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 대한민국을 세우는 힘
사도행전 3장 1~10절
서론
지난 주일 우리교회가 설립 감사주일을 맞았습니다. 원래 이 설교는 감사예배에 하려했는데 손님들 모셔다 우리 이야기만 하는 것이 초청예배 취지에 맞지 않아 다른 설교로 대체했고 예배도 초청자 중심으로 진행했습니다. 세상 말로 소비자 중심의 예배였습니다.
우리교회는 1984년 9월 29일에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세상 물정을 알고 교회개척이 얼마나 힘든가를 알았다면 목사 부부 둘만으로는 개척 못했을 것입니다. 서른두 살 초보 딱지 목사는 개척교회가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연말에 7년동안 사역하던 교회를 나오고 계획에 차질이 생겨 소위 실업자 목사가 되었습니다. 송내역 부근 친구의 개척교회에 예배하러 갔다가 10여 명의 교인과 행복해 하는 개척교회 목사의 모습에 ‘나도 개척하면 10명은 모이겠지…, 그러면 저런 행복한 얼굴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런 마음에 교단본부로 가고자 했던 계획을 접고 화곡1동 359-6번지 3층 상가에 <늘빛교회> 간판을 걸고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5주년을 맞았습니다. 여러분을 만나 살아온 날들은 매일매일이 빛나는 날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36년 동안 함께 했던 분들도 여럿 계시니 두 주 전에 오신 집사님들까지 모두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래서 훗날 제 묘비명은 정해졌는데 “내 잔이 넘쳤나이다!”입니다. 모두 여러분 덕분이지요!
35주년을 맞이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둘이면 되는구나! 아내와 함께 둘이 개척을 시작했거든요! 두 명은 숫자로 이해해도 되고 마음에 맞는 소수의 사람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데이비드 스티븐슨 목사에게 두 소년이 어린이병원을 돕고 싶으니 과자를 사 달라 했습니다. 어느 교회나 사회사업 단체에서 왔느냐? 물었더니, 둘뿐이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병원을 도우려 1백만 달러가 목표인데, 우리 둘이면 충분합니다!”
유명 설교자이던 스티븐슨 목사는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음 주일 설교 제목은 “둘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약하지만 하나님과 동역하면 둘이면 못할 일이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본문에도 둘이면 충분했습니다. 앉은뱅이, 4장 22절, 나이는 40여세라 합니다. 앉은뱅이의 문제는 일어서는 것! 자립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이런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은 대제사장도 직업 종교가도 아닙니다. 떼쓰면 된다 생각하는 대중도 아닙니다. 그들은 앉은뱅이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일으켜 세워줄 힘도, 희망도 주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것은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면 충분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앉은뱅이 모습입니다. 일제 36년의 압제와 6.25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일으켜 세움으로 성공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대회들이 유치되고 경제 대국 10위권 안팎으로 왔다 갔다 하며 특히 IT강국으로 눈부신 발전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이 몰락 중입니다. 마치 앉은뱅이로 주저앉는 모습입니다.
누가 이런 앉은뱅이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요? 어쩌면 진정으로 앉은뱅이 대한민국을 일으키는 사람은 일방적으로 함성을 지르는 대중이 아니라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소수의 사람! 딱 두 사람이면 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어떤 두 사람입니까? 기도의 능력을 믿는 두 사람입니다.
1절, 제 구시 기도시간에…. 기도하러 성전으로 갑니다. 가는 목적이 뚜렷합니다.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능력 은사도 체험했습니다. 기도하다가 받았으니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제9시 기도시간이 되자 기도하여 더 능력있게 살려고 성전으로 간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게 하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에너지입니다. 그걸 기도로 받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적인 기도생활을 통해 은혜를 받으면 은혜의 눈이 되고 능력을 많이 받으면 능력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 사랑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걸 알았기에 정한 시간만 되면 별일 제쳐놓고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에서 열심히 기도하여 은혜받고 사랑으로 넘치고 능력들을 공급받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성전은 기도생활은 능력을 공급받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목표로 성전으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 올 때마다 예배의 목표, 기도의 목표를 가지세요! 은혜를 받게해달라고! 은혜 안에서 거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주님을 전하는 사명자가 되게 해달라고! 은혜가 우선되면 교회에서 시험들 것도 없고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은혜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은혜롭습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은 교회를 순회할 때마다 꼭 잊지 않고 권면한 것이 “은혜 안에 거하라”
교우님들! 무슨 일을 겪더라도 은혜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은혜 안에 거해야 은혜 안에서 성장하고 교회가 제대로 부흥합니다. 은혜 없는 믿음이라면 그런 교회는 부흥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부흥을 놓고 은혜로 부흥하게 해달라 기도해 주세요. 은혜가 없으면 부흥하지 말게 해달 기도하세요. 은혜 없는 교회를 부흥시켜 어쩌자는 것입니까? 그러기에 교회 안에서는 은혜를 부흥시키고 은혜 공급에 열심해 주세요. 은혜를 식혀버리는 일들을 해선 안 됩니다. 그러려면 기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두 사람이 늘빛교회를 세웁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어떤 사람입니까? 동역하는 파트너들입니다.
