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신앙으로 바로 믿고 바로 살자(1)
신명기 27장 24~26절
서론
우리교회 사역주제를 “아멘 신앙으로 바로 믿고 바로 살자”로 정했습니다.
성도님들 모두 아멘 신앙으로 잘 믿고 잘 사는 한 해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으로 잘 믿고 잘 살려면 아멘(Amen)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주일학생이 교사에게 “아멘이 뭐예요?” 하고 물었습니다. 교사의 대답, “그건 기도가 끝났다는 신호야!” 꼭 틀린 말도 아닙니다. 모든 기도는 아멘!으로 마감하고 눈을 뜹니다. 그러나 아멘은 기도가 끝났음을 나타내는 단어가 아닙니다.
‘아멘’은 성경의 고유한 언어이자 기독교인이 신앙을 고백하는 능력의 언어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아멘’은 ‘그렇게 될지어다’는 뜻의 감탄사로, 다른 사람의 메시지나 명령에 동의할 때(신 27:15-26; 왕상 1:36), 맹세나 서약(왕상 1:36)에 사용되었습니다. 시편을 낭독한 후 그 말씀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찬양 끝에, 혹은 신앙고백을 끝맺을 때 사용했습니다(시 41:13; 72:19).
유대인 회당에서는 예배 때 기도인도자가 소망을 말하거나 찬양대가 ‘하나님은 복되다~’고 노래하면 회중이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대상 16:36; 느 8:6). 우리와 비슷하게 사용됩니다.
이런 해설을 중심으로 아멘신앙을 생각해 봅니다.
먼저, 아멘의 추임새 역할입니다. 아멘은 설교에서 네! 알겠습니다! 믿습니다! 라는 고백과 함께 설교자와 청중 사이에 일종의 맞장구 역할을 합니다.
24절, 이웃을 암살한 자는 저주를 받을 것임이요⋯ 아멘 할지니라
25절, ⋯뇌물을⋯ 아멘 할지니라, 26절, ⋯저주를 받을 것임이요⋯ 아멘 할지니라
아멘아멘~ 두 번을 연속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편 41:1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아멘”
시편 72:19,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아멘”
시편 89:52,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아멘”
아멘아멘은 옳습니다. 옳고요, 맞습니다 맞고요! 이건 동의, 공감이면서 응원, 추임새 역할을 합니다. 추임새를 넣는 말 중에는 아멘!과 비슷한 아먼!도 있습니다.
추임새는 ‘위로 끌어 올리다’라는 뜻의 ‘추어주다’(추켜주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얼씨구”, “얼씨구야”, “얼쑤” “좋다”, “잘한다”, “그러지⋯”등이 응원가로 쌍방의 맞장구입니다.
특히 판소리는 소리꾼과 청중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교감이 분위기를 좌우합니다. 소리꾼이 창(唱)을 하면 옆에 있는 고수(鼓手)가 북과 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흥과 진행을 돕습니다. 청중들도 자기감정을 추임새라는 수단을 통해 표출하고, 동의합니다. 이게 소리꾼(창자)의 흥을 돋우며 소리판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까 소리꾼에게 고수는 굉장히 중요한 조연입니다.
설교는 일종의 선포입니다. 일방성을 띕니다. 그러나 설교에도 중간 중간에 아멘아멘!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라는 추임새적인 아멘~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저는 설교가 물흐르듯 흐름을 원하기에 아멘! 추임새를 넣을 기회를 제대로 제공 못합니다. 아멘!을 적당하게 유도하는 설교를 들으면 재미가 있고 흥겹습니다. 아멘을 너무 자주 유도해도 설교 집중에 방해가 되지만 적당한 추임새는 설교자에게 힘을 실어 주고 청중들로 하여금 설교자와 하나가 되게 합니다.
설교에만 아멘! 추임새가 필요합니까? 가족이나 직장 동료, 이웃에게도 배려하고 격려하며 치켜세워주는 추임새가 필요합니다. 서로의 삶에 응원하고 격려하고 맞장구를 쳐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그랬어? 잘 했네! 너무 좋네! 이런 추임새! 이런 아멘신앙이 체질화 되어야 합니다. 안 좋은 일에 추임새를 넣고 맞장구를 치면 교회는 이미지가 구겨지고 그 사람 자신은 마음이 삐딱하기에 구원의 즐거움도 자원해서 일을 하는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밝아지면서 부정적인 말들이 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건강한 교회입니다.
기러기들은 V자대형으로 하늘을 날면서 계속 소리 지릅니다. 울음소리도 아니고 앞선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소리도 아닙니다. 그들은 소리를 통해 자기 건재와 위치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나 여기 있다! 부지런히 날자! 힘내라, 거의 다 왔다!”
“내 걱정하지 말고 앞장서서 열심히 선도해라!”
서로를 향해 격려하는 추임새이자 아멘~입니다. 먼 길을 날아가면서도 동료들을 아끼고 뒤쳐지는 자들을 격려하는 따뜻한 배려들이 서로 간에 멋진 추임새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격려하는 소리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더 힘내자! 수고했다! 찬송이 좋다! 이런 추임새의 격려가 많아야 우리 교회가 건강하고 대한민국이 건강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아멘!
