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입으로 망하다!
민수기 11장 1~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을 출발하여 가데스 바네아를 향한 '3일 길'(10:33) 도상(途上)에 있었습니다. 시내 산에서 약 1년여를 머물면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으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광야 여행과 가나안 정복은 불안하고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지도(地圖)를 갖고 있지 않는 것도 그들에게는 암담합니다. 아무리 불기둥 구름기둥이 앞장서고 있지만 언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주변의 척박한 환경 역시 그들에게는 고달프게만 할 뿐입니다.
1. 악한 말로 원망하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은 한마디로 뒤죽박죽입니다. 원망했다. 찬양하고… 감사의 소리를 높이다가도 불평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간부터는 아예 불평불만의 목소리만 남게 되고 이게 고질적인 뿌리내리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1절,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악한 말로 원망하매…. 악한 말은 어떤 말입니까? 이건 어쩌다 너무 힘들어서 입 밖으로 무심코 나오는 원망이 아닙니다. 사람이 힘들면 원망도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분이 아닙니다.
여기서 악한 말은 아예 원망이 본성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일반적인 원망이 상황이나 사건, 자기의 불운한 운명… 어떤 대상에 대한 불평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악한 원망은 하나님을 향한 집중적인 비난이자 공격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이런 비난을 퍼부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스라엘만큼 받는 백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울의 말처럼 매일 감사하고… 항상 감사하고… 쉬지 말고 감사해야 하는데… 저들은 어느 순간부터 매일 불평하고… 항상 불평하고… 쉬지 말고 불평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선 광야생활이 힘든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다고 하면서 시내산에서 너무 지체하게 만들었습니다.
-성막 등은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얼마든지 건축할 수 있는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지도자들, 한 달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왜 이렇게 늑장을 부리나?
-백성들 중에는 언약이 없는 잡족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들의 불평이 선민들에게 전염된 것입니다. 그래서 눈만 뜨면 불평하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악한 말을 하나님께서는 들으신 것입니다.
1절,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여호와께서는 항상 자기 백성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분입니다. 누가 힘들어할까? 누가 신음하고 있을까? 누가 어떤 기도를 하고 있을까? 내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누가 귀를 기울일까? 항상 자기 백성을 위해 귀를 기울이시던 하나님의 귀에 이게 웬 소리입니까? 악한 말로 하나님을 공격하고 비난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아예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두실 수가 없습니다. 그들 선민이 불평분자가 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입막음을 하셨습니다.
1절,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다는 말은 당신의 공의로우심과 영광이 손상당하실 때 우러나오는 신적(神的) 반응입니다. 여기 '여호와의 불'은 여호와께로부터 직접 분출되는 불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초자연적으로 일으키신 불을 말합니다. 이것이 불(구름)기둥에서 뿜어나온 것인지, 번개로 인한 것인지는 알 길 없으나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것임에 분명합니다(출 19:18; 레 10:2; 신4:11).
하나님께서는 진(陳) 전체에 심판의 불을 확산시키지 않고 이스라엘 진의 가장자리에 쳐진 장막에만 불을 붙이셨습니다. 이는 불심판이 멸망을 목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을 환기시켜 바른 길로 가게 하려는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여호와의 위엄을 나타내 경외심을 갖게 함으로써 다시는 불평불만을 터뜨리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불길의 위력은 굉장히 강력했습니다.
2절,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백성의 다급한 부르짖음, 부르짖음은 '비명을 지르다', '울부짖다'란 뜻입니다. 불길이 너무 맹렬했기에 백성들은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건 보통 불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진(陳) 끝으로부터 맹렬히 타들어오는 불의 기세에 놀라 겁에 질려 울부짖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한 것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 출애굽하여 시내 산으로 향할 때에도 같은 불평이 있었지만(출 15:24; 16:2) 그때는 하나님께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시내 산 언약을 중심으로 그 이전의 이스라엘은 마치 젖먹이 신앙과 같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묵인하셨으나, 시내 산 율법 전수 후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보다 분명히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정면 거역했기 때문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징계를 내렸던 것입니다.
2절,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모세의 기도, 그것은 '중재하다', '탄원하다', '판단하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여호와께 절규하듯 간청하면서 백성들이 불평, 원망한 죄를 용서해 줄 것을 증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맹렬한 불길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불평이 가져다주는 심각한 결과를 깨닫게 하시는 것으로 그 목적하신 바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모세는 금송아지 숭배사건에서도 간절한 중보기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한 적이 있습니다(출 32:11-14).
모세는 그 땅의 이름을 다베라로 명했습니다. '불붙음'이란 뜻을 지닌 지명입니다(신 9:22). 모세의 마음도 편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징벌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것을 교훈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광야의 여정을 걸어가는 우리들도 심한하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불평을 해서 불을 붙이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해서 불을 끄는 사람입니까? 우리교회에서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2. 악한 입으로 울다.
이스라엘 나라에는 잡족이 있습니다.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빠져나온 이방인을 말합니다(출 12:38). 그들이 이번에는 먹는 문제로 불평하고 나선 것입니다.