베드로는 덤벙대었지만 추진력이 있고 요한은 사랑스러우면서도 자기가 강한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뜨거웠고 요한은 냉철했습니다. 베드로가 열탕이라면 요한은 냉탕입니다. 성격은 달랐지만 예수 안에서 마음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너도나도 은혜를 받으니 은혜가 성격을 덮으면서 제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역파트너가 된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동역할 때 앉은뱅이를 벌떡 일으켜 세웁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웠지만 예수의 이름은 누구에게서나 능력있는 이름이 아니라 은혜 가운데 동역하는 은혜의 사람들로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성공의 비결을 ‘믿음’ ‘비전’ ‘친구’라고 했습니다. 세계적인 여론 조사인 갤럽이 미국민을 대상으로 개인적 성공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1위가 건강, 직업, 행복한 가정, 좋은 교육, 마음의 평화, 여섯 번째가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래요! 사상이나 지연이나 학연으로 맺어진 친구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친구가 아니라 은혜로 맺어진 친구가 진짜 친구요 동역자들이요 그들이 하나가 될 때 역사가 나타납니다. 베드로는 비겁한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세 번이나 스승을 부인하고 외면했습니다. 요한은 겉옷을 벗어던지고 36계 줄행랑을 했습니다. 팬티바람으로 도망간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 안에 거하고 보니, 허물이 아니라 허물을 덮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봅니다. 그 은혜가 자기를 덮었음을 압니다. 크게 실수했던 사람들! 크게 용서 받은 사람들끼리 맺어지니 그 우정은 콘크리트 벽처럼 단단합니다. 그래서 붙어 다녔고 동역하였고 결국은 역사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앉은뱅이의 기적은 은혜의 동역이 만들어 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필요한 것은 패거리가 아닙니다.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무조건 우리 편 남의 편끼리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른쪽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세(勢) 싸움을 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옳고 그름을 다질 때이지 숫자를 많이 모였다고 해서 사실이 없어지고 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소수가 되었다 해도 그 소수들이 결국은 앉은뱅이 대한민국을 일으키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의 자화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한 때는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이후 예수의 영이 그들 속에 들어오고 그들은 예수님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예수쟁이가 되었습니다. 그들 속에 예수가 살아있는 예수쟁이였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은과 금은 없지만 예수가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그러자 걸었습니다. 예수의 자화상을 지녔기에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앉은뱅이는 일으케 세웠습니다. 우리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되려먼 예수의 자화상알 가져야 합닏아. 그래야 예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빅터 세리브리어코프. 15살 때 교사에게서 공부는 말고 장사나 하라는 충고를 받았습니다. 17년 동안 각종 직업을 전전했으나 밑바닥생활을 했습니다. 32세 때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IQ가 161 천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빅터는 천재처럼 행동했습니다. 책을 쓰고, 특허를 내고, 성공적인 기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IQ 132 이상만 회원이 될 수 있는 국제멘사협회 의장이 되었습니다. 그를 멘사회장으로 만든 것은 자화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념이 앉은뱅이 대한민국을 일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이 앉은뱅이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수십만 명이 모였다고 앉은뱅이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많이 모일수록 대한민국은 갈가리 쪼개지며 무너집니다. 예수의 이름만이 앉은뱅이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됩니다.
요즘 대한민국의 편가르기가 위험수위입니다. 몇 백만을 모았다는 세(勢) 과시 정치들을 하고 있습니다.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든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가난과 전쟁에서 지켜낸 분들입니다. 연세도 많은데 왜 광화문에 모였겠어요? 부귀영화를 원해 갔겠어요?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그 애국심에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지켜온 나라인데…. 그 모습들이 전해졌습니다.
이에 비해 서초동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새롭게 하려는 분들입니다. 그들 역시 부귀영화보다는 대한민국이 여기에 머물면 안 된다는 생각들이 그 저녁에 촛불을 들게 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만들어 가려는 세상을 꿈꾸면서…. 그런 역동적인 열망들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지금 이런 소모전에 군중을 동원하고 누가 많이 모였느냐, 경쟁할 때인가요? 세계는 먹고 살기 위해, 다음세대 먹거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세계각국이 인공지능(AI) 주도권 다툼에 혈안인데 우리는 낡은 프레임에 발목 잡혀 외딴 섬이 되어가고, 나라 밖은 정글판인데 우리끼리 서로 총질을 하니 구한말 난세의 재현입니다.
