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무엇인가?
야고보서 4장 13-17절
서론
《야고보서》는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도 행함이 없었던 유대 출신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70년 이후, 유대인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게되었습니다. 이들이 소위"디아스포라"입니다.
타국살이를 하게 된 유대인들은 어디에서건 경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신분은 차별되었고 항상 경계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제한이 많았습니다. 특히 권력 주변으로의 접근은 철저히 차단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장사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당시는 모든 국가, 모든 도시가 건설기였습니다. 한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일꾼들이 쉽게 모집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기존의 도시에서보다 새로운 도시 건설에 참여함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세우는 것이 효과적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자원해서 도시 건설에 참여했고 시민권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도시의 건설자들은 유대인들을 환영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외서 사는 곳에는 돈과 무역이 같이 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새 도시가 건설된다는 발표가 나면 누구보다도 먼저 지도를 펼쳐놓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13절의 말씀을 해석하면 이런 이야기가 됩니다.
"여기는 무역을 잘할 수 있는 새로운 도시 같다. 그 곳으로 가자. 그리고 도시 건설자와 한 패가 되어 1,2년 머물면서 장사하여 재물을 벌도록 하자. 엄청난 재물을 벌게 될 것이다. 부자가 되어 돌아와서 떵떵거리며 살자. 신앙? 그것은 돈 벌고 나서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세월이 좀 먹냐?"
1. 인간은 그릇된 자기 확신에 차 있을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런 계획과 자랑을 16절 말씀,'허탄한 자랑'이라고 합니다.
허탄한 자랑이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과장하여 말하는 자랑입니다.
못할 것을 할 것 같이 부리는 공연한 허세를 가리킵니다.
야고보는 이런 자랑을 악하다고 합니다. 허탄한 자랑이 왜 악한 자랑이 될까요?
야고보의 대답은, 어떤 사람이라도 미래에 대해서 지속적이며 확신적인 계획을 수립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누구라도 자기 인생의 앞날을 한치 앞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계획은 가능하지만 그것을 처리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수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하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방관자가 되게 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장래가 불확실하기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깁니다. 더욱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며 성숙된 신앙자가 됩니다. 그러나 미래가 자기의 손에 있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은 그릇된 확신에 차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자기중심의 사람들이 계속 하나님을 배제시킨 채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건설한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허탄한 자랑의 죄"는"오만불손의 죄"입니다.'오만불손'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떠돌아다니는 돌팔이 의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돌팔이 의사들은 떠버리들입니다. 병이 낫지 않았는데도 나았다고 자랑하며 그가 하지 않은 것도 자기가 한 것으로 자랑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할 수도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허풍쟁이들입니다. 허탄한 자랑이야말로 허풍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돌팔이 의사들입니다.
허탄한 자랑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치명적인 상해를 끼칩니다. 아무런 준비성이 없이 죽음을 맞도록 하는 악한 길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실력과 계획을 의지하다가 하나님 없는 일생으로 마치게 하기 때문입니다. 허탄한 자랑은 선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듭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받을 것은 심판밖에 없으니 그 동안의 그의 자랑은 얼마나 허탄한 자랑이겠는가!
2. 인간의 생명은 안개와 같습니다.
앞일에 대해서 허풍을 치는 사람들의 자랑이 왜 허탄한 자랑으로 끝나게 되는가? 인생 자체가 안개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14절).
"안개"는"연기"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로 인생의 무상성(無常性)을 가리킵니다. 야고보 선생이"안개"라는 비유를 통해 말해주고자 했던 인간의 무상성은 어떤 것일까요?
인생은 짧고 덧없다는 것입니다. 안개가 자욱할 것 같지만 하루 종일 계속될 것 같지만 태양이 떠오르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인 지도 모르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자기를 위해 계획하고 하나님 없이 자기 중심의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사실을 예화(例話)로 전하십니다(누가복음 12:16-21). 부자가 많은 소출을 얻어서 창고를 짓고 그 안에 잔득 쌓아놓았습니다. 그는 자기 영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부자가 자신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허탄한 자랑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생이 덧없이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라면 다 쓰지도 못할 재물을 쌓아두는 일은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인생이 안개라는 사실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일에 짧은 인생을 바치도록 결심하게 만들어야 지혜 있는 처신입니다. 안개와 같은 인생에 불과한 우리는 앞날을 전혀 모릅니다. 하나님만이 내일을 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장래 계획은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권합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어늘"(15절).
자기에게 중심을 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그들은 인생이 안개와 같은 것임을 모릅니다. 자기의 미래가 무한정 보장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것은 심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감쪽같이 속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도리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의 뜻이면 우리가…"'도리어'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전자가 자기의 뜻대로 하려는 데 반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의 뜻대로 합니다, 전자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바라보지만 후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합니다.
전자의 계획이 고정적임에 대하여 후자의 뜻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주의 뜻이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이어야 하고 인생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의존하여 자신의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진실한 마음을 가진 인간의 특징입니다.
신앙과 불신앙의 경계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신앙자란 무조건 현세를 도피하는 것도 숙명적인 소극성에 사는 것도 아닙니다. 최대한 노력을 현세에 쏟으나 그것이 주님의 뜻에 지배를 받는데 있습니다.
인간은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안개와 같은 인생을 자랑한다는 것은 허탄한 자랑이요 무익한 일입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것을 자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부당하게 자기를 높이고 마땅히 높여야 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다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3. 지금 선을 행하라
야고보 선생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선(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참된 선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것 저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헛된 자랑으로 자기 본위의 삶을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결정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거절하지 말고, 나중으로 미룰 것도 아니라 지금 그 일을 행해야 합니다.
선행의 길은 밝혀졌습니다. 그것을 알게되었으면서도 뒤로 미루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것은 죄(罪)입니다. 야고보는 16절에서 허탄한 자랑은 악이라고 하였습니다. 17절에서는 죄라고 규정합니다.
공자는 "의를 보고 행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것이라"(見義不爲無勇地)하였습니다. 야고보와 일맥 상통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그 의미는 다릅니다. 공자가 말하고 있는 의(義)는 인간적인 의입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뜻이 의(義)입니다. 공자의 가르침은 도덕적 견지에서의 말이고 야고보는 종교적 견지에서 하는 말입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안개와 같은 것이기에 언제 그 수명이 다할는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善)은 미루는 것이 아닙니다. 선을 알게되었을 때 지금 선한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이 안개와 같은 인생을 잘 관리하면서 사는 지혜로운 처신이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믿음의 삶입니다.
한 노신사가 이따금 뉴햄프셔의 어느 골동품 가게에 들려 고가구를 팔곤 했습니다. 하루는 그가 왔다 간 뒤 골동품 상인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저 분이 왔다 가면 기분이 참 좋아요. 이 얘기를 저 분에게꼭 해드리고 싶어요!."
"다음에 들르면 꼭 해드립시다."
여름이 되자 한 젊은 여성이 골동품 가게에 찾아와 자신이 노신사의 딸임을 밝혔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여주인이 남편과 나눈 이야기를 하자 졺은 여성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그 말을 직접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누군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눈을 감았다면 훨씬 더 행복했을 텐데요."
훗날 이 골동품 가게 부부는 말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받으면 그 자리서 본인에게 그것을 말해 줬지요. 다시는 그럴 기회가 없을는지 모르니까요."
결론
장로교회의 중심교리는 예정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나의 모든 일생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것을 그 분에게 의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애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하나님에게 있고 내 자녀들의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에게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앞날에 하나님의 가호가 있게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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