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 있습니까?
사도행전 1:12-16
성탄절이 되면 영락없이 공연되는 연극 한 편이 있습니다. "빈방 있습니까?" 라는 제목의 성탄극입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 요셉과 마리아가 만삭의 몸을 이끌고 이 집 저 집으로 다니면서 묻는 것입니다.
"빈방 있습니까?"
하나 같이 "빈방 없습니다!" 라는 대답만이 들려옵니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다시 길가에 나가서 빈방 있을까? 하고 찾아본다면 너무 많은 방(房) 에 깜짝 놀랄 것입니다. 웬 방들이 그렇게 많은가요? 게임방, 노래방. 비디오방, 찜질방, 공부방…. 어느새 우리 주변의 방들이 하나 같이 육신을 무장시키고 머리를 굴리는 방들로 거리거리마다 채워지고 만 것입니다.
1. 방(房) 문화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청소년 여러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방. 몇 천 원만 주면 밤새도록 지낼 수 있는 방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배우고 우리의 삶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요? 방 문화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 이기적인 인간을 만들어 갑니다.
방 문화는 대부분 밀폐되어 있습니다. 여럿이서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대부분 혼자나 두 서너 명이 즐길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몇 시간을 보내다보면 중독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우리의 심성(心性)은 어떻게 될까요? 게임은 대화가 없습니다. 설득의 문화가 없습니다. 서로의 의견을 나눔이 없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죽여야 하고 깨부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공격과 파괴가 있을 뿐입니다.
이런 사고(思考)가 학생들의 심성 속에 고스란히 자리잡습니다. 우리가 극히 개인화 되고 이기적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사고로 다져진 이들은 어떤 문제가 되었을 때 대화나 의견 조절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요구조건만을 내세우는 소아적 인간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어린애 같은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 폐쇄적 인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의사표현을 통해, 대화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아름다운 인간상을 만들어 갑니다.
이번에 월드컵에서 경이적인 4강의 성적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히딩크라는 지도자, “붉은 악마”(저는 이 용어를 싫어합니다) 라는 응원단, 선수들의 투지, 홈그라운드의 잇점 등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승리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성도들 간의 대화입니다. 대표팀 선수들은 훈련하면서, 시합 중에 대화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서로의 위치나 의도를 알게 되고 골 연결이 정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시대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화에 능숙해야 합니다. 대화를 통한 팀웍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의 문화에 심취하게 되면 혼자서만 공간을 즐깁니다.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배우지 못합니다. 모두에게 문을 닫아버리고 독기를 품습니다. 세상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심성은 돌처럼 굳어질 것입니다. 굳어진 데에서 무슨 생명이 싹틀 수 있을까요?
㉢ 익명(匿名)을 즐깁니다.
지난날의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방의 문화에 오염된 학생들은 자신을 익명으로 숨깁니다. 익명은 이름을 숨기고 정체를 숨기는 것입니다. 익명으로 별별 욕설을 늘어놓고 채팅을 하고 남을 위협합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학생들일수록 '익명'을 즐깁니다. 이런 이들이 방에서 나와 자기의 이름을 가졌을 때는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이 됩니다.
연예인들은 자기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을 갖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소라의 프로포즈” “자니윤 쇼” 등입니다. 이런 프로그램에서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 봅니다. 자기의 프로그램과 함께 실력도 능력도 인기도 올라갑니다. 그러나 익명의 사람들에게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이름을 숨겨서 남의 허물이나 드러내고 남의 약점을 공개하면서 즐깁니다. 인터넷 공간이야말로 익명을 최대한으로 보장해 주는 공간입니다.
㉣ 방의 문화는 일탈(逸脫)을 꿈꿉니다.
방의 문화는 어둠이 문화이고 폐쇄의 문화이고 죄의 싹을 트게 하는 문화입니다. 비디오방, 전화방… 잘못된 방들이 오늘도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어둠의 세계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그러잖아도 스트레스에 빠져있는 청소년들은 정상적인 삶에서의 일탈을 꿈꿉니다. 그런 청소년들이 방의 문화를 접하게 되었을 때 탈선의 길로 나간다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2. 크리스천 청소년들은 어떤 방 문화를 만들어 가야할까요?
