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의 하나님 사랑
요한복음 3장 16, 17절
서론
송구영신 예배 때 어떤 성경구절을 받으셨나요? 내게 딱 맞는 좋은 구절이라 좋아하는 분도 있고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성경구절을 뽑은 분들도 있을 거예요. 어느 쪽이세요?
저도 소원을 갖고 성경구절을 뽑았어요. 사례비로 생활은 충분한데 교사의벗 잡지 적자가 누적되니 겁이 나요. 그래서 기도했어요. 금년에는 독자도 많이 생기고 후원교회들도 늘어나서 빚을 좀 줄여주세요, 돈 좀 많이 주세요, 마음으로 뽑았는데… 딤전 6:7, 8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 구절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 하나님, 알았어요, 말도 못해 봐요? 궁시렁거리면서 아멘! 했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이 애송하는 구절은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본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입니다. 특히 본문은 기독교 중심교리가 들어있어 정말 좋은 구절이며 암송해야 할 말씀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구절에서 ‘이처럼’의 하나님 사랑이 무엇일까, 를 삼위일체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1. 성부(聖父)의 ‘이처럼 사랑하사’의 사랑-자기형상대로의 창조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엿새 만에 창조하셨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 강과 바다, 꽃들은 말씀이라는 단순작업을 통해 창조하셨습니다. 빅(Big) 사이즈이고 불가능하다 느껴지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말씀으로 쉽게 창조되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우주에 가득 찬 빛을 만드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별들아 생겨라! 별들이 땅의 모래알처럼 많으니 얼마나 광대한 우주입니까? 그것을 말씀 한마디로 간단하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한 눈에 들어오는 작은 생물체 창조는 공을 많이 들이셨습니다. 새와 동물과 인간창조는 흙으로 빚었습니다(창 2:19). 빚는 행위는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고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고된 작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물창조의 소재를 흙에서 취했는데 한글성경에는 그냥 ‘흙’이지만 히브리어에는 ‘흙’의 종류가 다릅니다. 동물 창조의 흙은 ‘아다마’-거친 입자입니다. 'ground'-그냥 땅입니다. 사람의 보살핌이 없는 거친 땅입니다.
인간 창조의 ‘흙’은 ‘아파르’-먼지 같이 부드러운 입자입니다(창 2:7). 흙을 갈고 채로 쳐내 가루를 만든 고운 흙입니다. 일부 영어성경에는 'dust'입니다. 먼지, 티끌, 가루 분말입니다.
짐승을 만드는 흙은 땅의 아무(?) 흙이나 집어서 만드셨지만 사람을 만드는 흙은 아주 부드럽고 미세하고 영양가 있고 촉촉한 흙으로 온 정성을 다해 눈과 코와 신경과 관절과 골수와 오장육부(五臟六腑)들을 손수 빚으신 것입니다.
한 스푼의 황토(黃土) 속에는 2억 마리의 미생물이 있습니다. 우리 몸이 황토덩어리라면 수백억 마리의 미생물이 들어있습니다. 인체는 엄청난 생명체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8만 4천개의 감성(感性)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평범한 인간 두뇌는 10만개의 생각이 스칩니다.
이처럼 인체(人體)는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물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피조물이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최고의 만족도를 보였겠어요? 인간은 최고의 완성도를 갖춘 인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체를 왜 이렇게 황토보다 더 생명이 넘치는 ‘아파르’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을까요? 하나님의 형상을 담을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신적 속성인데 둘로 나뉩니다. 하나님의 본질인 영을 닮아 영적존재가 되고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거룩과 의와 지혜, 주권 등을 소유한 지적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런 형상은 천사나 동물들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처럼’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받으니 인간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입니까? 높은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나는 최고의 재료로 만들어낸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자존감, 고귀한 자아상을 가져야 합니다.
우울증으로 시달리는 환자가 정신과의사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자꾸만 개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 이런 생각이 들까요? 저는 개가 아니지요? 그렇지요?
