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설교도 맛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았다!(역대하 36:11~21)

갈렙처럼 2025. 2. 1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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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았다!

역대하 36장 11~21절

 

서론

인류역사에서 문명을 논할 때 로마제국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로마제국은 이탈리아 반도 및 유럽, 지중해를 넘어 북아프리카와 페르시아, 이집트까지 지배하였던 고대 최대의 제국(帝國)입니다. 로마 설화에 의하면, 주전 8세기 경, 테베레 강에 쌍둥이(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버려졌는데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랍니다. 형 로물루스는 아우 레무스를 죽이고 일곱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일대에서 목축과 농업을 주업으로 삼는 약 3,000여 명으로 자기 이름을 따서 로마(Roma)라는 작은 도시국가를 건설합니다. 주전 753년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망했으니 이스라엘이 망하기 30년 전입니다. 삼국시대에 가장 먼저 건국된 신라가 주전 57년이니 고대로마는 얼마나 오래된 국가입니까?

 

당시 로마의 부귀영화가 어떠했던지, 탈무드에는 ‘하늘에서 10개의 보화 주머니가 내려왔는데 그중 9개를 로마가 가졌고, 나머지 1개를 세상 나라가 나눠가졌다’ 할 정도였습니다. 당대 유명한 웅변가 아리스타테스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 중 로마에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극찬했고 네로 황제는 지방 순찰시 천대의 마차 호위를 받았으며, 같은 옷을 두 번 다시 입지 않았다 합니다. 일반인들도 은(銀)으로 꾸며진 목욕탕에서 목욕을 즐겼고, 은으로 된 일상제품을 사용했으며 노예들조차 은거울을 휴대할 정도였다니 그 영화가 오죽하겠어요!

 

이렇게 찬란했던 로마제국이 395년 분열되고, 서로마제국은 476년에 게르만민족에 의해 망합니다.(하지만 동로마는 1453년까지, 독일제국의 신성 로마 제국은 1806년까지 존재했습니다.)

 

유명한 작가 세르반테스가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로마는 쉽게 무너질 수 없는 탄탄하고 강력한 제국입니다. 그랬던 로마가 왜 망했을까요?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면 ‘로마제국이 하루아침에 망한 것도 아닙니다’. 300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균열되면서 서서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로마가 천년 제국의 위용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정복지에 대한 유화정책과 개방성 덕분입니다. 제국은 정복지마다 반란의 기미만 없으면 모든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이 점 때문에 망했습니다. 로마제국의 판도가 넓어지니까 통제가 힘들었습니다. 로마의 유화정책과 개방성은 양날의 칼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다 게르만민족의 반란과 침략으로 망한 것입니다. 퇴폐적인 목욕탕문화, 넘치는 납그릇용품으로 납중독, 사치와 방탕… 등, 도덕적이지 못한 타락한 사회도 망국의 원인입니다.

 

한국교회는 어떤가요? 한국교회는 기독교가 전래된 지 135년 정도가 됩니다. 신라 1천년, 조선왕조 500년, 로마제국 1천년 왕국에 비하면 135년은 유년기에 불과합니다. 유년기는 아직도 자라야 하는 성장기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성장기가 아니라 조로증(早老症)에 걸렸습니다. 조로증은, 어린 아이들에게 조기 노화현상이 나타나는 치명적이고 희귀한 유전질환입니다.

 

한국교회는 1885년 4월 5일,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동시에 제물포(인천)에 도착하면서 시작합니다. 전래 80년 동안은 엄청난 고초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1970년대 초반에 빌리그레함집회와 엑스폴로74 전도운동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장이 멈추고 2010년경부터는 본격적으로 하락선을 보이다 지금은 하락선이 가파릅니다. 과연 200년을 견디어 낼지 모르겠습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는 것처럼 그동안 한국교회에 조로증 현상들을 만들어 내는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으로 재림신앙 상실

한국교회가 무수한 박해와 신사참배, 공산치하, 가난에서 믿음을 지켜낸 것은 재림신앙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보상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재림을 사모하게 되었고, 이리 나태하게 신앙생활을 하다 주님께서 오시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이 긴장된 신앙생활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딴 곳으로 눈을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대규모 예배당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데 대형예배당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어요?