오늘 본문에는 근사한 방(房)이 나옵니다.
어떤 방입니까?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마가의 다락방? 음식점 이름 같지요? 그냥 숨기 좋은 다락방 같습니까?
마가의 다락방은 기도방(房)입니다. 돈 받고 들어가서 실컷 놀다오는 방이 아니라 누구든지 들어가서 열심히 부르짖고 은혜를 체험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주님께 헌신을 하게 되는 우리 교회의 기도실이 곧 마가의 다락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하나가 되는 방이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는 1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도방에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나라에서 왔습니다. 사상이 다르고 이념이 다릅니다. 피부 색깔도 다릅니다. 제자들 간에도 성격이 다르고 갈등과 긴장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방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차이가 극복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했고 위대한 기독교의 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렇습니다.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방에서 함께 기도할 때 모든 불일치는 일치로 나갈 수 있고 기도방에서 모든 갈등과 차이점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학생회에서, 친구간에, 교회생활에서 일치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까? 기도의 방으로 나가십시오! 기도방에서 당신의 고집과 자아는 깨지고 당신은 하나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 신령한 언어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비롯한 120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열심히 기도하던 다락방에서 갑자기 성령이 강림했고 방언의 은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방언은 신비한 언어입니다. 하나님께서 특수한 목적을 띄거나 개인의 깊은 기도생활을 위해 주시는 선택의 은사입니다. 그 은사는 누구나 꼭 받아야 하는 필수과목이 아니라 선택과목입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령한 언어를 통해서 외국어를 능수 능란하게 구사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동시통역과 같은 방언으로 복음을 들었습니다. 자기들의 말로 복음을 들은 것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언어였습니다. 지금은 이상한 거짓 방언들이 난무하고 있기에 방언의 아름다움 대신 "방언 하는 사람들=약간은 이상한 사람들"로 보이는 오해도 있지만 당시의 방언은 참으로 신기하고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어 가는 신령한 언어였습니다.
저는 우리 학생회원 모두가 아름다운 언어를 은사로 받기 바랍니다. 따뜻하고 경건한 은사, 다정하고 남을 배려하는 은사, 공격적인 말보다는 감싸주는 언어의 은사, 부정적인 언어보다는 긍정적인 언어들을 받기를 바랍니다. 바로 기도방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 능력을 체험하는 방입니다.
본문의 다락방에 들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체험했을까요? 그들은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 능력은 담대함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서움이 사라졌습니다. 목숨을 내던지는 용기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처럼 강한 용기가 어디 있습니까?
능력은 이적의 역사로 나타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쳤습니다. 수많은 이적들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기도방에서 얻은 능력의 결과입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이 기도방에서 능력을 체험하기를 기대합니다. 약한 자들이 아니라 강한 자들로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기도방은 능히 여러분들을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비전을 만드는 방입니다.
기도방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 그리스도의 왕국을 바라보았습니다.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일어난 이 하나님의 역사가 전 세계에 충만할 것이며 세계를 구원하는 위대한 첫 발걸음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세계에 그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전하는 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은 이루어졌습니다.
세속적인 방은 여러분들의 꿈을 앗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방은 사라졌던 꿈들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비전의 청소년들로 거듭나게 할 것입니다.
청소년 여러분, 이제 어디로 갈 것입니까?
세속방으로 가겠습니까? 그래서 청소년의 시절을 자신의 이름을 감추는 익명성으로 살며 허비할 것입니까?
아니면, 기도방으로 가겠습니까? 그래서 기도를 통하여 능력을 얻고 비전을 세우고 거듭나는 생명으로 살겠습니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청소년부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뜻을 정하다] 당신은 어떤 악기인가? (로마서 6:12-14) (0) | 2025.02.06 |
---|---|
[뜻을 정하다] 기적을 만드는 청소년(열왕기하 7:3~10) (2) | 2025.02.05 |
[뜻을 정하다] 학생, 속도위반이오!(창세기 3:6) (0) | 2025.02.05 |
[뜻을 정하다] 하나님의 선전원(이사야 42:10-13) (1) | 2025.02.03 |
[뜻을 정하다] 꿈은 이룰 수 있다! (창세기 37:18-20) (0) | 2025.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