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설교도 맛있다] 섬김의 리더십(마태복음 23:10~12)

갈렙처럼 2025. 2. 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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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리더십

마태복음 23장 10~12절

 

서론

5월은 상처받는 달이라고 했지요? 어린이날에는 알게 모르게 상처받는 어린이들이 있고 어버이날에는 상처받는 어버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스승의 날에는 누가 상처를 받지요? 오히려 스승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 조카가 학교에서 갖고 온 학교통지문을 보니, 스승의 날에 선생님에게 촌지를 주지 말자, 는 안내문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안내문을 받아들고 속으로 개탄을 했습니다. 세상에 스승에게 촌지를 주지 말자는 통지문을 보내는 나라가 어디 있으며, 그것도 아이들 손에 들려 보내는 학교가 어디 있는가? 그런 사정을 알게 되면 선생님들은 오히려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2월로 옮기자는 말도 선생님들 입에서 나옵니다.

 

오늘 교사주일을 맞습니다. 교회의 교육적인 사명을 다시 한번 다짐하며 영원한 스승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 교사들은 격려하고 우리 자신도 스승이라는 마음의 자세를 갖고 새롭게 우리 생(生)을 디자인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1. 예수님은 진정한 리더입니다.

유대교에서 선생님을 “랍”비라 부릅니다. 랍비는 학문적인 계통을 밟아서 선생님이라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중에서는 인격이 고매하신 분들을 가리켜 랍비라고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랍비입니까? 그 분은 지식에서도 랍비였습니다. 30세에 고향을 떠나 제자들과 공동체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그의 설교, 그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돌아가서 자기를 보낸 자들에게 보고하기를 “지금까지 이런 가르침을 베푸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스승이 되려면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교사가 되려면 성격적 지식이 있어야 하고 학문적 지식이 있으려면 학문적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교사들이 성경교사가 되려면 성경에 대해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미국의 대통령이라고 하면 안 되지요? 아니면 이삭이 아브라함을 바쳤다고 해서는?

 

예수님은 구약에 대해 박식하셨습니다. 그렇다고 그 지식은 상아탑 속의 지식이 아닙니다. 영어 단어 몇 개 더 외우고 수학공식 풀어내는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지식은 생활의 지혜였습니다. 지식은 아는 것이고 지혜는, 아는 것을 선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지식을 선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함을 같이 요구하셨습니다. 뱀의 지혜에 순결과 진실함이 결여되면 그 지식은 얄팍한 지식이 되고 악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런 지식자들로 세상은 잘못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혜는 인격의 지혜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자신을 털어놓았습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돈독에 올랐던 삭개오가, 일곱 귀신에 사로잡혔던 막달라 마리아가 변화를 받고 그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인격성입니다. 그 인격 앞에 누구나 마음을 열고 싶었고 자신을 드리고 싶었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싶었습니다. 그분의 영향력 안에 자신들을 내려놓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리더십입니다. 남에게 영향을 끼치는 능력-이것이 리더십입니다.

예수님의 리더십, 예수님의 지혜는 인격에서는 오는 영향력이었습니다.

 

마르타 브룩스가 쓴 <리더십 유산>이라는 책이 있는 데 고모에게 운영권을 물려받아야 할 더그 로만이라는 사람이 리더십을 배워가는 과정을 그린 책입니다. 이 책에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소를 말해줍니다. 그 중의 가장 첫째가 지위가 아닌 인격을 갖추는 것이라 했습니다. 직함이 아닌 한 인격체로서의 리더-즉 리더의 인품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진실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준 사람들을 기억하며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의 어떤 부분이 나에게 그렇게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는가? 그가 나에게 지금까지도 기억의 대상이 되고 있다면,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리더십입니다. 그 리더십은 아름다운 인품을 지닌 도덕적 리더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지도자, 훌륭한 리더는 자신의 지위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 때문에 힘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내달린다는 사람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마음속에 강하게 각인됩니다. 그들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사람의 영혼을 끌어 다니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모델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또한 모델입니다. 그들이 무슨 지위가 있으며 직함이 있습니까? 베드로가 지위가 없지만 그는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바울은 죄수의 몸이지만 오히려 그가 감방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 감방이 교회가 세워질 정도였습니다. 인품의 향기로 세워지는 흔적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인격적 리더십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스승, 랍비가 되데 생활의 지혜들을 쌓아가야 합니다. 오래가는 인품의 향기, 진실과 사랑의 교류, 분명한 열정-이런 사람들이 아름다운 리더입니다. 인격적 리더입니다. 이런 리더십의 소유자가 될 수 있기를 우리가 기대하고 노력합시다!

