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돌문도 가둘 수 없었다!
마태복음 28장 1~6절
서론
오늘은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화란의 유명한 조직신학자 헤르만 바빙크는 “죽음의 순간에 위로를 주지 못하는 신학은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소망을 주지 못하는 종교는 소용이 없다, 는 것이지요. 오늘은 4월 4일.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라 한문 죽을 사(死)로 보면 예수님께서는 죽고 또 죽었지만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셨습니다. 죽음과 싸워내신 예수님의 구속사역과 하나님의 언약! 그걸 오늘 보겠습니다.
앞 장 66절에,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막기 위해, 아니면 시신의 도굴 방지를 위해, 제자들이 쳐들어와서 시체를 훔쳐갈까봐 삼중, 사중으로 안전장치를 합니다.
‘그들이…’. 62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당시 최고의 공권력입니다.
‘경비병과…’. 성전 경비대(바티칸의 경비병들과 같은 개념입니다.)
‘돌을…’. 유대인들은 들짐승이 냄새를 맡고 시신을 훼손하거나 보석이나 귀중품을 노리는 도굴꾼들 때문에 보통 사람의 키만한 돌, 폭이 약 2m 정도가 되는 엄청 큰 돌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그 돌이 심히 크더라”(16:4)고 합니다. 이 무덤 입구에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 무덤에는 아무 보석도 없다>
<이 무덤을 파헤치는 자에게는 대대로 저주가 내릴 것이다>
‘인봉하고…’. 밧줄로 가로질러 묶었고 찰흙 같은 일종의 접착제를 돌문과 무덤 입구 사이에 발라 문이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누가 무덤 문을 연다거나 짐승이 돌을 굴려내는 일은 없습니다. 예수는 총독이 직접 지시를 내린 처형범이기에 무덤 문에 손을 댈 사람이 없습니다. 물샐틈없는 경비까지 세웠으니 공권력이 아니고서는 돌문을 열 자가 없습니다. 제자들은 살아있는 스승도 버리고 도망간 사람들인데 죽은 시신을 위해 목숨을 걸까요?
이제 예수님의 돌문은 예수님 개인에게는 그가 전한 교훈과 이적과 행위는 정말 진짜였는가, 아니면 쇼였는가? 가름이 됩니다. 인류에게는 영생의 길이 생기는가?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죽음을 이길 수 있는가? 결정이 납니다.
예수님께서 돌문을 열고 무덤에서 나오면 그는 진짜요 교훈은 물론 행적도 진실입니다. 죄의 문제 해결을 위해 죽으셨으니 그가 살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죽음의 숙제도 해결됩니다. 돌문을 열지 못하고 그곳에서 주저앉아버리면 예수는 종교이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부활은 예수님 개인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요 하나님의 문제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하면 부활을 말씀하신 하나님은 로마그리스신화의 신들처럼 거짓말도 하고 패하기도 하는 신입니다. 부활하지 못하면 애매한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님의 구속과 부활을 전제로 하늘나라에 가 있는데 부활이 없으면 원인이 무효이기에 천국 백성들의 입장이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무덤 앞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종교교권자들은 무덤을 단단히 닫으려 하고, 예수님은 안에서 무덤 문을 열려 하고 사탄은 무덤 문을 열지 못하게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육신을 살리시고 무덤 문을 열어 나오게 하려 하십니다.
사실 이런 대치된 상황은 인류 역사요 구속의 역사입니다.
인류는 창조 이래로 하나님과 사탄과의 줄다리기였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줄거리요 반복된 역사입니다.
에덴동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더 성장하고 더 완성품으로 나가기를 계획하셨습니다.
이것이 생명과입니다. 칼빈은 생명과를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성육신하기 이전의 성자를 통해 피조물의 특성을 벗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 길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게 조종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류가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막아버립니다. 인류는 그냥 피조물이 되고 마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영생이 없는 것이지요!
여자의 후손. 이에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창3:15)을 통하여 아담부부를 비롯해서 인류를 구속하신다고 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나오려면 자식을 낳아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을 낳고 아벨을 통해 여자의 후손이 출생하고 세상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사탄이 이걸 알고 가인으로 하여금 아벨을 돌로 쳐서 죽게 만듭니다. 사탄은 지금 천국에서 성육신하기 위해 준비 중인 성자 예수를 들어오지 못하게 혈통을 없애버리고 막아버리려 한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들어올 구멍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담 부부에게 셋을 낳도록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통해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려 하는데 아브라함을 믿음의 원조로 세웁니다.
그 혈통에서 ‘여자의 후손’ 메시아를 출생시키려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25년 가까이 자식이 없자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얻습니다. 이스마엘은 서자(庶子)입니다. 여종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은 ‘여자의 후손’이 될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될 때에 사라가 자식을 낳았습니다. 사라는 90세입니다. 연령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게 불가능한 일이 있느냐? ‘여자의 후손’을 세상에 들여보내 위해 하나님께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셨습니다.
