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칠언7] 의탁의 말씀
십자가 위에서, 영혼을 맡기시다
누가복음 23장 44~49절
서론
한 여성이 보스톤 신문에 결혼 상대자를 구하는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나는 은퇴한 학교 교사입니다. 종이 울릴 때까지 운동장에서 나와 함께 있어줄 60대 후반의 신사를 구합니다."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은 싫으나 좋으나 교실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모습 속에서 여인은 자기에게도 인생의 종말을 알리는 운명의 종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을 예감했던가봅니다.
모든 인생에게는 종치는 날이 옵니다. 땡! 하고 종칠 때 사람들은 어떤 표정들을 지을 것이며 어떤 말들을 남길 것인가요?
나폴레옹은 죽는 순간에 "프랑스… 군대… 조세핀…"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조세핀은 이혼한 아내였습니다.
문호 톨스토이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구나…" 하고 당황해 했습니다. 훌륭한 작품을 남긴 사람답지 않은 마지막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여섯 시간을 달려 있었습니다. 그 마지막 말씀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나이다"입니다.
1. 어둠에서도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왔습니다. 한번도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보지 않은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고 그들을 위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욕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가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한 심정으로 쓴잔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분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일들을 했는데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다니… 그리고 지금은 이 어두움이…그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 분노를 터트리며 죽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분은 끝까지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여 하나님을 버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버립니다. 주님은 죽는 그 순간, 어두움이 사방을 감쌌을 때도, 고난의 잔을 마시는 순간에도 주님을 신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밝은 날에만 신뢰할만한 분이 아니십니다. 정말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할 때는 죽음 앞에서입니다. 우리의 기대가 어그러지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손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아이가 뇌종양에 걸려 죽어갔습니다. 아버지는 강한 사람입니다. 아이 앞에서는 절대로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이는 어린것이 잘 참아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죽어가면서 마지막 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내가 먼저 가 있을 테니 아빠도 빨리 와!"
아빠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어린아이와 같이 않으면…" 하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죽음 앞에서도, 어두운 그늘 앞에서도 주님을 향하여 순전함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붙들어야 할 것입니다.
2. 승리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남들이 볼 때에 그는 실패자였습니다. 우습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죄가 없는 세상, 사랑의 새 법으로 하늘나라를 만들어 보자고 했던 그의 삶은 끝나고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는 수레바퀴를 돌리려다가 그 바퀴에 깔려 죽는 형편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은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여…" 그 영혼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것은 환호입니다. 금메달을 따고 대한민국만세!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라는 것은 "엄마, 나 금메달 땄어요!" "서울에서 봬요!"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말씀은 우승 패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우승 패를 안았으니 모두들 나와서 환영해 달라는 모습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역을 다 완성시킨 것입니다. 33년의 짧은 인생이었지만 그분은 임무를 완수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주님 앞에서 자신을 맡기며 저 어두운 죽음의 세력으로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업적은 초라하지만 이제 그 싹에서 많은 나무들이 일어날 것이고 구원의 백성들로 숲을 이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우승컵을 받으려는 우승자의 심정으로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열 명의 조문객이 참석했을 뿐입니다. 그 죽음을 놓고 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비극은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은 사실에 있지 않다. 그의 비극은 한번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데 있다"
우리에게도 종치는 날이 옵니다. 종치면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가고 종치면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다가 종쳐도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옵니다. 인생이 종친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갈 것입니까? 어디에서 우리의 영원을 보낼 것입니까? 그 영원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세상에 살아있을 때 호화로운 생활과 주위의 부러움을 독차지하던 여성이 있었습니다. 여인이 죽어서 천당에 올라갔을 때 마중 나온 천사가 그녀가 살집으로 안내했습니다. 아주 초라하고 작은 집이었습니다. 그것은 네모난 상자에 불과했습니다.
"내가 왜 이런 집에서 살아야 하지요?"
"죄송합니다, 부인, 부인이 올려 보낸 재료로는 이런 집밖에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내세를 위해 뭔가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세상이 끝날 때, 그것은 두려운 `이사'가 아니라 하나님께 면류관을 받아쓰는 즐거운 `귀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상병 시인은 평생을 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는 동심의 마음으로 살다가 이런 시를 남기고 갔습니다. <귀천>이라는 시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아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3. 의탁의 기도입니다.
유대인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합니다.
시편 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였나이다"
"이제 나 곤한 몸 잠들려 하나이다.
원하고 바라옵나니 주여, 나의 영혼을 지키소서.
내가 미처 깨어나기 전 죽는다면 주여,
나의 영혼을 거두어 주옵소서"
유대인들은 저녁 무렵에 이런 기도를 올렸고 그것은 평안과 평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예수님도 저녁마다 이런 기도를 드리며 지났을 것입니다.
이제 그분은 잠들려 하십니다. 죽음은 소멸이나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잠드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품에서 잠들고 시간이 되면 어머니처럼 잠을 깨워주실 하나님께 자신의 생애를 맡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안전한 피난처이기에 아무도 상해하지 못합니다.
"아버지여…"는 "엄마, 나 꼭 깨워 줘"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죽음의 권세가 들이 닥쳐도 그분은 안심하고 무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가야합니다. 죽음의 세력 앞에 설 때에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까요? 다시 가족들을 만날 수 없다는 쓸쓸함보다는 죽은 후에 벌어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더욱 떨게 할 것입니다.
이런 죽음 앞에서 볼테르는 "나는 저주받은 인생이었다!" 고 탄식하다 숨을 거두었습니다.
존 후스는 1415년 화형 당해 죽어가면서 "기쁘고 명랑한 얼굴을 하고 내 영혼을 아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결론
서울에 왔을 때 아무도 영접해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목포에서 배를 타면서부터 얼마나 두렵던지… 그러나 지금은 두렵지 않습니다. 반겨 맞아줄 우리 아이들이 있고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맞아주실 것이고 앞서 간 이들이 환영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참된 의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중세기의 수도사들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표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죽을 때 사람들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 것입니까? 그보다 하나님은 어떻게 당신을 맞아줄 것입니까? 해답은 당신들 스스로 내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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