4절,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잡족들은 할례를 받기 전에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12지파의 본진(本陳)에 소속되지 못했고, 각자 연관을 맺고 있는 지파에 붙어 '식객'(食客)노릇을 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민족적 자긍심이나 여호와 언약 신앙, 가나안을 향한 소망이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애굽에서 사는 것이 고달파 덩달아 따라 나왔거나 애굽 총리의 집에서 오랫동안 하인 노릇을 해오던 족보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들 잡족들은 다베라 사건에서 큰 교훈을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틈만 나면 고비 때마다 가장 먼저 불평불만을 터뜨립니다. 그들이 불평을 하는 것은 탐욕입니다. 탐욕은 절실히 필요한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분수에 넘치는 것을 무리하게 취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들은 현재 맛있는 음식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가나안 정복, 하나님 뜻의 성취)이 산적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욕심을 따라 원망을 일삼았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도 금방 전염을 받았습니다. 내성이 강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잡족들에게 부화 내동하여 몹시 한탄합니다.
4절,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절,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장된 표현입니다. 아니면 망각에 빠졌을 것입니다. 애굽에서 그들은 그렇게 잘 먹지 못했습니다. 양식을 위해 얼마나 노동을 했습니까? 지금은 어떤가요? 하나님께서 건강식 식품 만나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6절,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7절,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만나는 부드럽고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광야의 최고의 음식재료입니다. 그럼에도 원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주석가 바움가르텐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것은 정결하고 순수한 음식물의 은근한 맛을 계속 즐기지 못하고, 자신의 내적 탐욕으로부터 생겨나는바 툭 쏘고 시큼한 맛이 뒤섞인 자극적인 음식물을 갈구하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기인한다”
이스라엘이 만나를 주셨음에도 만족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입에 맞지 않았습니다. 애굽에서 먹었던 음식들은 얼큰하고 자극적인 맛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불평 내용은 이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6절,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개역성경에는, 정력에 쇠약하되… 라고 번역됩니다. 자신들의 식용과 원기를 돋굴만한 음식을 오래도록 먹지 못해 몸이 약해졌으며 반복되는 식생활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진정 약해진 것은 몸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정신 상태였습니다. 그런 것을 알았다면 하나님께서 분노하지 않고 알았다, 기력을 돋을 고기를 줄게… 하면서 즐겁게 공급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분노하셨습니다. 군중 심리에 편승된 죄악(불평)은 이스라엘 전역을 오염시켰고, 온 민족이 어린아이 같이 울어대는 것을 보시며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10절,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이번의 진노는 1절이나 33절에서처럼 행동화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불평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음으로써 표현되고 있는 침묵의 분노입니다. 사실은 더 무서운 것이지요!
18절,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19절,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20절,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코에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 고기를 먹게 하겠다는 말씀은, 입에는 가득히 물렸지만 영혼은 파리하게 됨으로 기쁨도 행복도 평안도 없는 그런 일상을 주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사실 이보다 더한 재앙도 드믈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욕심 때문에 우리 영혼이 파리해지고 우리에게 기쁨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자신들을 돌아봅시다.
3. 악한 입으로 먹다 죽다.
하나님께서 결코 즐거운 마음이 아니라 노한 심정으로 메추라기를 보내십니다.
31절,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시편 78:26,27에 의하면 이때의 바람은 동남풍 곧 아카바만에서 발원하여 신 광야를 거쳐 지중해 쪽으로 부는 바람을 말합니다. 메추라기 철새 떼(출 16:13)들은 봄에 떼를 지어 중앙 내륙 아프리카에서부터 북상(北上)하여 앗시리아 쪽으로 이동하는데, 이때 힘에 겨운 새들이 가끔 팔레스틴 지역에 떨어지곤 합니다. 이때 손이나 막대기로 기진한 새들을 손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람의 변화-동남풍을 이용하여 철새떼들을 이스라엘 진(陣) 위에 소나기처럼 무더기로 떨어뜨리셨던 것입니다. 메추라기는 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면에 하룻길(약 32km) 정도에 걸쳐 지면에서 두 규빗(1m) 높이로 쌓였습니다. 그야말로 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의 엄청난 고기떼였습니다.
33절,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34절,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엄청난 고기떼들을 잡아 탐욕의 입을 채우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큰 재앙으로 치셨습니다. 어떤 이는 큰 재앙이 식중독으로도 보이지만 역병(疫病)으로 보입니다. 징계의 대상자는 고기를 달라고 앞장서서 불평을 선동했던 자들일 것입니다.
이 사건은 결국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원망과 탐욕을 일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우쳐 주고 배부른 탐욕의 생활이 항상 개인에게 유익한 것만은 아님을 교훈합니다. 악인의 번영은 멸망을 앞당기는 역할을 한다는 교훈을 되새겨 보기를 바랍니다(잠 23:17; 전 2:26).
이곳은 기브롯 핫다이와, '탐욕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시내산에서 '3일길' 되는 이 곳 바란 광야, 어느 곳에 탐욕의 무덤이 생겨난 것입니다. 롯의 아내의 소금기둥과 같은 욕심의 무덤이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 입은 어떻습니까?
-악한 말로 원망하는 입은 아닙니까?
-악한 입으로 울고 있는 입은 아닙니까?
-악한 입으로 먹다 죽는 입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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