성경을 보면, 아멘은 ‘그렇다’는 히브리어 ‘아만’에서 파송된 단어입니다. ‘아만’의 뜻은 “동의합니다!” “지금 하시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지금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아멘에서 앞에서 말한 추임새 역할은 양념이고 사실은 ‘그렇다’, ‘그렇게 될 것이다’, 라는 ‘동의’를 말합니다. 아멘~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말씀을 믿습니다!’ 라는 신앙적 기대감의 표시입니다. 또한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결단의 선포입니다.
아브라함은 집을 떠나 인도하시는 땅에서 국가와 민족을 세우라는 부르심에 알겠습니다~! 아멘! 합니다. 아들 이삭을 바치라 했을 때도 아멘! 합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아멘신앙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 할 때 생뚱맞은 명령이었지만 아멘! 했습니다. 온 가족이 아멘! 하는 순종의 신앙을 보였습니다. 아멘신앙이 노아가정을 살렸고 세계를 살린 것입니다.
아멘은 네! 하는 신앙입니다. 네! 하는 신앙으로 그들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도 그리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할 때 아픔과 고통을 동반합니다. 큰 시련을 당하게 되었을 때, 내게 안 좋은 상황에서도 하나님! 알았습니다! 그렇게 할께요! 그런 동의가 바로 아멘 신앙입니다. 아멘신앙은 하나님 절대의존 신앙입니다.
아론대제사장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 분향하는 제사의식을 주관하다 불경해서 그 자리에서 즉사합니다. 그 죽음에 대해 모세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고 그 거룩한 영광의 수호를 위해 나답과 아비후가 죽었다고 말했을 때 아론은 잠잠합니다(레10:1~3). 그게 아멘입니다. 아프고 슬프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하나님! 알겠습니다! 하는 것이 아멘신앙입니다.
모세. 신 광야 가데스에서 백성들 앞에 분노를 터트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문제 삼아 너는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지 못했으니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했을 때 모세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민27:12~17) 하나님의 처사가 너무 야속하고 쇼크~ 상태가 올 일이지만 모세에게는 아멘!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잠잠함으로 수용했습니다.
욥. 엄청난 인생의 고난과 시련가운데서도, 특히 10명 자녀들이 몰사했을 때조차 “주신 이도 여호와시여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라는 고백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항상 옳습니다”라는 바로, 그 아멘신앙입니다.
마리아. 동정녀의 몸으로 잉태사실을 알았을 때 그건 매타작감이고 처형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구세주를 보내는 은총의 통로로 자신이 선택받았음을 알게 되었을 때 “주여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1:38) 할 때의 그 고백이 아멘신앙입니다.
아멘신앙은 이렇게 아픔과 고통이 있는 고백입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거룩한 신앙고백이 바로 아멘신앙입니다.
<페이버>. 페이버(favour)는 ‘호의’ ‘시혜’라는 뜻입니다. 베스트셀러 로 유명해진 미국 팀하스건축설계회사 하형록 회장의 두 번째 책입니다. 보다 더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하형록 회장은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사람으로 29세에 일류건축회사의 중역이 됩니다. 그러다 32세에 심실빈맥증의 발병으로 쓰러지면서 심장치료를 받다가 결국에는 이식수술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지경에 처합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5개월 째 몸에 맞는 심장을 기다립니다. 그때 나이는 34세. 설령 심장이 생겨도 절반은 감염이나 합병증으로 사망하고 성공해도 10년입니다. 그 심정을 하회장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게 허락된 생명의 불빛은 항상 위태롭게 흔들렸고 ‘언제 멈출지 모르는 예측불가능한’ 심장을 가진 나는 살아있으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몸에 꼭 맞는 심장이 나타납니다. 주치의가 그럽니다.
“당신에게 꼭 맞는 심장이다! 이렇게 딱 맞는 심장을 얻는 것도 드물다. 당신에게 축복이다. 옆방에는 사흘 전에 헬리콥터를 타고 온 젊은 여성이 심장을 찾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주치의 맨시니 박사는 하회장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심장이 당신에게 필요한 심장과 꼭 같습니다. 같은 0형에, 같은 압력, 같은 사이즈에요 당신은 얻었는데 그녀는 얻지 못했습니다!”
그는 5개월동안 어떤 서원을 했는가? 살려주시면 이웃을 위해 살겠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과 아픔을 나누고 그들의 고통에 참여하며 섬기며 살겠습니다. 그런 기도를 드려왔습니다. 그게 생각나는 거예요! 고쳐주면 이웃을 위해 살고 고쳐주지 않으면 너 자신만을 생각하겠다? 그동안 읽은 말씀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내면의 소리에 하회장은 밖으로 나가는 주치의 박사를 부릅니다.
“박사님! 심장의식수술을 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살 수 있습니까?”
“1주일입니다. 잘 견디면 한 달까지는 버틸 수 있습니다”
아내와 두 딸을 생각하면 정말 기가 막힐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고민을 하다 아멘~ 합니다!
