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입고 살자
창세기 6장 5~8절
서론
2천년대가 가까이 오면서 인류종말이라는 말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말세라는 것입니다. 말세는 있을까요? 말세는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의 역사는 직선의 역사입니다. 직선은 끝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종말은 있습니다.
하나님은 물 심판을 통해 이미 예고하셨습니다. 노아의 물 심판은 예고편입니다.
이번에는 불 심판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예언에 의하면 인류는 그 마지막에 불로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터져 버린다고 했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엄청난 화력이 있습니다. 지구를 수십 번도 더 날려버릴 핵폭탄이 있습니다. 도시의 지하에는 어마어마한 가스들이 매립되어 있습니다. 세계적인 지진이 있거나 행성 하나가 부딪치면 지구는 치명타를 당하게 되고 불바다가 되어버립니다.
불 심판에서 인류는 어떻게 살아남을까요? 하나님은 물 심판에서, 노아의 행적에서 그 비결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성경은 구원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일반종교의 구원관은 선행이나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려고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만 영생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게되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은혜를 입어야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되고 내세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압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일방적이지만 인간 편에서 은혜를 입기 위해 노력을 할 수는 있습니다.
겸손함입니다. 물은 낮은 곳을 향해 흐르듯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사람에게 흐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2. 노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세상은 타락하고 추하여졌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물 심판으로 청소하실 것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인간의 죄악보다 더 큰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전제로 아담과 그 이후의 많은 구원자들이 천국에 올라가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를 멸절 시키시려고 인생을 모두 죽여 버린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셨다면 또 다른 공의-즉 여자의 후손 통한 구원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그 약속에 근거하여 천국에 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공의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 노아를 통한 생명보존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세상 멸망을 알려주었습니다. 생명 있는 것은 모두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노아 입장에서는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까?
그렇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8절). 은혜를 입었다는 말은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사랑을 발견하였더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눈이 얼마나 무서운 눈입니까? 그것은 진노의 눈이요 노를 품고 있는 눈이요 모든 생물을 쓰러버리겠다는 심판의 눈입니다.
살인자가 재판정에서 판사의 눈을 봅니다. 그 눈이 얼마나 무서운 눈입니까? 그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로 사형인가, 무기징역인가? 결정이 납니다. 죽느냐 사느냐? 숨막히는 순간입니다.
죄수의 가족들, 변호사마저 재판관의 눈에서 무서운 심판과 진노를 보는데 살인자는 자기의 죄가 큼에도 재판관의 눈에서 사랑을 보았습니다.
"네가 어쩌다가 그런 죄를 지었는가?"
재판관의 눈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순간 살인자의 마음에는 `아, 이제 살았구나. 내 목숨은 연장되겠구나...' 그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재판관의 눈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9절,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의 영적 수준과 안목은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렇게 높은 사람이 당시의 사회적 죄악들을 모르겠어요?
3절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사악한 인간의 부패성
5절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죄의 과격성, 죄의 충만성
더 이상 길이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음을 노아는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노아는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 심판을 본 것이 아니라 마땅히 모두 멸망당해야 함에도 오늘날까지 참아주신 그 사랑을 보았습니다.
*선악과와 생명과를 두셨던 하나님 - 남들은 선악과를 보았지만 노아는 생명과를 보았습니다. 흙덩이로 만들어진 유한한 인간을 하나님의 생명의 자리로 인간을 끌어올리려 하셨던 그 배려는 얼마나 깊은 사랑입니까?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죄인이 되었습니다. 질병과 늙음이 왔고 사망이 왔습니다. 만약 인간이 생명과를 따 먹어버렸다면, 그래서 죽음이 없다면 얼마나 인간은 불행했을까요? 화염검을 두어 에덴동산을 지켜서 인간이 범접할 수 없도록 하셨던 하나님.
*동생을 쳐죽인 살인자 가인에게 표를 주시고 악인마저도 보호하시려는 하나님, 얼마나 원수를 사랑하신 분인가요?
*물 심판으로 인간이 아주 멸망당하기 전에 새로운 혈통을 세상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노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의 증거입니다.
노아도 하나님의 눈에서 심판과 잔인함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웬걸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사랑을 보았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랑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3. 우리도 은혜를 입은 자들이 됩시다.
이번에 고관부인들이 옷 몇 벌 샀다가 남편들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망신당했습니다. 사실 있는 사람들이 그 정도 옷을 산 게 무어 그리 큰 잘못이겠습니까만은 때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억울하게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일본의 전직 레슬러. 사업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그는 거리에 나가서 맞아주는 일로 돈을 벌었습니다. 사람들은 남을 때리는 일로 울분을 풀었고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의 귀부인들은 사람들의 울분 때문에 더 당하기도 했습니다. 돈 있는 상류층 사람들이 좋은 의상실을 드나드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도 있는 법입니다.
그 사람들은 엄청나게 비싼 밍크코트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옷을 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입혔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에서 사랑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일 의인들의 수난, 순교자들의 피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으로 살아보려는 우리들에게 닥쳐오는 여러 시련과 고통의 문제를 말씀드렸습니다.
어려움이 왔을 때 우리가 은혜가 떨어지면 그 어려움을 주목하게 됩니다. 질병으로 고통이 심할 때 은혜를 입으면 큰 고통도 작게 보이지만 은혜가 떨어지면 작은 고통 속에서도 크게 고통을 겪고 하나님의 사랑이 희미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것입니다.
신앙 생활하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교회 안에서만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만 여러분들을 보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여러 가지 평판을 듣습니다. 직장에서 이러쿵저러쿵... 그러나 목사는 여러분들의 교회 안에서의 그 모습을 발견하고 사랑을 느낍니다.
설령 여러분들이 교회 밖에서의 실수와 허물이 있다고 해도 저는 교회 안에서의 여러분들을 보고 사랑하고 감싸며 안타까워하며 함께 눈물 흘리고자 합니다.
세상에서의 죄, 그리고 그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들 자신들에게서 사랑을 보고 진실을 보고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교회에 나오는 그 한가지만을 봅니다. 그러니 모두들 사랑스럽고 모두의 눈에서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히려 제가 고통스러운 것은 교회 안에서의 원망, 불평, 형제들 간의 시기, 교인들끼리 업신여기는 것… 이런 것들을 괴로워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눈에서는 쉽사리 사랑을 발견할 수가 없어요. 그럴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것이지요.
우리는 추악한 세상에서도 항상 좋은 쪽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말세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120년 동안을 방주를 만들면서 심판의 대상이 되는 그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세상,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세상, 비록 지금은 죄로 뭉쳐있고 멸망당할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방주를 만드시면서가지 끝까지 사랑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결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도와주실 분이십니다. 그 많은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향해 따뜻한 사랑의 마음과 눈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늘 그 마음을 품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진짜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 없이 방방 뛰고 울고불고 ...소용없는 일입니다.
은혜가 없으면 사람은 시들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눈 속에서도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보는 은혜가 넘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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