 

1992년 10월 28일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휴거소동은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를 전설(傳說) 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목사들은 시한부 종말론자로 오해 받을까봐 재림을 설교하지 않았고 교인들은 재림을 ‘소망’이 아니라 ‘교리’로 여겨 버렸습니다. 거짓 휴거 소동은 역설적으로 재림신앙을 잡아먹는 하마가 되어 재림신앙은 깡통계좌, 휴면계좌가 되고 말았습니다. 깡통계좌는 담보유지비율이 100% 미만인 계좌, 일정 기간 이상 거래가 없는 휴면계좌입니다.

 

재림신앙은 교리로만 존재하는 깡통계좌입니다. 주식에서 깡통을 찬다는 말은 “계좌가 0원짜리 의미 없는 계좌가 된다.”거나 “잔돈이 계좌에 남아있기는 하나 거의 다 죽어서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재림신앙은 있어요! 그러나 영향력 없는 깡통신앙, 휴면교리가 된 것입니다.

 

재림신앙의 실종은 세속화를 불러옵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영향력이 사라지고 설교는 잔소리로 넘길 때가 많습니다.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는 것입니다. 당연히 세상의 하찮은 것에 짜릿한 감동과 영향을 받습니다. 교회에서는 미지근하게 행동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물을 만난 고기처럼 화끈하게 돈을 쓰고 화끈하게 행동하면서 즐기면서 삽니다. 교단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나치고 직분은 계급화가 되고 성도들은 값싼 번영신학과 귀차니즘에 빠져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성도들은 실속 없는 사람으로 치부(置簿)됩니다. 그래서 적당하게 믿으라 합니다. ‘부득이’하여(삼상13:12) 라는 말은 상시화가 됩니다. 부득이로 게으름과 태만적인 신앙생활을 합리화 합니다.

 

이게 바로 조로증 증상입니다. 재림신앙이 빠지면서 한국교회는 늙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탄은 알았는데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월드컵 ‘붉은악마’의 예배당 진입

2002년 월드컵은 일본과 공동 주최국이면서 한국팀이 4강전에 진출하여 축제분위기였습니다. 한국선수단의 4강 진출은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의 실력이지만 국민들 응원이 큰 몫을 했습니다. 국민들은 너도나도 붉은악마의 빨간 복장을 입고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당시 응원단 ‘붉은악마’의 공식캐릭터는 치우천왕입니다. 붉은색 바탕에 도깨비를 닮은 ‘전쟁의 신’ 치우천왕 문양이 중심에 자리 잡은 깃발은 ‘항상 당신들과 함께 한다’ ‘파이팅 코리아(Forza Corea)’ 등의 문구를 담고 있습니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한국 축구팀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4강에 오르자, 외국 언론들이 ‘붉은 악령(Red Furies)’으로 부르며 놀라워했습니다. 이 표현이 번역과정에서 ‘붉은악마’로, 영문도 ‘Red Devils’로 바뀌었습니다. 붉은악마 응원은 세계 축구 정상에 오르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았지만 문제는 신성한 예배당을 붉은 물결로 덮어버렸습니다. 목사 평신도 신자 비신자 가릴 것 없이 예배당 안에 대형스크린 설치하고 붉은악마로 응원했습니다.

 

예배당 안에서 ‘붉은 악마’들이 함성을 지르며 춤추며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박수 치며 열광하던 그 모습들, 총회장급 담임목사가 붉은 티셔츠를 입고 열광하던 모습을. 새내기 목사였던 내 눈에는 바알신전에서 열광적으로 춤추며 예배하던 이방 종교인들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백성에게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신7:26)고 명하셨습니다. 가증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것” “구역질나는 것”으로 가나안의 각종 우상들과 우상을 상징하는 물건, 부적, 귀걸이… 등입니다.

우상기구들은 마음을 흐리게 하고 사탄의 미혹을 받게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건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사소굴이 되어버린, 경건성을 잃고 난장판이 되어버린 성전을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성전이나 성도 가정에 가증한 것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의사 출신인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병원을 세워 많은 흑인들을 치료하던 중 아내가 깊은 병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살펴도 증상이 없습니다. 그 때 다른 선교사님이 부인의 팔목에 걸려 있는 형형색색의 줄로 꼰 팔찌를 보았습니다. 마을에 살고 있는 마술사가 준 장신구였습니다. 선교사 부인은 장식품으로 팔찌를 차고 다녔지만 마을 주술사는 그걸로 늘 마술을 걸어왔고 심신을 쇠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선교사 부인이 팔찌를 빼내자 거짓말처럼 병이 나았습니다.

