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부 설교

[뜻을 정하다] 나에게서 나오는 향기(요한복음 12:1-3)

갈렙처럼 2025. 2. 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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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나오는 향기

요한복음 12:1-3

 

 

18세기 프랑스에 그르누이라는 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천재이면서도 혐오적인 외모를 지닌 사람입니다.

그는 냄새에 관해서는 천재였습니다. 선천적으로 몸에서는 냄새가 없었지만 향기를 만드는 재주는 비범했습니다. 그는 향기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스물 다섯 명의 소녀들을 살인하고 소녀들의 몸에서 향기를 훔쳐 최고의 향기를 제조합니다.

 

그의 향기에 프랑스의 귀부인들이 열광하며 향수교(敎)의 교주인 것처럼 떠받듭니다. 그러나 열광도 잠시 뿐, 그의 살인 행각이 드러나고 파멸에 이릅니다. 그가 죽은 곳은 향수와 살아온 생애와는 영 다르게 시체들이 썩어 가는 냄새로 코를 찌르는 묘지였습니다. 아이러니 한 일입니다.

이상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될 것입니다.

1. 외향적인 향기만 풍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루누이라는 사람이 제조하는 향수는 진짜 향기였나요?. 그것은 남의 몸에서 훔쳐온 향수요, 향기입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몸의 냄새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좌절케 했지만 향수제조회사의 점원으로 일하던 중 자기에게 향수를 만드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향수를 만들었고 자기의 몸에 뿌림으로 여인들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남에게 빌려온 향수입니다. 그 향수는 일순간은 인기를 끌 있고 다른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지만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진정한 향기와 냄새는 남에게서 빌려온 `모방'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의 향기, 신앙의 향기가 진짜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그루누이처럼 남의 향기를 훔쳐와서 대단한 멋쟁이라도 되는 것처럼 폼잡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유명 탤런트에게서 머리 모양새를 훔쳐옵니다. 춤추는 법을 훔쳐옵니다. 유행하는 옷을 입고 모양을 냅니다. 아직 단정해야 할 학생들이 지나치게 야한 화장을 하고 다닙니다. 머리칼을 지나치게 칼라화 함으로 학생인지 아가씨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모양을 냅니다.

 

여러분, 이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루누이가 아직은 세상을 알지 못하는 순수한 소녀들의 몸에서 향수를 도둑질했습니다. 그 향수가 너무 정갈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를 교주처럼 떠받들었지만 그 향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남의 향기요 훔쳐온 향수였기 때문입니다.

정작 그루누이 자신은 냄새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 냄새가 없는 사람들, 자기 개성은 없고 남의 것만을 모방하는 학생들이 바로 그루누이처럼 살아가는 학생들입니다.

 

진정한 향기는 자기의 몸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유행을 보고 세상의 문화를 묻어오지만 나만의 개성이 있어야 하고 나만의 멋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향수가 멀리 가며 그런 멋이 오래도록 호감을 줄 수 있습니다.

2. 마음 중심에 예수가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품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세례를 받았나요? 물세례는 받지 못했어도 성령세례를 받았나요?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됨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여 예수의 생명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을 감싸고 있는 육신이 되어야 하고 포장지가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향 싼 종이에선 향내나고 생선 싼 종이에서 비린내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포장지가 좋아도 결국은 속에 들어있는 것, 그 속에 들어있는 사상(思想)을 감출 수 없다는 의미의 속담일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포장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냄새,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십시오. 3년 동안 예수님을 좇아 다녔던 제자들이 있었고 그들 일행을 초대한 집주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향수도 흘러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행을 비난했고 한 여인의 헌신을 비난했습니다.