-애굽에서의 사내 죽임. 사탄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갔을 때는 아예 히브리인 혈통을 죽여 멸족시키려 했습니다. 그래야 ‘여자의 후손’이 들어올 혈통이 사라지니까요! 바로 왕은 행정명령을 내리기를 히브리인들이 사내가 나면 죽이고 여자를 낳으면 살려두라! 했습니다. 민족 말살정책입니다. 이 끔찍한 일은 바로 왕이 내렸지만 배후에는 사탄이 역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세상에 들어오지 못하게 공작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산파를 통해 이스라엘을 살렸습니다. 민족을 보존하려는 것은 표면적이요 사실은 ‘여자의 후손’을 세상에 들여오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도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이번에는 헤롯왕을 동원합니다. 동방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두 살 미만의 사내아이들은 모두 살해하라고 합니다. 예수님 가족은 천사들의 지시로 애굽으로 피신해서 목숨을 구합니다. 이번에도 사탄이 패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할 때에도 사탄이 찾아와서 유혹합니다.
‘돌로 떡덩이를 만들게 하라! 그러면 회중들이 엄청 몰려올 것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천사들이 받쳐주면 그 광경에 청중들은 열광한다.’
‘나한데 절 한 번만 하면 세상의 모든 영광을 다 주겠다!’
어렵게 할 것없이 사탄과 손을 잡으면 모든 것을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손을 잡았다면 구속의 원인이 사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히 말씀으로 거절하셨습니다. 오직 주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그를 섬겨라! 사탄은 이번에도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다시 유혹합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 능력을 보여주라! 한쪽 강도가, 간수들이 자꾸 충동질을 합니다. 예수님은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외면을 받는 끔찍한 일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겟세마네동산의 기도를 통해 승리한 것입니다,
-마지막 한 판 승부가 남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사건입니다. 사탄은 교권자들을 동원해서 예수를 죽게 합니다. 예수님을 죽일 죄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바라바를 살려주면서까지 예수를 죽이려 합니다. 이것이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저들은 사탄의 꼭두각시가 된 것입니다.
-십자가와 무덤에서 마지막 대결입니다. 사탄은 아예 십자가 처형으로 죽게 합니다. 죄인의 대명사이기에 군중들에게 예수님의 인격과 생애에 흠집을 남기기 위함입니다. 로마총독의 힘을 빌려서 죽게 합니다. 공권력 앞에서 누구도 개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26장의 문구처럼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킵니다.
모든 상황은 완벽하게 사탄의 승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께서 살리시는 능력이 있음을 간과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간과하지 않더라도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죽었으니 죄인의 신분이고 그러기에 죄인을 살려줄 근거가 하나님에게 없다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 죄가 예수님 개인의 죄가 아니라 인류의 죄를 대속함이요 십자가에서 죽으면 살려준다는 ‘구속의 언약’이 성부와 성자 사이에 체결되어 있는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진짜임을 보여줍니다. 사기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은 진리요 옳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내가 진리라는 것’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라는 것’
‘천국이 있다는 것’ ‘심판과 상벌이 있다는 것’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은 사실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죄가 속죄를 받을 길이 열렸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내 죄를 대속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죽을 때 내 죄도 무덤으로 따라 내려갔고 부활하실 때, 뱀이 허물을 벗어두고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대속해 버린 죄를 무덤에 두고 의인으로 나오셨으며 그에 속한 모든 이들을 의인의 신분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에게도 부활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장(고전15장)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활은 우리에게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까? 그래서 기독교를 종교라 하지 않고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복음(福音)인 것입니다.
결론
창세 이래 오랜 동안 계속되어 왔던 하나님과 사탄의 투쟁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습니다. 지금도 투쟁은 계속 중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지고 있는 싸움을 계속하고 하나님은 이기신 싸움을 계속합니다. 뻔한 결과이지만 사탄은 인정하려 하지 않고 끝까지 맞장을 뜨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탄의 속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편이기에 지금 이기는 싸움 중입니다. 사방팔방이 우리 앞길을 막고 인생의 문제들이 우리를 막아버린다 해도 우리에게 부활의 예수 생명이 있기에 돌문을 열고 나갈 수 있습니다. 문제들이 우리를 삼켰다 해도 요나를 삼킨 물고기가 토해내듯이 상황과 환경은 우리를 토해낼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힘찬 기운이 돌기 때문입니다.
다윗처럼 인생의 위기를 만났다 해도, 코로나의 답답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시18:29)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활 생명 기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문제의 돌도! 상황의 돌도! 코로나의 돌도! 우리를 가두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일어나는 부활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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