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罪)의 기원과 형벌
창세기 3장 1~6절
서론
오늘은 왜 기독교가 생기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지난 시간에 행위언약에 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행위언약, 혹은 행위계약! 행위를 담보로 맺은 계약이기에 순종하면 영생을, 불순종 시에는 죽을 것이라는, 계약을 하나님과 인간 쌍방이 도장을 찍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첫 사람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는 대표원리라고 합니다.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여 계약을 맺엇기에 이 명령에 순종하면 그 후손은 저절로 아담에게 주시는 영생에 참여하고, 만약에 아담이 하나님의 계약을 파기하면 그 자손도 함께 형벌에 동참한다! 얼마나 좋은 계약입니까.
미켈란젤로의 스승 미란 돌라는 이런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아담이여! 그대는 짐승과도 같은 것으로 추락할 수도 있었고, 원한다면 신과 같은 높은 것으로 올림을 받을 수 있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래서 이런 대표원리에 아담은 좋다! 도장을 찍은 것입니다. 결과는 불순종으로 끝났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왜 따먹었을까요? 추론해 봅니다.
㉠ 사단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사단은 ‘간교’(창3:1)한 존재입니다. ‘간교’는 ‘영리하고 멋진’입니다. 천상에서 멋지고 영리한 천사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사단으로 둔갑하게 되었을 때 그의 영리는 사악함으로 떨어졌고 ‘멋진’ 모습은 유혹의 도구로 변해 하와를 유혹합니다.
“너도 나 같이 빛날 수 있다! 관리자로 만족하겠느냐? 창조주가 되고 싶지 않느냐? 태양과 달과 별을 만들고 통치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느냐? 지금의 삶으로 만족하겠느냐?”
뱀의 유혹은 여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고 자기도 세계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통치가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 하와는 계약의 엄중함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계약을 맺을 때 현장에 없었고(창조되기 전. 창 2:17, 20-22 참조)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엄중한 명령의 분위기를 잘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악과 따 먹고 하나님이 되어버리면 동등자가 될 텐데 형벌은 무슨 형벌? 설령 신이 되지 못해도 아무렴 이걸 먹는다고 에덴에서 추방하랴?’라는 가벼움이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입니다.
㉢ 아담이 전달을 제대로 못한 것 같습니다. 일종의 배달사고입니다. 하와의 말을 보세요.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창3:2,3)
하와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입니다. “만지지도 말라” 하나님께서는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창2:16, 17 참조). “죽을까 하노라”-하나님은 죽음에 대한 사실성을 강조했는데(창2:17)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 가능성으로 대체합니다.
지금도 사단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혹은 제시)해 주신 구원의 방법보다는 인간의 자아성찰을 통한 ‘하나님 되기’, 모든 인간은 신이다! 모든 인간 속에는 신의 성질이 있다. 그러기에 내 안에 있는 신의 자아를 깨닫고 계발하기만 하면 신이 될 수 있다! 이런 자력종교의 가르침은 인간의 가치를 상당히 높여주기에 매력적입니다.
사단은 하와를 유혹했던 방법으로 믿음이 약하고 성경교리에 어두운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성경 66권으로 모자라 성경 내용에 교리를 첨가하거나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들을 삭제해 버립니다. 그래서 바른 진리를 듣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니 믿음의 길에서 조심해야 합니다.
죄의 기원(유6절)
이제부터는 죄의 기원과 결과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초대교회에서 활동하던 영지주의(Gnostics):영혼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전제하에 죄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인간이 악한 물질과 접촉하는 즉시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리츌:인생의 무식에서부터 죄가 기원된다! “무식이 죄라!”는 말이 이런 경우일까요?
-진화론:짐승에게서 물려받은 성향과 충동과 정욕에서 죄가 시작되었다 합니다.
-철학자 칸트:근본적으로 악(惡)이 존재한다는 것은 시인했지만, 기원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죄의 기원이 인간 세상이 아닌 하늘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은 원래 선했기에(창1장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지상에서 죄가 시작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사 그룹은 미가엘 군단-루시퍼 군단-가브리엘 군단입니다. 이들이 하는 일을 우리나라 대통령의 주변 역할과 비교해보면, 미가엘은 일종의 수도사령부(?), 루시퍼는 경호실(?), 가브리엘은 비서실(?) 정도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당연히 제 추측입니다. 가볍게 들으면 됩니다. 이해를 돕다보니 이런 추측까지 하게 됩니다.
세 군단 중에 우위는 루시퍼 군단장입니다. 경호실장격으로 활약하다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려는 헛된 생각을 품게 됩니다. 피조물이라는 존재를 망각하고, 창조주의 자리에 앉으려는 반역의 죄를 범했고(벧후 2:4, 유6절) 군단 휘하의 천사들이 동조하면서 죄가 시작됩니다. 성경이 설명하는 죄의 기원은 거기까지입니다. 그 이상의 죄의 기원은 신학적 난제입니다.
‘선한 천사장이 왜 범죄 할 생각을 했는가?’
‘누구의 사주에 의해 교만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러면 죄의 기원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성경은 천사에게서 죄가 기원된다고만 밝힐 뿐, 더 이상의 언급은 없습니다. 성경이 침묵하는 것에는 우리도 침묵해야 합니다.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상상력을 발휘하다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성경이 가는 곳으로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멈추라!”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죄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 십자가에 박아버려야 합니다.