“제 심장을 옆방의 여인에게 주십시오!”
온 병원이 난리가 났습니다. 부인과 두 딸이 울고불고⋯ 그래도 하형록은 아멘신앙으로 버팁니다. 심장의식을 받은 여인은 살았고, 하형록 회장은 1주일 후에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죽음과 삶을 오락가락, 다행히 한 달을 버티고 심장이 나타나 이식수술을 하고 살았습니다. 본인은 몰랐지만 술중독에 빠졌다가 죽은 사람의 심장으로 기계로 말하면 고물심장입니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주치의 아이젠 박사, 회당에 나가지 않는 그 유대인은 말합니다.
“나는 당신 때문에 내 인생에 해보지 않는 일을 했소! 팀하스라는 이 남자를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처음으로 기도했던 말이오!”
이게 아멘신앙입니다. 아멘신앙의 위력! 내 심장을 남에게 줄 수 있는 믿음의 행동! 오직 의술과 과학만을 믿고 살면서 한 번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던 이 무신론 유대인을 기도하게 만드는 능력이 바로 아멘신앙입니다. 우리의 아멘신앙이 위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능력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아멘고백은 풍성하되 아멘행동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멘은 감탄사이기도 합니다. 아~ 그렇군요! 아멘! 그렇군요! 아멘!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예수님께서 속히 재림하신다 하니, 아~ 그렇군요! 나는 그 사실을 믿습니다. 어서 오세요! 감탄사적인 기대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멘은 종종 할렐루야와 같이 짝을 이루어 등장합니다(계19:4, 시편 106:48). 기쁨으로 할렐루야를 이끌어 가는 아멘입니다!
하형록 회장은 남에게 심장을 주고 난 다음에 도무지 직장생활을 할 수가 없어 퇴직하고 아내와 2인 기업 작은 설계회사를 차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축복을 주시는지⋯ 하나님께서 별의별 사람들을 다 붙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회장은 하나님의 선물 ‘페이버’라 합니다. 하나님의 호의~ 이웃에게 호의를 베풀었더니 하나님께서 호의를 입게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6년쯤 지났을 때 심장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원래 그 심장은 막장심장으로 사실은 폐기처분직전이었답니다. 일단은 하회장의 목숨을 살려놓으라고 구할 수 있는 심장으로 이식해 놓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6년을 버티고 수명이 다 된 것입니다. 다행히 두 번째는 어렵지 않게 심장을 구해서 살았습니다. 그것도 10대 소년의 심장을~ 그러면서 주치의는 신신당부합니다.
“미국 법은 심장 이식을 2회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심장이 끝나면 끝입니다!”
다행히 16년을 버티고 심장은 수명을 다했습니다. 24년을 덤으로 살았으면 잘 살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렇습니까? 심란합니다.
그런데, 주치의가 찾아와 수술하자 합니다. 2회로 제한하고 있는데 어떻게 수술이 되느냐?
“당신은 원래 버려진 심장으로 이식을 받았다! 두 번째 받은 것만이 진짜다! 이런 경우, 법이 바뀌어서 당신은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할렐루야 아멘!입니다. 이런 때 하는 감동언어 감사언어가 아멘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남의 간증을 들으면서 아멘! 그랬었군요! 대단하십니다! 잘 되었습니다! 아멘! 아멘! 이렇게 화답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아멘은 자물쇠입니다. 마치 어미제비가 먹을 것을 물어오면 새끼제비들이 엄마가 전해주는 음식물을 얼른 입에 삼키며 입을 꼭 다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자마자 얼른 내 것으로 만들어 내는 접착제가 아멘이요! 아멘신앙입니다. 그러기에 설교를 들을 때 설교에 욕심이 있어야 하고 몰입도를 높여야 합니다.
저 말씀은 내 말씀이여! 아멘! 저 축복은 내 축복이여! 아멘! 저 간증은 내 간증이요 아멘! 이런 아멘신앙이 남의 축복이 내 축복이 되고 남의 승리간증이 내 간증이 될 줄로 믿습니다.
결론
성경의 마지막은 아멘으로 끝납니다!
요한계시록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아멘의 단어로 성경을 닫았다는 것은 성경은 아멘 책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천지창조로부터 모든 사실들, 구원을 행한 하나님의 섭리와 은헤, 십자가ㄹ의 보혈을 통한 죄사함과 은총! 이 모든 것들을 이성으로 판단하지 말고 아멘! 어린아이와 같이 믿습니다! 아멘! 하는 신앙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고 성경의 모든 능력들을 끌어다가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멘은 하나님께서 주신 큰 선물이요 보물입니다! 아멘보물을 대할 때는 겉으로 표현하든 마음속으로 다짐하든 성급하거나 별 생각없이 가볍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게 있고 확신있게 해야 합니다. 신앙을 고백하고 내 결심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금년 한 해! 아멘신앙이 풍년들기를 기원합니다! 아멘을 많이해서 아멘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우리 심령이 물댄동산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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