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벧에돔, 짧은 헌신에 큰 보상
사무엘하 6장 6-12절
목회를 하다보면 유난히 복을 받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뭔가 복을 끌어오는 통로가 있습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복의 통로는 하나님과 연결이 잘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오벧에돔을 통해 복의 통로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11절을 봅시다.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오벳에돔은 많이 헌신하지도 않았습니다. 딱 석달을 헌신했는데 대단한 복을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온 집에 복을 받았습니다.
-소유에 복을 받았습니다.
-성읍에 복을 받았습니다.
-자식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직계자손만 해도 62명 이상입니다.(대상 26장)
한 집안이 단 기간에 이렇게 많은 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아비나답은 오랜 세월에 법궤를 섬겼습니다. 블레셋으로부터 돌아온 하나님의 언약궤(삼상 6장)가 다윗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운반되기까지 안치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복이 되지 못하고 웃사와 아효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누군가에는 화가 되었고 누군가에는 복이 되었습니다.
오벧에돔은 어찌 짧은 헌신에 큰 보상을 받았을까요?
1. 남이 하기 싫은 일을 해서 큰 보상을 받았습니다.
법궤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불미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6절,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에 소들이 뭔가에 놀란 것처럼 뛰었습니다. '뛴다'는 말은 '미끄러지다', '걸려 넘어질 뻔하다'는 뜻입니다. 소들이 돌뿌리에 걸리거나 미끄러져 비틀거렸을 것입니다. 소들의 실수는 앞서 블레셋 백성들이 암소 두 마리에 법궤를 실어 벧세메스로 운반했을 때에는 없었던 불길한 흉조(凶兆)였습니다(삼상 6:12).
그러므로 이 일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하지 아니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릇된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물론 과거에 블레셋인들도 법궤를 수레에 실어 운반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문외한이었기에 묵인되었습니다(삼상 6:10-16).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법칙이 있습니다.\
법궤 운반의 책임을 지고 있던 웃사는 너무도 놀라서 얼른 법궤를 잡았습니다. 이는 법궤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지만 하나님은 '부득이하여'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신성모독으로 율법을 어긴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자손 중심 고핫 자손일지라도 법궤는 만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민 4:15).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로서 거룩한 것이니 아무도 들여다 보지도 말라고 명하셨으며(민4:20;삼상 6:19), 법궤를 운반할 때에는 그것을 완전히 싸서 (민4:15) 채(pole)를 궤의 고리에 꿰어(출 25:14) 운반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이 하나님이 매우 엄하게 법궤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셨음에도 웃사가 만진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겼으며, 하나님을 가볍게 여겼다는 증거입니다. 결과적으로 웃사는 즉사합니다.
법궤는 이제 성물이면서도 두려운 물건이 되었습니다. 함부로 만지거나 들여다 보았다가는 즉사합니다. 신앙심으로 집에 안치했을 때 누구나 무심코 그럴 수 있고 어린 아이들이 호기심으로 가까이 다가가 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즉사할 수 있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모두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도 그런 고백을 할 정도입니다.
9절, "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원인이 율법에 명한 방법대로 법궤를 운반치 아니한 데 있음을 깨닫지 못한 다윗(3, 4절)은 또 다른 하나님의 재앙이 미치지나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모시는 일을 중단한 채 황급히 법궤를 변방으로 이송시켰습니다(10절).
이 역시 다윗의 경솔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접하였을 때 무조건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원인을 규명한 후 올바른 방법에 따라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왔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면 법궤가 다윗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10절,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강제로 오벧에돔의 집으로 떠맡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원하는 오벧에돔의 집으로 법궤를 운반하고 안치했습니다.
오벧에돔은 남이 싫어하는 일을 했습니다.
오벧에돔은 남이 무서워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다윗은 형제들이 왕으로 세우는 예식에 남이 싫어하는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억지이긴 해도 남들이 싫어하는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마 27:32).
선다 싱, "십자가 속에는 복이 숨어 있다"
우리도 남이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의 일을 할 때 좋은 일들은 남들에게 주고 남들이 싫어하고 기피하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도 3D가 있습니다. 교사, 식당 봉사, 전도입니다.
우리가 교사, 식당 봉사, 전도... 남들이 싫어하는 일에 헌신할 때 그 일이 축복의 통로가 될 줄 믿습니다.
2. 중단하지 않는 헌신으로 큰 보상을 받았습니다.
법궤 봉사는 석달이었습니다. 그는 석달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갔을 때 같이 갔습니다. 이후로도 계속 법궤를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짧은 헌신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오랜 봉사는 힘이 들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오벧에돔은 법궤를 지키면서 늘 두렵고 그만큼 스트래스를 받았지만 계속적으로 헌신했습니다.