의사가 물었습니다. 언제부터 자신이 개라는 생각이 들었나요?
우울증 환자가 곰곰이 생각해보다 대답했습니다. 강아지 때부터요!
안 됐어요! 개(犬) 자아상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미국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수업을 받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진화론 수업을 받은 학생들에게서는 동물의 잔인성이 나왔습니다. 서로를 무시하고 공격하고 자존감도 낮았습니다. 창조론 수업을 받은 아이들은 점점 나아졌습니다. 서로를 높이고 사랑하고 상당히 긍정적인 자아상으로 행동했습니다. 나를 곰의 후손 단군자손이라 생각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았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믿음은 자존감을 높여주며 자존감이 높으면 우울증이 없습니다. 사랑의 자존감은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나는 사랑을 받는 존재구나… 사랑으로부터 오는 기쁨이며 그 기쁨은 힘이 됩니다. 수용능력, 이해능력이 풍성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편한 사람이 되고 주변사람들을 세워줍니다. 이런 사람이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의 사랑으로 더욱 자존감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2. 성자(聖子)의 ‘이처럼 사랑하사’의 사랑-성육신과 십자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은 고운 흙으로 창조하시고 동물은 거친 흙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동물에게는 생명을 주고 인간에게는 생기를 넣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흙덩이에 생기를 불어 넣으니 생령이 되었다! 생령은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형상이 담긴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 영이 되고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갖춘 존재가 된 것입니다. 동물과 다르지요.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인간을 최고의 인체로 지성적인 존재로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선포하는 일과 세상을 관리하는 역할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창조물을 관리하려면 최고의 지능과 신체적인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 신체적인 조건을 보세요! 최고의 직립자세요 보행자세입니다. 관리자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게 나중에 노동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 빈혈, 위하수, 요통, 치질… 등이 생기는 것이지 첫 인간은 완전 직립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야 관리자입니다.
그런데 최고의 상태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아킬레스가 있습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자유의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잘 순종하면 점점 영적 존재가 되어 하나님을 방불하게 하는 영성이 되고 에덴에는 천국이 내려앉았을 것입니다.
불행히도 인간은 흙의 성향으로 기울어졌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먹어 죄인이 되었습니다. 흙덩이가 된 것입니다. 이를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천국영생에 올라갈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단을 위해 지옥을 만들었는데 하나님의 형상물 인간들이 지옥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연구팀이 쥐 실험을 했습니다. 어미 쥐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코카인 약물을 넣었습니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뇌에서 여러 역할을 수행하는데, 기분 좋은 느낌-‘고양감’을 느끼게 합니다. 왼쪽에는 새끼들을 넣어 쥐가 어느 쪽에 더 관심을 보이는지 관찰했습니다. 대부분의 쥐는 코카인이 있는 오른쪽 방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출산 초기의 어미 쥐는 다릅니다. 출산 초기의 새끼들이 코카인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어미를 끌어당기는 도파민 요소로 작용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랑의 도파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에게서 당신의 형상을 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끌어당겨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셨고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자를 통한 하나님의 ‘이처럼’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보이는 하나님의 ‘이처럼’의 사랑은 먼저 찾아오는 사랑이요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많이 하는 사람이 더 많이 상처를 받을 것을 각오하고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받은 자들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바울은 이런 사랑을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을 위해 죽는 자는 많지만 죄인을 위해 죽는 자는 없다! 그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 되었을 때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는 희생을 통해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하셨다!… 이것이 바로 ‘이처럼 사랑하사’의 이처럼의 사랑입니다, 이처럼의 사랑은 죄인을 사랑하는 사랑이요 그 죄인을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주시는 자기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에 예수님을 믿는 첫 발걸음이 시작됩니다. 성육신을 시키면서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아들을 못 박히면서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희생적 그 사랑! 그 사랑을 알아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고 예수님을 믿는 맛을 알게 됩니다.
