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방치하면 역린(逆鱗)된다!
사무엘하 6장 20~23절
서론
여중생 딸의 친구를 살해해서 충격을 주고 있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소년시절 이성으로부터 치욕을 당한 여성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는 골프계의 ‘모차르트’라 하지만 흑인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백인여자들을 좋아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거절당했습니다. 골프선수로 성공한 후 백인여자들과만 염문을 뿌리고 다녔습니다. 백인여인들에게 무시당한 젊은 시절의 정신적 외상이 돈과 명예로 백인여인들을 자기 소유로 삼음으로 트라우마 상처를 다독이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은 항상 장로님들에 대한 불신감으로 목회합니다. 목회 초년에 당회원이 세분 모두 교회를 떠나 장로님들에 대한 상처가 큽니다. 그래서 평생을 장로님들과 편하게 지내지 못했습니다. 일종의 장로 트라우마입니다.
심리학에서 트라우마(trauma)는 정신적인 상처입니다. 감당할 수 없을만한 상황을 겪은 후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거나 그런 장소에서 불안감이 심해지는 증상을 보이는 심리현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일부러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어릴 때 아버지가 돼지고기를 사오셨는데 털 몇 가닥을 발견하고 고기를 먹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문신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트라우마는 정도에 따라 분류됩니다.
큰 트라우마. 극적인 사건이 한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경우입니다. 전쟁이나 재난, 강간이나 폭행 ⋯ 등 일상을 넘어서는 사건을 당하거나 목격한 경우입니다.
작은 트라우마. 사람들 앞에서 받은 모욕, “너무 뚱뚱해”, “못 생겼어!” “너 바보 아니야?” 별 것 아닌 것 같은데도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단일 트라우마. 충격의 강도가 큰 트라우마의 경우로 한번으로도 삶을 뒤흔들어 버립니다.
복합성 트라우마. 지속적인 폭력이나 왕따, 학대⋯ 등입니다. 반복되면 성격으로 굳어집니다.
트라우마는 몸과 마음에 저장되는 것이지요. 몸과 마음은 쌍둥이로 고통과 아픔,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기억하는 장소입니다. 이게 신체적으로 해소되지 않으면 계속 따라 다니며 괴롭힙니다. 그러니 몸이 굳으면 마사지로 풀어야하듯이 스트레스, 트라우마라는 상처도 기억을 보관하고 있는 마음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 대적하는 목회를 하게 되고 서로 간에 상처를 주고받는 고슴도치의 신앙생활을 하게됩니다.
성경에서 트라우마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환자가 누구냐? 놀랍게도 다윗입니다. 쉽게 동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우리가 생각하는 다윗은 인생의 행운아입니다. 무명의 목동, 소위 흙수저로 태어나 왕이 되었다면 보통 행운이 아니고 특권이 아닙니다.
특히 다윗은 아주 다재다능한 사람입니다. 시(詩)를 알고 음악을 알고⋯ 전투에도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그는 막내, 8남 2녀(삼상 16:10) 중 막내라면 얼마나 사랑받으며 컸겠어요? 아버지가 이름을 ‘다윗’이라 지은 것도 공연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사랑받은 자’란 뜻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외적으로 드러난 화려한 생애에 비하면 다양한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모든 트라우마를 다 갖고 있는 상처의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친인척 트라우마. 막내로 사랑은 받았지만 인정은 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사무엘이 2대 왕을 물색할 때 다윗만 선택기준에서 제쳐버렸습니다. 형들은 노골적으로 다윗을 모욕했습니다. 전쟁터에 찾아온 다윗을 마구 야단쳤습니다(삼상 17:28). 그는 장인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했고 부인 미갈에게서도 크게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자식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왕자의 난으로 힘들었습니다. 친인척 요압장군도 그에게는 힘이자 짐이었습니다.
여인 트라우마. 다윗은 용모가 아름다운 미남입니다(삼상 17:42). 여자 복이 없습니다. 첫 번째 여인 메랍. 사울의 맏딸입니다. 결혼 직전에 남의 부인이 되어버립니다. 그게 다윗에게는 트라우마가 되어 여인들과의 관계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첫 여자와의 아픈 상처는 떠나간 여인들을 그리워하고 유부녀들을 좋아했습니다. 망명시절에 미갈이 다른 남자와 재혼한 것을 왕이 되어서는 억지로 빼앗아 옵니다. 아비가일 유부녀, 밧세바도 충신 우리야 장군의 아내로 유부녀입니다. 이름이 기록된 8명의 아내와 또 다른 부인들⋯ 아들 압살롬에게 성폭행을 당한 열 명의 후궁들⋯ 여러 처첩들을 거느렸지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메랍 트라우마입니다. 메랍과 행복한 부부생활을 했다면 무분별하게 보이는 대로 자기 여자로 삼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어폭력의 트라우마. 다윗의 정신적 상처 중에서 가장 극복하기 힘든 트라우마입니다. 전쟁터에서 형들은 오만방자한 놈(삼상 17:28), 사울의 언어폭력(삼상 20:30, 이새의 아들)⋯, 바란광야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시절, 나발이라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요청하는 사절단을 보냈더니 나발이 하는 이야기가 언어폭력입니다. 삼상 25:10, 11절)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지금도 보세요! 미갈은 말로 다윗의 비위를 상하게 했습니다.