법궤를 지키는 문지기의 반차로 헌신했습니다.
그러자 자식들은 물론 집안 대대로 복을 받았습니다. 대상 26장에
4 오벧에돔의 아들들은 맏아들 스마야와 둘째 여호사밧과 셋째 요아와 넷째 사갈과 다섯째 느다넬과
5 여섯째 암미엘과 일곱째 잇사갈과 여덟째 브울래대이니 이는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6 그의 아들 스마야도 두어 아들을 낳았으니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다스리는 자요 큰 용사라
7 스마야의 아들들은 오드니와 르바엘과 오벳과 엘사밧이며 엘사밧의 형제 엘리후와 스마갸는 능력이 있는 자이니
8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그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이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이 명이며
오벧에돔은 언약궤를 충성스럽게 돌보았습니다. 다윗 왕이 그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운반할 때 악사 중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기도 했으나(15:18, 21) 본 직무는 문지기였습니다. 때문에 다시금 문지기로 발탁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다윗 성에 옮겨진 이래 그와 그의 가문은 언약궤를 모시는 회막의 문지기로 계속 활약한 것입니다.
오벧에돔의 일곱 아들과 장자 스마야의 여섯 아들을 합한 13명은 모두 성전 문지기의 24반차에 올라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외에도 성전 문지기의 반장으로 활약한 자들이 많았으니 오벧에돔 가문 출신들은 62명이나 됩니다(8절). 이는 곧 문지기 직무에 있어서 오벧에돔 가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음을 보여 줍니다.
웃사 사건 이래 오벧에돔이 정성껏 하나님의 언약궤를 관리하자, 하나님께서 축복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복을 주셨다'는 말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가정에 후손들, 특히 경건한 아들들을 많이 주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아들들 또는 후손들이 문지기 24반차 중 13반차를 차지했습니다(4-7절).
오벧에돔은 성실한 사람입니다.
오벧에돔은 꾸준한 사람입니다.
오벧에돔은 묵묵히 오랜 세월에 길게 헌신해서 길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길게 헌신해서 긴 축복을 받읍시다.
우리도,오래 헌신해서 오랜 축복을 받읍시다.
3. 섬기는 자가 되어 큰 보상을 받았습니다.
오벧에돔은 "에돔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종은 섬기는 자입니다. 그는 법궤를 안치한 과거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건 큰 사건입니다. 그래도 그는 "내가 왕년에~" 이런 자랑을 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봉사하고 헌신했습니다. 그는 섬기는 자로 자신을 인식했습니다.
우리가 왜 3D에 봉사하지 않습니까? 눈에 띄는 일에만 사역하려고 합니까? 섬기는 자세가 아니라 섬김을 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하나님의 나라는 지배자이신 예수님 자신이 섬기는 종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생을 봉사받기 보다는 봉사하시면서 사셨습니다. 남을 섬기는 삶의 가장 감동적인 실례는,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장면이며 봉사의 극치는 그 분의 죽으심에서 보여 졌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위대하다는 말은 예수의 성품을 따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드리는 사람에게만 붙여질 수 있는 이름입니다.
세상 권세자들은 얼마나 많이 섬김을 받을까, 여기에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들은 내가 얼마나 많이 섬길까, 그걸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에서는
내가 얼마나 많이 섬김을 받았는가로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많이 남을 섬겼는가로 상급을 받습니다.
그것이 영화의 상급입니다.
많이 섬겨서 많은 복을 받읍시다!
오래 섬겨서 오래오래 복을 받읍시다!
결론
오벧에돔은 딱 석 달을 섬겨서 큰 복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실은 장기간의 믿음이 복의 크기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오벧에돔은 평생을 섬겨서 자손대대로 복을 받았습니다. 오래 믿는다는 것은 여러 모양으로 믿음에 유익이 됩니다. 모태신앙은 중간에 믿은 분들보다 여러 모양으로 성숙도가 빠릅니다.
그러나 교회 다니는 햇수만 늘어난 것이라면 그건 복의 통로가 아니라 허튼 곳에 파이프를 대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도 오벧에돔의 하나님을 기대합시다!
이왕 믿을 것! 복을 많이 받으며 살기를 기원합니다!
[이 설교 내용에 호크마주석의 해석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제가 은퇴하고 40년의 강단을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긴 설교 내용들과 함께 그때그때마다 설교자님들에게 힌트가 될 수 있는 내용을 틈틈히 올리겠습니다.
나름대로 뼈대만 만들어 드리니 여러분이 살을 붙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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