2. 예수님은 섬김의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지금은 리더십의 시대입니다. 리더십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리더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2천 년 전의 스승이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 리더십의 실체는 무엇인가?

 

금년 중반기에 기독교인구가 21억을 넘어설 것이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물론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인구를 합친 것입니다.

 

캔 블랜차드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인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캔 플랜차드라는 세계적인 경영자문교육기관을 만들어서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분인데 <겅호> <1분 경영> <열광하는 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을 저술한 분입니다.

 

<1분 경영>이라는 공저로 발간해서 엄청나게 잘 나가고 있을 때 비행기에서 우연히 밥 포드라는 사람과 동승하게 되었습니다. 밥 포드는 미국 텔레비전 업계의 신화적인 인물로 <하프타임>이라는 단체를 만든 신앙인입니다. 그는 캔에게 예수를 소개해 주고 윌로우크릭커뮤니티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를 소개해 줍니다. 두 사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 블랜차드는, ‘아! 예수야말로 진정한 리더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섬기는 리더 예수>라는 책을 쓰게 됩니다. 세계적인 리더십 강사가 예수 안에서 참된 리더십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캔 블래차드가 발견한 예수의 리더십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섬김”입니다. 캔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던 그 장면에서 예수님의 리더십을 “섬김”으로 결론지은 것입니다. 그는 제대로 본 것입니다. 전통적인 견해는 리더십을, 방향 제시, 비전 제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캔은 비전 제시가 아니라 역할 수행 쪽으로 견해를 변경합니다. 즉, 비전을 명령하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리더인가, 내가 직접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세워주는 리더인가? 예수님의 리더십, 지도자론은 후자라는 것입니다.

 

<섬기는 리더 예수>에서 캔은, “섬기는 리더”와 “이기적인 리더”로 구분합니다. 섬기는 리더는 자신보다 비전을 더 크게 보이게 하는 리더이며 후배를 양성하는 리더이며 베푸는 리더입니다. 이기적인 리더는 지위에 연연하며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심이 크며 만나는 사람들을 자기의 이익 수단으로 생각하는 리더입니다.

 

캔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섬김의 리더십을 가질 때 조직이 살고 회사가 아래에서 움직이며 살아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섬김의 리더십의 위대함입니다. 이것을 레너스 스윗 박사는 <귀 없는 리더와 귀 있는 리더>로 다시 나눕니다.

 

본문에, 예수님 당신 자신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섬김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세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내려다보는 자세입니다. 눈높이는 눈낮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남을 올려다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았습니다.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 신체적으로 환자, 민족적으로 이방인…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은 올려다보았습니다. 올려다보았다는 것은 섬김입니다. 섬김을 영어로는 서비스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봉사이지요.

 

예수님은 사람들을 대할 때 그 기회를 자신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그것이 섬김입니다.

세상 조직의 에너지는 계급을 따라 아래로 흐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의 에너지는 사람을 따라 아래에서 위로 흘러야 합니다. 저 사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저를 도울까, 어떻게 저들을 미소 짓게 할까?

 

제가 늘 하나님 앞에 묻는 것이 나는 지금 교인들을 이용해서 목회 성공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교인들을 기쁘게 행복하게 해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늘 여러분들 앞에서 웃고 지내려 하고 좋은 말을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섬김입니다.

