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만드는 청소년
열왕기하 7:3~10
오래 전에, 북한 잠수정이 동해 앞 바다에 들어왔다가 꽁치그물에 걸리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70톤급 잠수정이라면 명태나 대구를 잡는 큰 그물에 걸려도 그럴 판인데 손바닥만한 꽁치그물에 걸려 잠수정이 오도가도 못했다는 것은 참 어이없는 일입니다.
본문은, 꽁치그물과 같은 작은 것으로 70톤 짜리 잠수정을 포박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약한 것들을 들어 강한 것들을 물리치시고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봅니다.
1. 하나님은 강한 자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람은 항상 적대적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아람의 벤하닷 왕이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습니다. 성(城)은 고립되고 물자는 딸려서 결국은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안팎으로 국가적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누가 이스라엘을 구원할까요? 물론 강한 자들이 국가를 구할 것입니다. 강한 자는 왕과 장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위기 시대에 사람들은 왕과 세력을 가진 이들에게 기대합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성의 위기 속에 왕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성안의 여인들이 도와달라는 요청에 왕은 6장 27절, "내가 무엇으로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즙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고 말합니다. 왕은 여인들의 말을 듣고 옷을 찢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왕을 가까이 모시는 장관조차 7장 2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면서 속수무책입니다.
왕과 장관은 힘이 있는 사람들이고 엘리트들입니다. 그 사회의 모범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공부를 해보면 그 시대가 병들고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모범생을 써서 역사를 바로잡는 예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힘이 있었고 능력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기 실력만을 의지하려고 하다보니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강한 자입니까? 공부도 잘하고 실력도 있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있고 유망한 장래를 보장받고 있는 학생들입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주님의 손에 자신을 쥐어드리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아람 나라의 왕처럼 장관들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강하고 힘이 있는 것 같았지만 자기보다 더 강하고 더 힘이 있는 상대방을 만났을 때 그들은 약한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보다 강한 학생들이 더 많습니다. 청소년 여러분이 학교에서 강한 자로 행세하지만 세상에는 더 강하고 똑똑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힘으로만 대결한다면 여러분들은 수없이 무너지고 실패하고 약한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강한 자가 되려면 하나님 앞에서 약해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에 약한 데서 강한 힘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2. 하나님은 약한 자들을 들어 쓰십니다.
그 성밖에 다섯 명의 한센병(나병) 환자들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성안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입니다. 약자들입니다. 그 사회에 아무런 영향력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꽁치그물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학교로 말하면 실력도 없고 우등생도 되지 못하는 학생들입니다. 연령으로 말하면 아직은 국가나 교회에 힘이 될 수 없는 학생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굶다가 의논했습니다.
"사마리아성에 들어가 봐야 받아주지도 않고 먹을 것도 없다. 이왕 여기에서 죽을 거라면 아람 진에 가보자"(7:4, 5절)
그들이 아람 진을 향해 가는 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발자국 소리를 큰 군대의 소리로 들리게 한 것입니다.
아람 군사들은 모든 걸 놓아두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아람 진에는 먹을 것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그 사실을 성에 전갈했고 성읍 사람들은 그 양식으로 죽음을 극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유능한 사람들만을 들어 사용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무디 선생, 영국의 스펄젼, 빌리 그레함 목사님은 학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세계를 움직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한 자들을 들어 강하게 만드시고 그들을 통해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그 시대를 변화십니다. 그가 하나님의 품에 자신을 맡겼느냐, 하나님의 손에 자신의 장래를 맡겼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들어 크게 사용하십니다. 약한 자들을 들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청소년들을 들어 교회 어른들을 감격하게 만들며 우등생이 아닌 자들을 들어서도 큰 역사를 감당하십니다.
3. 청소년들이 교회를 건축한 간증을 들어보십시오.
오래 전에 남해안 소도시 통영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청소년들이 일으킨 기적입니다.
경남 통영의 `장안 친구된교회‘의 이광수 목사님(46세)은 청소년들을 위한 특수목회를 하는 분이었습니다. 목사님 부부는 7년 기도 끝에 청소년을 위한 개척교회를 하라는 응답을 받고 이른바 `깡통교회’라는 컨테이너하우스에서 생활하며 청소년 문화공간 `로뎀의 집‘을 운영해 왔습니다.
이 목사님 부부는 지난 해 초 기도 끝에 응답을 받아 150여 평 넓이의 청소년 교회 건축에 들어갔습니다. 통영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일반 건물 10층 높이의 아름다운 서양식 목조 건물로 성전을 지을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철골구조만 세워진 상태에서 인부들이 난공사를 이유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서양식 목조건물은 2-3층 높이가 적당하나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인부들이 25m, 즉 10층 높이의 건물을 지어가다 기술적용과 채산성이 맞지 않아 포기해 버린 것입니다.
목사님 부부는 흉물로 변해버린 철골구조를 보며 통곡했습니다. 낙담 중에 있을 때 수능시험을 끝낸 고3 여학생 세 명이 목사님을 찾았습니다. 그 아이들은 여고 2학년 때 예수를 영접한 초신자들이었습니다. 여학생 3명은 당돌하게도 “필요한 자재가 다 있는데 우리가 직접 지으면 안 되느냐?”며 예배당을 짓자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목사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여학생들의 신앙적인 기개에 목사님은 나약한 자신의 믿음을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세 여학생과 고3짜리 목사님의 아들, 목사님 댁에서 기거하며 학교에 다니던 친구 목사님의 고2짜리 아들과 함께 망치와 못을 들었습니다.
모두 일곱 명의 인부(?)들은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아가면서 그 많은 자재를 오직 자신들의 힘만으로 끌어올리며 건축해 나갔습니다.
학생들은 목사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비계에 기꺼이 올랐고 목사님 부부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가 아니면 저렇게 할 수 있느냐”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린 학생들을 끝까지 지켜주셨습니다. 대형 유리가 쓰러져 목사님이 머리를 다쳐 수십 바늘을 꿰매는 사고가 있었지만 다른 청소년들에게는 자그마한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작은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습니다.
성전 건축을 시작한 지 4개월쯤 되는 지난 3월에 드디어 성전건축을 완공해 헌당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 그들 장한 청소년의 이름을 기록해 둡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김은미(19․마산대 간호학과 1년), 강경묘(19․계명대 사회복지학과 1년), 김민경(19․경성대 사회복지학과 1년), 목사님의 아드님 이대헌(19․장신대 기독교교육학과 1년), 욕지도 출신으로 목사님 부부가 거두고 있는 친구 목사님의 아들 추성훈(17․통영 충무고 2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들을 좋아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약함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강함이 걸림돌이 됩니다. 그 시대에 아무런 도움도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던 나환자들, 그들이 그 시대를 구원했습니다. 밥도 제대로 짓지 못할 것 같은 여학생 세 명이 교회를 건축하는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지금 시대는 감동을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감동과 기적의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강한 역사를 일으키는 기적의 청소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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