20절,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다윗이 지금 숙원사업이던 법궤를 들여왔기에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떡과 고기, 건포도들을 선물하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집에 뭐하려고?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얼마나 좋은 모습입니까? 그러나 다윗은 부인을 향해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합니다.
22절 부인을 계집종이라 합니다. 입 닥쳐 계집년아! 그 뜻입니다. 너무 심한 것이 아닙니까? 물론 미갈도 말을 잘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23절, 평생 미갈과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 처벌을 내립니다. 이렇게 잔인한 고문이 없습니다.
영성이 뛰어난 사람, 하나님과 자연을 노래하는 순수함과 예술성을 지녔던 사람⋯ 많은 시편들을 만들어냈던 경건한 사람이 어찌 이런 소소한 일에 버럭질을 하는 것입니까?
나발, 양식주기를 거절했다고 어떻게 600명 군대를 이끌고 보복하러 나갑니까? 목축업자 나발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100여 정도 군사를 보내도 충분히 보복할텐데 왜 자신이 직접, 그것도 6백 명 군사를 거느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서 달려갑니까?
언어폭력! 언어폭력이 다윗에게는 마음의 상처, 트라우마입니다. 형들에게, 사울에게 받았던 언어폭력! 나발에게까지 받으니 뚜껑이 열린 것입니다. 그렇잖아도 장인의 언어폭력으로 상처가 치료되지 못했는데 딸까지 무시하는 언어폭력에 평생 잠자리거절이라는 최악의 형벌을 내린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파리를 파리채로 잡아야 할 것을 대포로 공격하는 무리수입니다.
다윗이 왜 이렇게 경건한 신앙인 다윗 같지 않게 악독하게 행동합니까? 누군가의 눈에는 나발에 대한 다윗의 처신이 나발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미갈에 대한 다윗의 처신이 악신에 들려 악담을 퍼붓던 사울 왕과 뭐가 다릅니까? 다윗은 왜 이런 도가 넘치는 행동을 했나요?
역린(逆鱗)이라는 단어로 다윗의 이해할 수 없는 성급한 행동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역린(逆鱗). 거스를 역(逆) 비늘 린(鱗).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을 말합니다. 건드리면 반드시 살해된다는, 왕이 노여워하는 왕의 약점 또는 노여움 자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한비, 혹은 한비자는 진시황이 “그를 만날 수만 있다면 한이 없겠다.”라고 할 만큼 뛰어난 인물입니다. 그가 쓴 책이 <한비자>입니다. 그 가운데 ‘역린’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용은 성질이 유순해서 길들이면 누구나 타고 다닐 수 있습니다. 어린애들이 장난질을 쳐도 용은 가라는 대로 갑니다. 그러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유순한 용도, 그를 길들인 사람이라도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한비자는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은즉, 아무리 군주의 사랑을 받는 신하라 해도 역린을 건드리지 않아야 화를 면하게 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다윗에게 앙금처럼 남겨져 있는 언어폭력의 트라우마! 이게 역린입니다. 다른 것은 다 갖고 놀아도 언어폭력은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대응하고 처형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지만 언어폭력의 상처가 있는 다윗의 입장에서는 그게 역린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어떤 정신적 상처, 트라우마를 갖고 있나요? 우리에게 역린은 무엇인가요?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하찮은 일에 버럭~ 소리를 지르고 노여움을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게 나의 약점, 나의 트라우마인지를 몰라요! 그래서 가볍게 말했는데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 당황해 합니다. 그러면서 인간관계가 서먹하고 단절되어 버립니다. 이상한 사람으로 그들의 기억 속에 문신처럼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걸 극복해야 합니다.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까?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자신과 대화하라~ 원인과 마주 대하라~ 이웃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이거 쉬운 것 같은데 쉽지를 않아요! 이 정도로 극복될 것 같으면 스스로도 괴로움을 당하는 트라우마에서 왜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히며 살았겠어요? 다른 것은 다 참겠는데 이것만은 도무지 참을 수 없다는 마지막 자존심! 나의 역린 때문에 왜 애꿎은 사람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겠어요? 내 인격에 손상이 오는데⋯.