 

바이런 맥도널드 목사는 “인간관계에서 섬기는 마음을 들어 내 버리면 그 자리에 악마를 들여놓는 셈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섬김은 겸손입니다. 다스리는 리더십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악마가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사람의 인격을 병들게 합니다.

3. 섬김의 리더십을 어떻게 활용할까?

교사는 리더입니다. 리더는 예수님의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스림의 섬김이 아니라 섬김의 리더십으로 12명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설교자라기보다는 소그룹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성경학자에 의하면, 그는 30회 설교했고 60번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섬기셨습니다.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12제자들의 확신과 열정, 실력과 수준, 기술 및 경험 등을 면밀히 관찰하신 후 네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수염을 깎은 데도 순서가 있듯이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책임을 맡길 때도 네 그룹에 맞는 리더십 스타일을 적용했습니다.

 

㉠ 지시형 리더십-(초보단계)

베드로를 비롯한 갈릴리 제자들은 역량은 낮은데 의욕은 넘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지시는 많고 지원은 적은 지시형 리더십을 적용합니다. 그들을 파송하면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는 구체적인 행동을 지시합니다(마10:5~10). 지원보다는 그들을 홀로 보내며 지시합니다. 스스로 바닥에서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 지도형 리더십-(수습을 뗀 단계)

역량도 별로 없고 의욕도 없는 제자들, 현실의 냉혹함을 깨닫기에 늘 사기가 없습니다. 마 17장에서 간질병을 고쳐주지 못하고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합니까?”라고 말했던 제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지도형 리더십을 적용합니다. 이는 지시도 많고 지원도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기도의 힘을 역설하면서 아울러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심으로 그들을 지원하십니다.

 

㉢ 지원형 리더십-(베드로 수준)

어느 정도 의욕과 능력을 갖추었지만 자신감이 부족한 제자들, 그들은 역량은 있지만 자신감은 없기에 매사에 조심스럽습니다. 그러기에 역량은 높으나 의욕은 자주 변합니다. 물속을 걸어가다 빠진 베드로 경우입니다. 그들에게는 지원은 많고 지시는 적은-지원형 리더십으로 섬겼습니다. 예수님은 지시보다는 손을 내밀어 꺼내주시며 “왜 의심하느냐? 믿음이 작다!”라고 섬겨주셨습니다.

 

㉣ 위임형 리더십-(전문가로서의 베드로)

의욕과 역량을 두루 갖춘 제자들에게는 위임형 리더십 스타일로 섬겼습니다. 전문가 수준이 된 베드로에게는 지시와 지원 모두를 적게 하는 위임형 스타일로 섬겼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장)-이는 위임형입니다. 그러나 방임이 아닙니다. “세상 끝날 때까지 함께 하마!” 조언자 역할, 상담자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것입니다.

 

에수님은 이처럼 참 훌륭한 선생님이었고 리더였습니다.

 

우리는 섬김의 리더십의 선생님이셨던 예수님에게서 이런 리더십을 배워가야 합니다. 이것을 교회에서 가정교육에서, 직장에서 활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고 이런 사람들이 인격을 갖춘 좋은 스승으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유대 탈무드에는,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교사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교육의 힘을 아는 민족입니다. 그들은 국가를 지키는 것은 군대가 아니라 정신적인 스승들인 교사임을 알았습니다. 유대민족들은 오랫동안 유랑해오는 민족입니다. 그들의 국가는 세계적입니다. 어느 나라에 가든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려면 민족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정신을 누가 심어주는가? 교사가 심어줍니다. 그러기에 제대로 된 교사가 있으면 그 아이는 살고 교사가 제대로 되어있지 못하면 그 아이는 정신이 죽기에 진정한 유대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교육의 힘을 알았기에 교육민족이 될 수 있었고 국가를 잃은 2천 년 동안도 제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다짐하는 하루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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