이런 때 목사는 누가 옳다 설교해야 합니까? 태극기를 들라합니까, 촛불을 들라합니까? 이 편들면 저 편이 싫어하고 저편이 옳다하면 이 편이 설교에 귀막아 버립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신앙보다 자기 신념이 더 우위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내심 불만을 품는 분들도 있겠지요. 그래서 박정희 독재정권 때보다 설교도 목회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세상 일을 외면한채 뜬구름 이야기만 할 수도 없습니다.
교회는 태극기 편도 되고 촛불 편도 됩니다. 태극기도 애국이고 촛불도 애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태극기 편도 아니고 촛불 편도 아닙니다. 두 편 모두 반쪽 애국심으로 상대방을 증오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애국을 말해도 동족을 공격하는 것은 애국심이 아닙니다. 방울뱀은 독이 있는 치명적인 송곳니로 다른 것들은 물어도 제 동족은 물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서로들끼리 원수도 이런 원수가 없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합니까?
답입니다! 교회는 항상 하나님 편이어야 합니다.
교인들도 항상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촛불이 태극기를 태워버리고, 태극기를 흔들어 촛불을 꺼버리는 나 살고 너 죽자! 식의 운동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신념보다 신앙을 위에 두고 성경과 복음의 눈으로 보면 답이 나옵니다.
현재의 싯점만 두고 판단할 때 대한민국이 이 모양 이 꼴로 지지고 뽂고 콩가루나라가 된 것은 여당 야당의 정치가들이 책임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책임이 더 큽니다.
구한말 난세에 조선이 망한 책임은 친일파 을사오적(五賊)에만 있을까요?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부대신 권중현 뿐만이 아닙니다. 고종이 무능하고 못난 것입니다. 고종이 특별히 못해서가 아니라 고종은 왕이고 임금이고 나라의 부모입니다. 아버지는 한 아들만 일방적으로 편들어서는 안 됩니다. 속으로는 마음이 가는 아들이 있어도 겉으로만큼이라도 형제들끼리 다투지 않도록 달래야 하고 양쪽을 꾸중해야 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북한과는 싸우지 말자 해놓고 우리 백성들끼리는 싸우게 놔둡니다, 일본과는 싸우자 해놓고 정작 우리 백성들끼리 싸우는데 침묵합니다. 정당은 싸우는 집단이지만 청와대는 싸우지 못하게, 백성들이 한 마음이 되도록 만들어 내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정치해야 합니다. 그래야 집안이 화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종은 이편 저편을 하나로 묶어주지 못해 신하들끼리 피터지게 싸우게 했고 열강의 다툼에서 일본, 영국, 신흥국가 미국 쪽에 왔다 갔다하다 결국에는 당대의 비주류 러시아 편으로 선 것이 조선을 망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 것입니다. 고종이 왕으로서의 권위를 바로 세우고 백성들을 하나로 묶어 죽기살기로 싸웠다면 한일합병의 굴욕을 대한민국의 역사에 남겼겠습니까? 조선이 망한 것은 외침(外侵)에 앞서 지도자의 무능과 무기력, 무전략 때문에 자체 붕괴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의 상황은 문대통령 잘못에서 비롯되고 대통령의 책임이 그만큼 중요하기에 문대통령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자 기대하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설교는 이번에 서초동 촛불집회, 광화문 태극기집회를 보고 선택된 본문이 아닙니다. 벌써 준비가 되었고 당시의 내용은 3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교회의 자화상에 관한 말씀입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동역하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그 자신감을 강조하려 했는데 설교를 준비하면서 성령이 자꾸 다른 곳으로 설교를 만들어 갔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앉은뱅이 형상입니다. 세계 각국은 날아가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앉은뱅이가 되어 침체 상태입니다. 경기보고서들, 북한 문제, 열강과의 문제들이 앉은뱅이처럼 무기력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도자들은 앉은뱅이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워 줄 생각들은 하지 않고 오며가며 손가락질을 하고 누구 탓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못난 지도자들의 줄세우기에 편승하여 한쪽 편에 서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에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이 필요합니다. 은혜의 눈! 은혜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기도하고 중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대한민국아 일어날찌어다! 선언하는 예수의 자화상을 가진 두 명의 베드로와 요한 은혜파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느 한 쪽을 지지하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은혜 밖은 증오심입니다. 증오심으로는 앉은뱅이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울수가 없습니다! 은혜와 긍휼의 눈으로 자꾸 보다보면 어떻게 처신해야하는가, 판단이 설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이라면 그 길에서 세상을 중보하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 늘빛교회의 자세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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