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절에 했던 설교입니다]
매복(埋伏)의 힘
여호수아 8:1~9
서론
(흔한 이야기이지만) 외딴 섬에 착한 등대지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 달에 한번 기름을 공급받아 등대에 불을 밝혔습니다. 그게 등대지기에게 주어진 사명이었습니다. 몇 안 되는 섬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며 기름을 요청하면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남자는 수레바퀴에 기름을 발라야 한다며 얻어갔습니다. 호롱불을 밝히는 기름을 달라는 요청도 차마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모두들 등대지기가 섬사람들을 위해 선한 일을 한다고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기름이 떨어져 등대에 불을 밝힐 수 없는 지경에 처했습니다. 배들이 해변으로 들어오다 등대 불빛이 없어 난파되고 침몰했습니다. 등대지기는 고발되었고 재판을 받았습니다. 등대지기는 재판정에서 자기가 그동안 선한 일을 했다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섬사람들도 등대지기의 선행을 기록한 탄원서를 냈습니다. 그러자 판사의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당신은 한 가지 목적으로 기름을 받았소. 등대를 밝히기 위한 오직 한 가지 목적 말이오!”
요즘 예배당이 문을 닫고 공예배가 중단된 상황에 저는 수없이 교회의 존재이유를 생각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의 역습 앞에 한국교회는 136년 역사에 다수 교회들은 예배문을 닫았고 소수의 교회는 예배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언론들이 얼마나 ‘마녀사냥’식의 예배당 예배를 공격하는지, 교회들조차 예배드리는 교회를 비난합니다.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는 중앙일보에 “교회 예배는 세상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는 시론을 썼습니다. 이게 요즘 대세입니다.
우리가 신학교에서 배우고 지금까지 지켰던 예배론은,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신학자들이, 한국교회의 다수가 “예배는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예배모임이 국민 건강에 위험이 된다면 과감히 예배를 중단해야 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교회가 국민건강에 위협이 되었는지, 정확한 팩트는 아닙니다. 교회 나온 분들은 교회가 방역에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 알 것입니다.
주일예배를 고수하는 입장에서, 오늘도 예배드릴 수 있음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도 여러분들에게는 참 미안합니다. 예배를 잠시 포기하면 간단할 것을 왜 이러시나, 주변에서 예배드리는 교회의 신자라 조롱당하는 여러분의 처지를 알기에 마음이 곤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회적 비판을 견디어내지 못하면 이게 하나의 선례(先例)를 남기게 됩니다.
앞으로 주일예배를 중단해야 할 이유는 계속 나옵니다. 연례행사처럼 닥쳐올 전염병, 한반도에 닥쳐올 지진의 위협, 테러의 위협… 이런 등등의 위협 앞에서 교인들의 안전과 국민들의 건강보호라는 명목으로 너무 쉽게 예배부터 중단해 버리는 일들이 나올까봐 그게 걱정입니다. 첫 중단이 힘들지 두 번 세 번부터는 자연스럽게 예배를 포기합니다. 특히 믿음이 없는 다음세대에 예배 중단은 주일성수를 바닥부터 흔들어 버리는 영적 쓰나미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조직교회, 유형교회들을 부정하면서 영상예배로만 존재하는 교회들이 나오고 이런 유령교회에서 온갖 불법 헌금, 탈선, 재정 횡령들로 한국교회가 오명을 씁니다. 그런 앞날이 뻔히 보이기에 지금 쉽게 가는 길보다는 한국교회를 지켜내려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많은 교회들이 주일예배를 영상예배로, 가정예배로 대체한 상황에서 주일예배를 고수했던 어려운 6주를 보내면서 저를 견디게 하는 단어 하나가 있었으니 매복입니다. 매복의 힘으로 지난 6주간을 버티어냈습니다. 매복은 군대 용어입니다.
군대의 공격전술 중에는 기습작전과 매복 작전이 있습니다.
기습공격은 소규모로 구성된 병사들이 은폐물을 이용하거나 밤중에 몰래 적진에 침투해 적을 섬멸하는 것입니다.
매복 공격은 적이 지나갈 길목에 몸을 숨겼다가 불시에 공격하는 방식입니다. 정찰 수단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는 전투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작전입니다.
본문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에서 승전고를 올렸지만 아이 성(城)에서는 대패하여 당황과 두려움에 처한 상황을 다룹니다. 가나안 관문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이었습니다. 그러나 손끝하나 상하지 않고 함락했습니다. 모세가 걸출한 리더였기에 그 바통을 이어받은 여호수아 리더십은 검증이 안 된 상태였기에 전투가 대승으로 끝나자 군사들의 사기는 솟아올랐습니다.
이게 문제였습니다. 너무 승리에 취해 방심하고 만 것입니다. 두 번째 공략할 목표가 아이 성인데 작은 성입니다. 승리에 취해 있는 그들은 작은 성이라 깔봐서 이렇게 말합니다.
7:3,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그들은 소수이니…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여기에 기도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전투를 맡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없는 지도자가 기도가 없는 삼천 명을 보냈다가 패하게 됩니다.
5절,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
물 같은 마음으로 무슨 전투를 합니까? 8장으로 갑니다. 1절,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움에 떠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전략을 명령합니다. 매복 전략입니다.
2절 복병을 둘지니라. 4절 매복하되… 7절 매복한 곳에서…
9절 매복할 곳으로… 매복하였고… 12절, 매복시키니… 여호수아는 매복작전으로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매복 작전의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부대의 효과적인 위장(僞裝)을 위한 주변 가리개가 필요합니다.