다윗은 어떻게 극복했나요? 다윗은 트라우마의 원인에 접근하고, 트라우마의 상황에서 자신을 잘 다독이고⋯ 이런 심리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트라우마의 상황을 가져다 준 사람에게서, 상황에서 극복방법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트라우마를 극복했습니다. 나는 왕이다! 왕이라는 정체성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했던 것입니다.
왕은 누구이며 무엇하는 사람입니까?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요 백성들에게는 부모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관용과 긍휼입니다. 넓은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는 사울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나발에 대해 버럭~ 화를 냈지만 아비가일이 무슨 말로 마음을 달랩니까?
“당신은 왕이 될 분입니다. 바락 때문에 명예를 훼손하지 마십시오! 바락과 같은 인간을 상대하느라 하나님의 군대를 동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왕이 될 사람입니다!”
이런 왕의 의식이 다윗으로 하여금 사사건건 대응하고 대적하고 보복하는 일들에서 관대함을 보이게 되고 찬양과 기도와 고난을 통하면서 점점 성숙해져 갑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날마다 공급받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직분에 성령의 기름부름이 있었는데 다윗은 자신의 내면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날마다 구합니다. 자신의 죄성에 대해 매일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에게의 문제는 더 이상 트라우마, 역린이 아니라 그건 죄성의 문제였습니다.
‘아~ 나는 죄인이구나! 하나님의 긍휼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구나~’
이런 죄인의식이 하나님 앞에서 용서의 기쁨을 누리게 되고 과거에 그를 눌렀던 트라우마에서 회복이 되며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고 예배하는 사람 예배자 다윗!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으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트라우마도 역린도 극복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무엘하 16장을 봅시다! 압살롬의 반역에서 사울정권의 심복 시므이가 따라오면서 별의별 악담을 퍼부어도, 장수들이 그를 죽이자고 할 때도 놔두어라! 하나님의 소리로 듣겠다는 말로 잘 참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16:7~12). 역린이 극복된 모습입니다.
결국 신앙인들의 트라우마는 그 사건, 그 당사자의 문제보다는 하나님과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는가? 그걸 생각하면 트라우마가 역린이 되지 않고 오히려 나를 성숙시키는 레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역린이 극복되려면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히12:2)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으로 우리 마음을 교체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대함과 아량으로 우리의 역린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결론
서양 어느 나라에서는 딸의 결혼에 어머니가 진주를 주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의 진주를 “Frozen Tears”, ‘얼어붙은 눈물’이라 합니다. 시집살이에 속상할 때 조개가 안으로 들어온 모래로 받는 고통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진주가 된 것처럼 잘 참고 견디라는 뜻이겠지요!
진주는 땅에서 캐내는 보석이 아니라 바다의 조개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조개 속에 모래알이 들어오면 조개는 본능적으로 모래알을 무시하고 밀어내 버리려 하거나 모래알을 받아들이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합니다. 밀어버리면 고통도 없지만 진주도 없습니다. 받아들이면 아프지만 진주층이라는 생명의 즙을 짜내어 모래알을 덮고 또 덮으면서⋯ 진주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에게 있는 트라우마~ 그게 마음에 상처로 남아서 내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순간에 역린(逆鱗)이 된다면 우리에게 신앙성숙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파리채로 해결할 것은 대포로 쏘아 일을 더 크게 만들어 버립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아름다운 신앙열매를 맺지 못하고 주변에서 점점 사람들이 멀어져 갈 것입니다.
트라우마의 상징과 같은 다윗. 자기의 트라우마가 역린이 되어 여러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일도 있었지만 점점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시편 150편 중에 73편의 시(詩)를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진주가 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다윗 언약)을 통해 영원한 메시야의 모형이 되기도 했습니다(삼하7:1-17). 트라우마를 역린으로 만들어 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그런 것입니다. 믿음생활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행동의 변화(triggers트리거)를 넘어 삶의 변화(lifestorming 라이프스토밍)을 만들어 가는 위대한 사역입니다. 남을 위한 봉사 이전에 내가 먼저 십자가의 능력 가운데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들을 먼저 체험하는 우리가족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주일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교도 맛있다] 70년을 섬겼으나 돌아온 건(역대상 13:9~14) (0) | 2025.02.11 |
---|---|
[설교도 맛있다] 관계의 힘!(마가복음 5:25~34) (0) | 2025.02.11 |
[설교도 맛있다] 노아의 믿음은… (히브리서 11:7) (0) | 2025.02.11 |
[설교도 맛있다] 회막 중심으로 살라!(민수기 2:1, 2) (0) | 2025.02.10 |
[설교도 맛있다] 복음을 사기 치다!(창세기 3:14, 15) (0) | 2025.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