천상(天上)에서 시작된 죄는 인간 세상으로 이어집니다. 천국에서 추방당한 루시퍼는 지상에서 사탄이 되고,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인 인간을 파괴하고, 자기편에 끌어들이도록 시도했고,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인간 역시 하나님의 보좌를 넘보려다 죄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서 교만은 죄의 뿌리요, 열매요, 멸망의 아비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만과 겸손을 단순히 성격이나 인간관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죄에 대한 형벌
우선, 천사에게 형벌이 내렸습니다. 영광스러운 지위를 빼앗고, 하늘나라에서 추방합니다. 최고의 형벌입니다. 나중에는 지옥행이기 때문입니다. 지옥행은, ‘즉시’가 아니라 잠시 유예되었고, 유예 기간 지구에서 활동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영적 세계에서 추방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사단에게는 지옥 형벌입니다. 인간들보다 더 민감한 인격을 가졌을 테니까 말입니다.
인간들에게도 형벌이 내려졌습니다. 첫 번째 형벌은 하나님과의 교제 단절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러나 죄가 하나님과의 교제의 통로를 막아버리자 복과 은총은 단절되었고, 하나님의 형상도 거둬버렸습니다. 생물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두 번째 형벌은 인간성의 철저한 부패와 타락입니다. 참된 선이신 하나님에게서 끊어지자 악의 지배를 받게 되고, 마음은 만물보다 추악한 영역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17: 9)고 선언합니다.
모든 악행들-증오, 시기, 살인, 전쟁, 도둑질, 추행… 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음은 악의 발원지요 저장소입니다. 마음에 보관된 수많은 악들이 교육과 환경, 종교심으로 뚜껑을 잘 덮었다가 억제 장치가 무너지면 추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사회의 모순과 부정을 인간의 추악한 본성에서 찾지 않고 사회제도의 개선을 통해 향상시켜 나가려는 것은 지엽적인 해결방법에 불과합니다.
세 번째 형벌은 사망입니다.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단절이 사망입니다. 전선이 끊어지면 찬란한 전등 불빛이 꺼지듯 하나님께로부터 단절은 사망을 의미합니다. 세 종류의 사망입니다.
-육체적 사망(창3:19).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선고되었습니다. 아담은 그 후에도 오래 살다 930세에 죽었지만 첫 사람에게서 육체의 사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인류의 대표였기에 모든 인간은 죽어야 하는 운명이 되었고 죽음은 최고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영적 사망(창3:8). 영이신 하나님과의 분리는 영적 죽음이라는 즉시 사망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나면서 허물과 죄가운데서 태어나고(엡2:1) 죽은 영으로 태어납니다. 성령으로 거듭날 때 하나님의 생명으로 위에서, 하늘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요3:3).
-영원한 사망(계20:14). 영생과 반대되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이는 지옥에서 영육이 함께 당하는 고통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심적 절망과 고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육신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을 죽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마10:28).
네 번째 형벌은 자연이 저주를 받게 된 사실입니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3:17, 18). 인간 범죄로 말미암아 자연도 저주를 받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므로 인간과는 사납게 대립합니다. 식물은 독풀과 날카로운 가시로 인간을 대적하고 동물은 포악해지고, 난폭해졌습니다. 인간 세상은 살기가 어려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죄의 결과입니다.
이처럼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고, 추방당합니다. 에덴에서의 내쫓김은 단순히 생활터전의 이동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함께 누리는 영화로운 ‘상태’로부터의 추방입니다. 생명과를 먹지 못하므로 병들고, 늙어가고, 죽어야 하는 사망의 고통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지자 영광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은 수고와 슬픔뿐이었습니다.
인간의 소망
이제 에덴을 떠난 인간들에게 소망이 있다면 생명과를 먹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에덴에서의 기쁨과 행복을 되찾는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회복 없이는 아무리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인간 세상의 고통과 질병과 불안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동산이었습니다(겔28:13).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중심이 되시는 장소였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한 장소라기보다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가까이 하도록 하기 위한 성소(聖所)였습니다(박윤선 주석).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지속적으로 나누고 갈수록 더 깊은 교제를 나누도록 선물로 주신 것이 생명나무를 먹도록 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에덴에서 추방되므로 생명나무를 따먹을 기회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을 누릴 수 없으며, 영생을 얻을 수 없게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생명나무는 처음부터 자체에 어떤 불사의 효능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징성을 띄고 있었을 뿐입니다. 칼빈과 어거스틴은, 생명나무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자를 통해 우주를 창조했듯이(요1: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을 인간들과 공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면 천국에 갈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아담이 생명과를 따먹어야만 영생의 길로 나갈 수 있듯이 인간의 영생 길은 오직 한 길, 생명과이신 예수님을 먹는(영접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이 길을 제시해 주는 책이 성경이고 성경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는 유일한 ‘진리의 도(道)’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래서 우리 스스로는 기독교를 ‘종교’라 써놓고 ‘복음’이라고 읽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상이 뭐라고 하든지 우리가 받은 귀한 복음을 놓아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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