 

2002년 붉은악마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 춤추고 나간 후부터 한국교회는 세상이 접수하여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후부터 시작된 한국교회 곳곳의 분쟁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갈가리 찢어놓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붉은악마가 들여온 교회의 갈등과 분쟁입니다. 곳곳에서 지금도 피터지게 싸우는 중입니다. 가증한 것들이 들어옴으로 온갖 시기심과 부패와 타락, 직분에 대한 경쟁심들로 교회의 영성과 순결함을 잃어갔습니다. 붉은악마들의 짓입니다.

주일예배가 중단된 한국교회의 민낯

붉은 악마들이 할퀴고 간지 20여년이 못되어 지금 한국교회는 다수가 예배당 문을 닫고 주일예배는 중단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예배당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배당 문을 닫게 하신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한국교회는 이미 재림신앙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붉은악마’로 더렵혀질 대로 더럽혀졌습니다. 여인으로 말하면 남의 남자를 마음과 육신에 들여 만신창이가 된 몸이 된 것입니다.

 

본문은 남유다왕국의 망하던 상황입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12절, 남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악을 행했습니다.

14절, 제사장들의 우두머리와 일반 백성들에게도 악은 만연됩니다.

15절,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냈으나

16절, 백성들은 선지자를 욕하고 비웃고 말씀을 멸시했습니다.

그러자 17절, 하나님께서는 끝내 갈대아 왕, 바벨론제국에 자기 백성들을 넘깁니다.

 

이스라엘 왕국은 주전 1050년에 사울을 초대 왕으로 건국해서 사울-다윗-솔로몬 왕의 태평성대를 지내다가 930년에 남왕국 북왕국으로 분단됩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왕국은 주전 722년에 208년의 역사로 앗수르제국에 망하고, 남유다왕국은 주전 586년에 464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신흥 바벨론제국에 망합니다. 바벨론제국이 강해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죄 때문에 망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정치를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야당이 못해서 이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성전에 가증한 것들이 들어오고 마음은 세상에 두고 몸만 와서 제사를 드리는 백성들의 종교제사에 혐오해서 바벨론제국에 넘겼습니다. 그 전에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말1:10) 강력하게 경고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탄식이 지금 한국교회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갖습니다.

 

예배당이 주일에 묻을 닫았다! 여기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대구나 경북 같은 경우에는 백번 이해가 갑니다. 신천지이단집단의 대량감염으로 코로나 불랙홀이 되어버린 대구와 경북에 소재한 교회와는 별개로 주일에 예배당이 문을 닫았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의 ‘선례’가 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부득이하여’ 주일예배를 중단했다는 말이 사울의 변명이 될까, ‘그래, 내 이해한다’ 하나님의 인정이 될까, 는 사태가 안정되면 압니다. 세월이 가도 오늘 행동이 부끄럽지 않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고, 꼭 그래야 했나 아쉽고 부끄럽다면 그건 믿음이 실패가 아니라 선택에서 실패한 겁니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코로나 감염이 2년 동안 계속해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올가을·겨울에 2차 유행이 올 것에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마다 주일예배를 중단하고 예배당을 폐쇄할 것입니까? 생각만해도 두렵습니다.

 

누군가는, 오늘날의 선악과는 주일성수와 주일예배라고 합니다. 이걸 건드리면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성수와 주일예배를 따먹어버리면 성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주일성수는 우리가 되찾고 간직하고 대대로 넘겨주어야 할 보물입니다. 본질을 놓치면 안 됩니다. 누구는, 원로 목사님의 “집사가 밤 예배에도 안 나와?” 바로 그런 호통이 그립다고 말합니다.

결론

로마는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균열되고 무너져 갔습니다. 한국교회는 어떤가요! 과연 선교 200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는 교회의 부흥이 아니라 교회의 생존을 논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에 불어닥칠 후유증... 영적 저하, 출석율 감소, 교회 이동, 영상예배로 만족하려는 새로운 신앙형태, 재정 압박... 계속적으로 교회의 희생을 요구하는 정부와 민심, 사회적거리두기에 예배당과의 거리두기, 교회와의 거리두기...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철저한 자기 성찰과 반성, 회개입니다. 그동안 교회 안에서의 인본주의, 세속주의, 형식주의, 편의주의(便宜主義)를 우리 교회 안에서, 내 믿음의 세계에서 속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도려내야 합니다. 그것만이 지금의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사실을 한국교회는 알아야 합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2020년 4월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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