다 당연히 유리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3. 기독교인은 창조주와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선택은 다르지만, 어느 쪽을 믿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두 믿음, 두 과학의 차이는 자아상(自我像), 혹은 자화창조냐 진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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