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부 설교

[뜻을 정하다] 스마일, 스마일(창세기 21:5~7)

갈렙처럼 2025. 2. 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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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 스마일

창세기 21:5~7

 

 

지난 주, 친구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친구 중 하나가 대머리인데, 자기는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하는 찬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머리가 자꾸 올라가는 것 같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는 유머 있는 그 친구를 좋아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늘 웃고 사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1. 예수님은 명랑한 사람입니다.

광림수도원에 가면 ‘예수님의 웃음’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주 호탕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스케치 한 것입니다.

처음에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거부 반응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으레 심각한 예수님 얼굴, 고뇌에 찬, 피곤한, 절규하시는, 겟세마네에서 몸부림치시던 창백한 그리스도만을 상상해 왔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항상 심각해야 하고, 근엄해야만 했습니다. 옛날 목사님들은 교인들 앞에서 큰 소리 웃음 한번 웃지 못했답니다.

 

어떤 목사님은 노타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웃으며 탁구를 쳤다가 구설수에 올랐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 못된 고정관념입니다.

어린이들을 안고 축복해 주실 때 그분은 웃으셨습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부을 때 기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웃으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먹기를 좋아하시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즐겨 하셨습니다.

그분은 창기와 세리들과도 친하셨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떠들썩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항상 함께 지내시며 웃으시고, 기뻐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혼인날의 신랑으로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쁨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항상 심각해지려 하고, 신앙심이 깊으면 깊을수록 얼굴에서 웃음을 지워 버리려 애를 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뻐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웃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웃음,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게 하셨습니다.

 

루이스 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5파운드 지폐를 줍기보다는 행복한 사람과 부딪치는 편이 즐겁다.”

이것을 의역하면 이렇습니다.

“만성적 불평자와 손잡고 가는 것보다 미소짓는 이와 부딪치는 게 낫다.”

예수님의 학생답게 웃읍시다. 당장 시험을 치른다 해도 웃읍시다. 하하하!

2. 웃는 사람은 건강합니다.

웃음은 눈물과 함께 인생의 맛을 내는 양념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웃음을 잃고 사는 학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이야 어려워 그런다고 하지만 교회 안에서마저 웃음을 잃지는 맙시다. 사실 공부가 최고인 대한민국 학생 신분에 웃을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웃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건강에도 좋기 때문입니다

 

‘신바람 건강법’의 창안자인 황수관 박사에 의하면, 아이들은 하루 150회 가량 크게 웃고 4백 회 가량 미소를 짓는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성인들은 하루 불과 6회, 미소는 15회 정도를 짓는다고 합니다. 그것도 미국 사람들 통계이지 우리 나라의 경우는 더 낮아질 것입니다.

 

웃음은 마음 뿐 아니라 몸도 평하고, 건강하게 해 줍니다. 한번 웃은 것을 운동과 비교하면 에어로빅 5분하는 효과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어떤 여학생들은 주름살 때문에 웃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우거지상을 하면 더 고약하게 주름살이 생깁니다. 찡그리는 데에는 얼굴의 근육이 64개가 필요하지만 미소짓는 데는 13개가 필요하답니다.

 

현대산업개발 사보에, “실패하는 샐러리맨의 7가지 유형”에 대한 내용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실패하는가? “말없이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을 1순위로 뽑았습니다. 과거에는 황소 같은 일꾼이 성공했지만 정보화 시대에서는 황소처럼 일만 하면 골병이 들거나 과로사(過勞死)할 가능성만 커지고 일의 성과가 저조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웃지 않는 사람”을 들었습니다. 웃으면서 일해야 창의력도 더 발휘되고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도 강해지므로 그야말로 “웃는 자가 최후까지도 웃는 승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장수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자들처럼 소리내어 웃거나 울지 않기 때문이라는 보고도 있습니다. 장수 노인들을 보면 대부분 농담도 잘 하고 웃음소리도 크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이처럼 웃는 이들은 건강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웃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웃기십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우습게 만드십니다.

그분은 무자식인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처럼 많은 백성들의 조상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90세 가까운 사라 할머니에게 오셔서 자식을 낳게 해주마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오셔서 자식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부엌에서 듣고 있던 사라는 ‘피식’웃었습니다.

 

웃음 중에서 아주 나쁜 웃음이 바로 ‘피식’이나 비웃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좋은 마음을 나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웃었냐?”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짜로 그들을 웃게 하셨습니다. 사라는 자식의 이름을 이삭이라 정해 놓고 평생 웃으며 사는 행복한 어머니가 되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겁쟁이였던 기드온에게는 큰 용사가 되게 하신다고 하셨고,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마리아에게는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부인 베드로에게는 반석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지만 그 웃김 속에서 환하게 웃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천국 시민입니다. 웃게 하시는 하나님, 항상 웃으며 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 웃는 일을 많이 만들어 내고 전파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때로 너의 인생에서 엉뚱한 친절과 정신 나간 선행을 실천하라.”

 

이것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미국 전역에 퍼진 일종의 슬로건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습니다. 화창한 겨울 날, 샌프란시스코 통행료를 내는 곳에서 한 여성이 돈을 내며 말했습니다.

“하나는 내 것이고 나머지는 내 뒤에 오는 자동차 여섯 대 분이에요.”

“일행이신가요?”

“전혀 모르는 사람인 걸요. 그냥 친절을 베풀고 싶어요.”

이 이야기가 미국 전역에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자 엉뚱한 친절이 이곳 저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정말 미소짓게 하는 일이 말입니다.

 

청소년 여러분들이여! 우리 사회에 스마일 전도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번씩 정신 나간 것 같은 선행(善行)을 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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