-시야(視野)가 넓어야 합니다.
-공격하기에 지리적 환경이 필요합니다.
-낮은 자세로 바짝 엎드려 있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 인내입니다. 적들이 온다고 공격하면 안 됩니다. 조마조마하지만 신호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얼마나 잘 인내하느냐, 이것만 지키면 작은 병사로 많은 적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지휘관의 공격신호가 나면 오래 기다리던 매복은 기습작전으로 전환됩니다.
여호수아가 18절,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는 신호를 보이자,
19절, …복병이 그들의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21절, 그 복병이 성읍을 점령함과…
22절 복병도 성읍에서 나와… 그들을 치매… 두려움에 떨던 매복자들이 복병이 됩니다.
매복은 엎드림이고 복병은 전투입니다. 매복은 기다림이고 복병은 행동입니다. 매복자는 승리를 고대하는 자이고 복병은 승리를 만들어 가는 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복을 잘 했기에 23절, 아이 왕을 사로잡고 24절, 아이성을 함락합니다. 매복 작전이 승리를 안겨주었습니다. 매복이 어둔 데서 납작 엎드렸다고 굴복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건 힘을 숨겨두는 것입니다. 적은 교만하게 만들고 자신들은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래요! 사람의 힘은 드러나지 않는 매복의 힘에 있습니다. 나무의 생명도 드러나지 않는 뿌리에 있고 빙산의 90%는 물속에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힘이 진짜 내 힘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너무 많이 드러냈습니다. 내면의 드러내지 않은 힘을 키운 것이 아니라 힘들을 과시하는데 급급했습니다. 매복해야 할 때 매복하지 않고 경쟁하듯이 자신들을 과시했습니다. 그게 바로 예배당 건축이고 숫자 불리기였습니다. 숨겨진 내면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습니다. 숨겨진 힘을 키우지 못한 결과는, 너무 일찍 주일예배 중단이라는 패를 보여 버린 것입니다. 국회의원 3분의 1이 교인이라 했지만 행정명령이라는 공권력 행사에 아무도 나서서 말 한 마디 해주지 못했습니다. 숨겨진 힘을 키우지 못한 한국교회의 비극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왕실의 재물을 보관하던 내탕고(內帑庫)의 보화를 바벨론 사신에게 자랑하고 과시했습니다. 숨겨야 할 것을 대놓고 자랑한 것입니다. 자랑한 그 모든 것들은 결국 바벨론으로 옮겨졌습니다. 자랑하면 빼앗깁니다. 그걸 숨겨두고 매복하면 열배의 힘을 발휘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숨겨진 힘, 매복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은 자산(資産)들을 늘려야 합니다.
매복을 통해 얻는 힘은 무엇일까요?
-매복하고 있으면 상황이 잘 보입니다. 밝은 성에서 횃불을 들고 나온 군사들보다 어둔 데서 눈을 익힌 사람들이 주변 환경을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니 상대방은 우왕좌왕하고 복졍들은 처음부터 적을 주시했기에 당연히 이깁니다.
-매복은 단합된 힘을 보입니다. 지휘관의 명을 어기면 금방 들통납니다. 그러니 100% 지휘관을 주시하고 명령에 따릅니다. 그래서 매목은 명령체계를 일사분란하고 힘을 냅니다.
-매복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매목은 100의 하나라도 잘못되면 들통나고 끝장납니다. 그러기에 세상 말로는 운(運)이 따라야 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전폭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매복작전에는 더욱 기도하게 되고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새로워집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가 예배 중단이라는 위기에서, 가정에서 키워내야 할 힘입니다. 가정에 그냥 숨지 말고, 가정에서 그냥 놀지 말고 매복의 힘을 키우는 시간들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럴 때 강력한 복병으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결론
예배가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어려운 6주를 보내면서 마음이 곤할 때마다 이리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언제 한 번 예수님 때문에 감옥에 간 적 있었나, 교회에 다닌다고 우리가 언제 제대로 핍박 한 번 받아본 적이 있나, 하면서 견디었습니다. 어느 장로님이 문자를 주셨습니다.
<…목사님! 지금 우리가 전투에서는 지고 있는가 모르겠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싸움에서 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기 전에 2월 마지막 주일부터 앗, 뜨거워라~ 서둘러 예배부터 중단한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3월에 들어서면서 절반의 대형교회들이 공(公)예배를 포기하고 셋째주일부터는 연세중앙교회를 제외한 모든 대형교회들이 영상예배로 대체했습니다. 연세중앙교회는 아주 몹쓸 교회로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정부가, 국민들이 교회가 예배를 포기했다고 국민건강을 위해 희생했다 칭찬합니까? 80%의 희생은 외면하고 20%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을 빌미로 한국교회 전체를 희생양으로 삼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배를 포기하고 얻은 결과물입니까?
이제 한국교회에 7년 대흉년이 불어 닥칠 것입니다. 교회 교세가 급속도로 약화될 것입니다. 주일학교가 완전히 무너질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닙니다. 매복할 때입니다. 매복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힘을 키울 때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배의 자리를 지키며 매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납작 엎드린 채 기다리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단창으로 공격신호를 주었듯이 우리에게도 공격 명령을 내릴 때가 옵니다. 그때 우리는 교회만이 갖고 있는 힘! 세상은 줄 수 없는 힘! 부활의 힘! 십자가의 대속의 힘! 용서의 힘! 화목의 힘! 관용의 힘으로 일어나면 여리고성을 정복하고 아이성을 정복하고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투에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이길 수 있는 한국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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