 

오늘 교회는 많은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하고 경배와 찬양을 합니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방언(方言)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학생들은 교회에서만 예수님을 품은 것처럼 하다가 교회 밖으로만 나가면 자신의 포장지를 싹! 벗겨버리고 세상의 문화를 모방하고 세상의 것으로 포장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향기는 오래 가지도 멀리 가지도 못합니다. 향기는 멀리 가는 향기가 진짜 향기입니다. 만약 향 내음새가 너무 독하면 오히려 역겨움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혼자 잘 믿는 척 하지만 그게 멀리 퍼져 나가는 향기가 아니라면 종교심으로 자신을 무장한 종교인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늦었지만 본문으로 들어갑시다. 마리아, 그녀는 예수의 곁에서 서성대었다 사라져 가는 여자가 아닙니다. 그저 예수님 앞에 있을 때 그분의 능력과 교훈 앞에서 감동을 받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성경공부를 하기 위해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예수처럼 살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아니 예수님과 하나 되기 위해서 나와있습니다.

 

그녀에게는 예수가 전부입니다. 그분은 오라비 나사로를 살려주신 분, 마리아에게서 나신 죄 없으신 분, 고귀한 인격을 가지신 분, 인류의 구세주. 그녀는 예수님을 마음속에 가장 소중한 분으로 모셨습니다. 마리아는 오직 예수님을 주목하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진짜 마음으로 좋아했습니다. 탈무드에, "인간은 세 가지를 숨길 수 없다. 기침과 가난과 사랑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을 하고 있는 딸을 집안에 붙잡아 두는 것은 백 마리의 벼룩을 우리 안에 가둬 두는 것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진실히 사랑했고 좋아했기에 그녀는 옥합을 깨트려 주님에게 아낌없이 부어드렸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3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그녀는 예수님의 향기를 가득 퍼트렸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가는 곳마다 멀리 멀리 풍기는 향기가 되었습니다.

3. 예수의 향기가 있습니까?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예수의 향기가 흘러나오는 곳입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인, 작은 예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중에서 예수가 흘러나오고 있습니까? 예수보다는 우리 학생들이 머리모양새, 옷매무새에 더 신경이 쓰고 자랑하고 있는 곳은 아닙니까?

 

예수를 마음속에 받아들인 사람들은 예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가 흘러나오고 예수의 향기를 풍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예수의 향기를 풍겼던 사람들은 모두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를 가득 채워 놓아야 예수가 흘러나옵니다.

 

이제 예수를 채우는 일에 주력을 합시다. 봉사도 해야하고 열심도 있어야 하지만 예수를 채우는 일에 열심할 때 봉사도 열심도 예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것이 될 것입니다.

 

소양강 댐에 물을 채우는 데 7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7년 동안은 단 한 방울의 물도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 물을 쏟으니 생활용수, 공업용수, 농업용수가 되고 전기를 일으키고 큰 에너지를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먼저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헌신이 흘러나오고 예수의 향기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예수가 흘러나와야 사람들이 우리들을 좋아하고 함께 하는 행복이 있습니다.

 

탈무드에 "좋은 손님은 올 때부터 기뻐하고 싫은 손님은 문을 나설 때부터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들어올 때부터 좋은 사람, 이런 사람이 예수의 향기를 날리는 사람입니다.

 

인디언들은 자기에게 해를 기친 사람이 길을 잃었을 때 그를 집으로 데려다 주고 "아, 이제야 원수를 갚았다!"고 한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풍겨야 할 향기입니다.

 

마리아, 그녀는 초라한 여인입니다. 가난하고 쓸쓸하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세 남매가 살아가는, 그야말로 소년소녀 가장의 가정입니다. 남들에게 향기라고는 풍길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헌신과 사랑은 집안에 향기로 가득 채웠고(3절) 기독교 2천년 역사에 아름다운 헌신으로 기억되며 그 사건이 전해지는 곳마다 좋은 본이 되고 있습니다.

 

“유대인처럼 죽기는 쉬우나 유대인으로 살아가기는 어렵다”, 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죽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색(無色)의 그리스도인입니까?

악취(惡臭)의 그리스도인입니까?

좋은 향기를 날리는 예수의 사람입니까?

세 번째 학생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향기에 이웃이 거룩하게 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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