3. 성령의 ‘이처럼 사랑하사’의 사랑-해산의 고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는 최고의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았던 피조물은 없습니다. 그래서 천사도 흠모할만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하나님의 사랑을 끌어내는 ‘도파민’을 없애버렸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황토가 아니라 박토가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져 버렸습니다. 우리는 사랑에서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속죄사역을 완성해 놓으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후 50일 만에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창조의 신이십니다. 성령님께서 교회라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교회를 통해 수많은 생명들을 거듭나게 하셨고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령님은 해산의 수고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 때에 성령님이 보여주셨던 수고입니다. 창조 이전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혼돈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상태입니다. ‘공허하며’는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는 적막한 상태, 무가치한 상태를 말합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빛이 없었습니다. 땅은 이처럼 보잘 것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신-성령님이 운행합니다. 운행은, 암탉이 병아리를 얻기 위해 알을 품고 있는 상태입니다. 병아리를 얻으려면 21일 동안 물도 제대로 먹지 않습니다. 기운 없는 몸으로 계속 알들을 굴립니다. 그래야 알마다 적정 온도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나도록 이렇게 해산의 수고를 합니다. 믿을 수 없는 교리를 이해시키려고 얼마나 우리 머리 속에서 운행합니까? 뜨겁지 않는 식은 가슴을 뜨겁게 하려고 얼마나 운행합니까? 흙의 본성을 하나님의 생령으로 살아가도록 얼마나 내 안에서 애씁니까? 이것이 성령의 ‘이처럼’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으로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처럼의 사랑이 없다면 우리 믿음은 흐지부지했을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보여주시는 이처럼의 하나님 사랑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앞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은혜와 위로를 줍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나 혼자뿐이라는 외로움이 있을 때 누군가 내 옆에서 따뜻하게 지켜보아 주시고 안아주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 때 엄청난 위로를 받으며, 아~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구나… 감동하게 됩니다.
-능력으로 느끼게 합니다. 나에게는 그럴만한 힘도 없고 실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일을 해냈습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그런 마음이 들면서 힘과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용서 가운데서 나타납니다. 다윗은 큰 죄를 지었을 때 침상에서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 참회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임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고난으로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서 “고난이 내게 유익이었다!”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느끼고 감격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보호하심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알 때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IT의 천재 스티브 잡스가 5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떠났지만 인간적으로는 불행했습니다. 부모가 대학시절에 서로 사랑해서 임신했지만 시리아 남자라는 이유 때문에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잡스는 출생하자마자 다른 가정으로 입양합니다. 그것이 잡스에게 평생의 분노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2005년부터 아들을 만나고자 했지만 잡스는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부자지간입니까? 잡스는 결혼 전에 딸을 낳았습니다. 부모에게 그런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잡스는 그 딸을 인정하지 않았고 나중에 DNA 검사를 통해 친자(親子)라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끝까지 부성애(父性愛)의 사랑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처럼’이라는 사랑으로부터 오는 자존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었을 때 언론의 헤드라인 뉴스 제목은 '아이 새드(iSad·슬퍼)'로 뽑았습니다. 그의 히트작 아이패드(iPad)에서 온 말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인도여행에서 불교를 접하고 불교신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죽어가면서 남긴 아빠 잡스의 마지막 말은 iSorry입니다. 일찍 하나님의 “이처럼 사랑하사”의 사랑-나를 최고의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신 성부(聖父)의 사랑, 내 죄를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나를 다시 회복시키신 성자(聖子)를 통한 사랑, 구원받은 날부터 죽는 순간까지 나를 보호하시며 위로하시며 감동을 주시는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삼위일체의 “이처럼 사랑하사”의 사랑을 알았으면 그는 아이패드(iPad), 아이폰(iPhone)을 넘어 'iHeaven(천국)'의 신앙으로 더 아름다운 생애를 살았으며 가족들에게 더 큰 위로와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세상에서 이기게 합니다. 견디게 합니다. 행복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운다면 아이패드나 아이폰은 없어도 'iHeaven(천국)'을 소유한 사람으로 스티브 잡스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살다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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